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기도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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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7-05 ㅣ No.581

[레지오 영성] 기도의 목적

 

 

기도는 많이 할수록 더 거룩한 사람이 될까요? 예수님은 위선적인 기도를 질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엄한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태 23,14)

 

이 말씀대로라면 기도를 길게 하는 것만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엄한 단죄를 받는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과부는 당시 고아와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대명사로 쓰였는데 이렇게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는 긴 기도는 위선일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랑의 열매를 위해 하는 것이기에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행위를 목적을 가집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목적을 나무의 열매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의 목적은 무화과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으며 그분으로부터 오는 성령의 수액을 받는 시간이 기도입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사랑과 기쁨과 평화의 열매가 열려야합니다(갈라 5,22 참조). 그 열매가 기도하는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마르코 복음엔 예수님께서 성전에 기도하러 가시던 중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장면과 성전을 둘러엎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마르 11,12-19 참조). 이어 믿음에 대한 가르침과 용서에 대한 말씀도 이어집니다.(마르 11,20-26 참조)

 

열매 맺지 못하여 저주받은 무화과나무는 결국 ‘기도’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기도하는 집이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는 결국 예루살렘 성전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열매 맺지 못하는 형식적인 예배와 기도만이 드려지고 있었던 성전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군대에 파괴되어 지금껏 다시 세워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사랑의 증가에 있어

 

우리도 성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비극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로 ‘믿음’의 열매가 맺어져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서 기도를 하지만 기도를 통해 그 믿음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성장하는 믿음의 내용이란 바로 자신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는 믿음이 있어야 하느님의 자녀처럼 사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하느님의 자녀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원수까지 용서할 수 있어야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수 있습니다(루카 6,35). 그래서 결국 기도로 맺어지게 되는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은 자비이고 그 자비심에서 우러나오는 ‘용서’의 마음입니다. 용서란 인간관계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덕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말씀을 하시며 우리에게 새로운 이 계명을 함께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결국 기도의 목적은 사랑의 증가에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하느님과의 친교와 이웃과의 친교가 굳건해집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서도 이웃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가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열매 맺지 못하는 헛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기도를 이기적인 마음으로 합니다. 자기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기도를 하기 때문에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 무화과나무 비유가 하나 더 나옵니다. 주인이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를 심어놓은 것입니다(루카 13,6-9 참조). 그런데 그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포도 재배인’은 일 년만 더 거름을 주고 기다려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포도밭에 왜 무화과나무를 한 그루만 심어놓았을까요? 그리고 왜 이 무화과나무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을까요?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 ‘포도 밭’에 ‘포도 재배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포도 재배인은 포도를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포도 재배인이 왜 무화과나무를 관리할까요? 그것도 포도나무 밭에서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왜 무화과나무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래 포도밭에는 포도나무만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자신만 특별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 무화과나무입니다. 자아를 버리지 않으려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포도나무와 섞이지 못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저지르고 나서 무화과나무 잎으로 자신들의 몸을 가린 것은 이젠 친교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부끄러운 죄를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리며 서로 상대 탓하고 비난하게 되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어떨까요? 기도 끝에 성령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늦은 나이에 아기를 가져 고생하고 있을 사촌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간 것입니다. 이렇듯 기도는 이웃사랑으로 이어져야합니다. 묵주기도를 몇 단 바쳤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겸손과 사랑이 증가하였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랑의 열매를 위해 기도합시다. 그래야 기도해놓고 벌 받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8년 7월호, 전삼용 요셉 신부(수원교구 복음화국 부국장 겸 영성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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