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강론자료

3월 14일(주일)-사순 3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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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3-13 ㅣ No.610

사순 3 주일 (다해)

 

        출애굽기 3,1-8ㄱㄷ.13-15       1고린토 10,1-6.10-12     루가 13,1-9

    2004. 3. 14.

주제 : 우리 삶에 찾아오는 하느님의 초대

 

한 주간 잘 안녕하셨습니까?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일터에서 한 주간을 보내고, 우리는 오늘 주일에 다시 하느님의 대전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움직인 한 주간의 일터는 가정과 사회를 위해서 움직인 직장일 수도 있고, 미래를 위하여 지금은 준비하는 장소인 학교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곳이 되었든지 그곳에서 지낸 정성과 함께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의 마음이 하느님께도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흔히 세상살이에서 내가 움직이는데 사용한 힘과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돈을 벌어도 나만을 위해서 사용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선행을 베푼다면 남들이 꼭 알아주어야 할 커다란 일을 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왼손이 하는 자선을 오른손이 모르게 숨겨두고,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만이 보게 하라’고 권고하셨지만 그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은 어려운 일로 생각합니다.

 

현실에 사는 우리는 내가 정성을 들인 행동은 자랑하려고 하는 시대에, 오늘 첫 번째 독서 출애굽기의 말씀과 루가복음의 내용은 우리를 부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얼마나 큰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자리에는 계신 여러분 가운데는 그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분도 있을 것이고, 삶에서 직접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느끼고 삶으로 드러내신 분도 이 자리에는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행복한 기억이 있다면 그 순간을 내 삶에서 잊지 않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출애굽기 독서를 읽고 묵상하면, 우리 삶에 방문하시는 하느님은 결코 큰소리로 우리를 부르거나 놀라게 하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큰소리로 말씀하시기보다는 당신 앞에 서 있는 당사자에게만 들리는 작은 소리로 당신의 뜻을 밝히는 것이 하느님이 사용하고 선택하시는 방법입니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의  놀라운 현상’을 보고 그것을 가까이 보려고 다가갔던 데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발에서 신발을 벗으라는 소리’였습니다.  만일 그 소리를 듣고도 모세가 무시했다면 그에게 일어났던 삶의 변화는 없던 일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마음의 문에 빗장을 걸지 않았던 모세, 하느님의 부르심을 향해서 열려있던 그의 남다른 자세가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부르심을 가져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반복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과 현실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고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소리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놀라운 사건, 국회의원들이 냈던 ‘대통령 탄핵안(찬성:193표 반대:2표 ; 2004.03.12. 11:57 가결선포)’의 가결도 그런 것의 하나일 것입니다.  성당에 앉으신 여러분 가운데는 국회의원들이 가결하여 선포한 일에 대해서 찬성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반대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가부(可否)간의 문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다른 사람의 몫으로 미루더라도 우리가 시간을 앞 다투어 결정할 일의 첫 번째가 과연 그것이었느냐 하는 것은 정치꾼들이 입만 열면 말하는 ‘국민의 한 사람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올바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추진해야 할 일들은 내팽개치고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사람들에게는 정의가 무엇이고, 무엇이 국민들을 사랑하는 길이며, 어떤 행동이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인지 정확한 원칙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일에 나타난 사람의 특징 한 가지는 내 잘못은 용서받아야 당연한 것이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아무리 작다고 하더라도 그냥 봐줄 수 없는 것이므로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한다고 하는 것이라고 우기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습을 ‘흑과 백’으로만 판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이 옳다고 하는 그 소리와 마음에는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하느님의 뜻이 머물 곳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다가오는 하느님의 초대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오시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의도를 읽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모든 일의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에 나오는 포도원 관리자가 하는 말처럼 한 해를 더 기다리면서 거름을 주고 나무를 가꾸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지금 당장 나무의 밑둥치에 도끼를 대는 일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당신의 뜻을 전하려는 소리는 정신 차려 들으려고 노력해야만 간신히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모세에게 속삭이던 하느님의 말씀이 크지 않았다는 소리는 우리가 항상 준비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며, 탑 옆을 지나다가 깔려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이 두렵게 느껴지지 않도록 준비를 하고 살아야한다는 소리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죄가 있고 없음에 대한 판단은 내가 하는 몫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이 하신 삶의 심판을 미룬다.’고 하시지만, 우리는 그 자비가 언제까지 연장될지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혼란스러운 이때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의 소리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들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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