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신앙의 끈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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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05 ㅣ No.583

[허영엽 신부의 ‘나눔’] 신앙의 끈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작년 2월 우리 곁을 떠나간 배우 故 김지영(막달레나) 자매님은 2003년 서울주보 ‘말씀의 이삭’란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담담히 고백했습니다. 그 글은 많은 분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녀의 일생은 한마디로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어려운 순간을 극복했다 싶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곤경과 고통의 삶이 다가왔습니다. 그런 그녀의 삶을 마지막까지 지탱해 준 것은 믿음의 끈이었습니다.

 

언젠가 자매님에게 그 어려운 시간을 어떻게 이겨내셨냐고 여쭤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믿음이 약했어요. 그래서 쉽게 넘어졌지요. 그러나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날 수 있었어요. 기도를 못할 때는 울음을 참고 그냥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호경만 바쳤어요. 옆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지요. 그래도 성호경을 바치면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리스도인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성부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성자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구원하시며, 성령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성화시키시는 분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가 매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 외우는 성호경은 바로 삼위일체에 대한 고백입니다.

 

우리는 가끔 TV를 통해 신자 스포츠선수나 연예인들이 성호경을 긋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연기자는 묵주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성호경을 바치는 것은 자신이 신자임을 공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런 행동이 바로 선교이며 신앙의 증거가 됩니다. 직장이나 밖에서 식사를 하기 전 성호경을 드리는 것만으로 훌륭한 선교입니다.

 

 

신앙의 확신이 생겼기에 그저 그것을 전할 뿐

 

故 김지영(막달레나) 자매님은 선교에도 아주 열심이셨습니다. 몇 해 전 갑자기 전화를 주셔서 지금은 쉬고 있는 신자인 후배 영화배우를 명동성당에 데리고 가서 같이 미사를 드리려 하니, 미사 후 함께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그분들은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 수 있는 유명한 분들이었습니다. 약속한 일요일 오후가 되자 자매님은 마치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오듯, 후배 두 사람과 함께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에게 고해성사를 보게 했습니다. 이어 자매님은 두 분에게 준비해둔 묵주와 미사보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명동성당에서 그분들과 함께 미사에 참석하셨습니다. 주일 오후에는 쉬고 싶은 마음도 있으련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가끔 이단종교를 전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되돌려 보내거나 아예 대꾸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자매님은 그들에게 오히려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당연히 늘 논쟁이 벌어지곤 했는데,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이단종교의 모순점을 지적하면서 천주교 교리를 두 시간이나 세 시간이고 계속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줄행랑을 치고 다시는 얼씬도 안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저는 “언제 그렇게 교리를 많이 배우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신부님, 제가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제가 살면서 신앙에 확신이 생겼기에 그저 그것을 전할 뿐이죠.”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언젠가 자매님에게 이런 부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매님! 자매님은 이제 나이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이 분야의 대선배이십니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면서는 신앙 생활하기가 어렵고 여러 환경으로 심적 고통이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실 겁니다. 그런 후배들이 많을 텐데 그분들을 자매님께서 잘 돌보아주세요” 그러자 자매님은 일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네 신부님, 저도 같은 고통을 많이 겪었으니 그런 후배들을 잘 돌보도록 할게요. 신부님의 부탁이지만 주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이후 자매님은 어려움 속에 있는 후배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고, 이렇게 도움을 줄 수 있음에 행복하다고 고백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 사랑을 실천해야

 

그리고는 얼마 후 자매님이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습니다.  자매님은 편안한 얼굴로 우리 일행을 반겨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늘 돌보아주셨어요, 어려움에 빠지면 도와줄 사람들도 보내주셨지요. 저는 지금 눈을 감아도 행복합니다. 특별히 신부님께 고맙습니다.” 나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뒤돌아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자매님의 두 손을 꼭 잡아 드렸습니다. 자매님도 마지막을 직감하셨는지 제 눈을 바라보시며 손을 꼭 잡고 미소만 지으셨습니다. 며칠 후 저는 자매님을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영정사진에서 본 그 미소는 그날 보여주셨던 그 은은한 미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주님이 말씀해주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면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마태 28,19-20) 성부와 성자께서 보여주시는 우리 인간에 대한 사랑 표현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사랑으로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사랑의 능력과 본질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신비는 곧 현실이 되고 우리의 삶이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뜨겁게 체험하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아낌없이 나누며 살다 간 막달레나 자매님을 기억하며 우리도 그분처럼 주님 안에서 더욱 더 사랑하고, 나누고, 기도하는 날들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 모든 시간에 주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해주실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7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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