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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그리스도교 철학자: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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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04 ㅣ No.161

[그리스도교 철학자]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고대 그리스도교 철학자들에게 강렬했던 신플라톤주의 철학적 영향을 중세로 연결하는 학자가 있다면, 바로 스콜라철학의 선구자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810-877년)일 것입니다.

중세철학사에서 유일하게 만나게 될 아일랜드 철학자인 에리우게나는 810년경에 태어나, 일찍이 높은 수준의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고, 라온이라는 도시의 ‘주교좌성당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시작으로, 서 프랑코 왕국의 자유학과(artes liberales ; 중세의 3과인 문법, 수사, 논리와 4학인 산술학, 기하학, 천문학, 음악학을 묶어서 지칭한다.) 교수로 일하다 877년에 생을 마감합니다.

에리우게나는 위 디오니시우스의 작품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선생과 학생의 대화 형식을 빌려 중세 초기의 유일한 철학서 「자연 구분에 대하여」(De divisione naturae)를 저술합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이중 예정설’(하느님께서 한 사람에게 이미 고정된 한 가지의 운명을 예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거나 지옥 두 가지 모두를 처음부터 예정하고 계시다는 예정설)을 주장한 오르바이스(Orbais : 북 프랑스 지역에 위치한 베네딕토수도원)의 신학자 고트샬크를 반박하려고 쓴 「예정론」(De divina praedestinatione)과 이교도 학자였던 마르티아누스 카펠라의 백과사전적 작품인 「철학과 메르쿠리우스의 혼인」(De nuptiis philologiae et mercurii : 메르쿠리우스는 로마신화의 ‘교역과 상인의 신’으로 그리스신화의 전령의 신이었던 헤르메스의 역할이 큰 신)에 대한 주석 등의 다양한 작품을 남겨놓았습니다.


존재의 질서

우선 논리교사였던 에리우게나에게 논리의 법칙이란 비단 사유의 규칙만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존재의 법칙 역시 하나의 논리적인 무엇이 됩니다. 왜냐하면 존재의 생성이 곧 논리적 과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플라톤적 사유로부터 귀결되었고, 후에 스피노자(1632-1677년)나 헤겔(1770-1831년)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간단히 그의 사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존재의 질서는 인식의 질서에 따르기에, 존재적으로 최고의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인식되어야만 합니다. 곧 논리적 차이를 통하여 최고의 것으로부터 모든 존재자들이 설명되고, 이는 결국 모든 존재자들의 생성이 하느님이란 원천으로부터 비롯되며, 다시 하느님께로 귀환하는 것으로 이 모든 과정이 논리적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의 목적

사실 존재의 다양화를 설명하는 에리우게나의 삶과 철학의 목적은 아우구스티노 성인(354-430년)을 따라 성경에 계시된 진리를 아는 기쁨에 놓여있었습니다. 심지어 성경을 이해하는 것을 제외하면, 철학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에리우게나는 「자연 구분에 대하여」에서, “오 주 예수님, 저는 당신에게 성령으로 영감을 받은 당신의 말씀을 사변을 기만하는 어떠한 오류도 없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 말고는 어떤 다른 보상도, 어떤 다른 행복도, 어떤 다른 기쁨도 요구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예정론」에서는 “삼라만상 가운데 최고이며, 첫째 원인인 하느님을 겸손하게 경배하고 합리적으로 탐구되는 참된 종교의 규칙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면 철학이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철학이 성경에 드러난 지혜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 필자 주).

에리우게나는 결국 철학과 종교를 철저히 동일시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의 저서 「철학과 메르쿠리우스의 혼인」에서 “철학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까지 말합니다. 따라서 그가 바라보았던 철학의 목표는 전적으로 영적이고 종교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이성을 통한 신앙의 조명이었으며,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통찰력을 향한 움직임입니다.

그래서 에리우게나는 진리에 이르는 여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그리스도 이전에 인간의 이성이 원죄로 물들어 어두울 때입니다. 이때는 인간이 세상을 합리적으로 탐구할 수 없고, 창조주의 존재 증명에 한계를 지닙니다.

두 번째 단계로 그리스도가 세상에 육화한 이후에 이성은 이제 유일한 진리의 원천이 아니라, 계시라는 진리의 원천을 함께 지니며, 인간의 이성은 계시의 내용을 합리적으로 탐구하고 신앙을 우리 삶에 유효하게 만드는 과업을 지니게 됩니다.

그리고 끝으로, 진리 추구에서 인간의 세 번째 단계는 천국의 삶으로, 인간은 이제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직관하는 단계에 이르고, 이렇게 되면 눈으로 보는 것이 신앙을 대체하게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성에 앞선 신앙

그리스도교의 철학자임을 늘 자부했던 에리우게나에게 신앙은 늘 앎보다 우선시되었고, 하느님의 계시가 인간의 이성에 앞서 있었습니다. 물론 그에게 신앙은 사유를 요구했고, 이 두 가지(신앙과 사유)는 철학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며, 이는 곧 신학 외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신앙적인 사상가였던 그가 사용한 철학적 방법론은 유출설로 대변되는 신플라톤주의였기에, 그 역시 자신의 생애에 이미 의심을 받던 바대로, 훗날 그의 가르침이 ‘범신론적 유출설’이라며 1210년과 1225년 두 번에 걸쳐 가톨릭교회로부터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에리우게나의 주요 저작인 「자연 구분에 대하여」는 신플라톤주의 변증법에 의해 조직된 그리스도교 사상의 방대한 종합입니다. 곧 만물의 원인인 하느님은 최고의 단일성으로 제시되고, 창조란 이 단일성으로부터의 다수의 발현 외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구분(division)되는 과정으로 자연은 하느님의 단일성에서 하강하며, 개체로 갈수록 보편성은 감소하되, 복수성을 증가시키는 ‘본질의 종속’ 안에 펼쳐지는 세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리우게나가 자신의 사유에서 범신론적 유출설을 피해가는 중요한 개념은 ‘자연과 창조(natura et creatio)’였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하느님과 피조물의 차이를 보전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입니다.

에리우게나는 창조(창조는 ‘산출’을 의미합니다.)의 개념을 존재론적 차별화로 이끌면서, 이러한 창조가 ‘하느님의 자유로운 창조’일 수 있는가, 또 창조가 ‘하느님의 충만함’에서 오는 ‘필연적 흘러넘침’일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유한한 세상’과 ‘절대적 초월자’로서 하느님의 차이를 명백히 구분 짓고 있습니다.

* 허석훈 루카 - 서울대교구 신부. 1999년 사제품을 받고, 독일 뮌헨 예수회철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지내고 지금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있다.

[경향잡지, 2013년 4월호, 허석훈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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