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자비의 대희년 세상에 자비의 은총 발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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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02 ㅣ No.432

[레지오 영성] ‘자비의 대희년’ 세상에 자비의 은총 발산해야


 

아버지 하느님,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자비의 얼굴”이 빛나는 새해가 밝았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 모두와 가정에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 비치어 사랑으로 서로 받아들이고 용서하며 자비와 은총이 충만한 한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와 우리 시대는 어느 때보다도 주님의 자비가 필요한 때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죄인이며 죄가 많은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1요한 1,10) 그래서 우리는 시편 저자와 함께 “나는 내 죄를 알고 있으며, 내 죄 항상 내 앞에 있삽나이다. … 보소서 나는 죄 중에 생겨났고 내 어미가 죄 중에 나를 배었나이다. 하느님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오시니 내 죄를 없이 하소서”(시편 51참조) 하며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또한 믿고 있습니다. “죄가 많은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음을”(로마 5,20; 7장 참조). 성경은 죄스런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의 진리를 알려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한 3,16-17)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느님 아버지의 볼 수 있는 얼굴입니다.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8-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혹시 볼 수 없는 하느님을 보고 싶어 하는 생각은 없는지요?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는 ‘하느님을 보면 죽는다’(탈출 19-12-24. 이사 6,5 참조)는 전승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누구나 쉽게 당신께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아니 당신 스스로 우리 눈높이의 사랑으로 다가오셨습니다(호세 11,1-9). 곧 예수님의 일생 안에서 자애로우신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정의와 자비의 하느님 얼굴이 십자고상으로 드러나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시고(요한 4,43-54; 5,1-9), 눈먼 사람을 보게 해 주셨으며(요한 9장), 굶주린 군중에게 빵을 나누어 주시고(요한 6장), 죽은 사람을 되살려 주셨습니다(요한 11,1-44). 한마디로 소외되고 천대받으며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넣어 주시고 인간의 기쁨과 품위를 되찾아 주시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가르쳐 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죽어갈 현세에 집착하고 사라질 물질세계에 집착하여 눈멀고 병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며 보여주시는 생명의 길을 거부하고 생명이신 하느님을 배척했습니다. 자비의 은혜를 불신과 폭력과 오만으로 응답하며,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런 십자가의 처형을 안겼습니다. 인간의 오만과 불신, 오해와 시기, 질투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신성 모독죄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하느님의 백성들이.

그러나 인간의 불신과 배신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구세주 예수님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부활의 길을 열어주시고 죄와 죽음을 완전히 극복하시며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정의와 자비의 하느님 얼굴이 십자고상(十字苦像)으로 드러났으며 이는 거부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승리의 표징(表徵)이 됐습니다.

이 인류 구원의 길은 이미 구약성경을 통해서도 예언된 내용입니다.(이사 50,4-11; 52,13-53,12 지혜 11,21-26 참조) 인간의 죄와 죽음은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로 극복될 것을 암시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 자비의 얼굴과 인간의 죄와 죽음 그리고 부활과 용서의 은총이 인류의 역사 안에 드러났으며 살아 숨 쉬고 계속되고 있습니다.(1코린 1,18-2,15참조) 우리의 생명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며 생명이다.”라고(요한 14,6). 누구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는 누구나 이 세상을 예수님처럼 살아내면서 그 얼굴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될 것입니다(사도 11,26 참조)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통해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 인류 역사 안에서 드러나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루카 9,23-25).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시며, “고생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29) 하시며 격려하고 독촉하십니다.

사도들의 증언과 모범에 대해서 초기 교회 공동체는 우리에게 귀감이며 이 길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으며(사도행전) 우리나라 신앙의 선조들도 우리의 모범이 되어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124위 시복식에서 이런 사실을 ‘기억’하며 따름으로 큰 희망을 갖도록 독려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사도 9,5)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에서 복음의 증인이요 선포자가 되신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확신하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하지 않습니다.”(갈라 2,1-21)

이제는 우리들의 차례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사회 안에서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 자비의 은총을 반사하고 발산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자비의 대희년’을 보내는 보람이며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는 우리의 기도를 현실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구세주의 어머니시며 우리의 자애로우신 어머니, 당신 자녀들을 돌보시고 보호하시어 ‘자비의 성년’에 저희가 모두 풍성한 은혜를 받고 이웃에게 하느님 자비의 증인들이 되도록 빌어주소서.”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6년 1월호, 글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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