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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모승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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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3-05 ㅣ No.102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모승천수도회 (상)

 

 

성모승천수도회는 이웃에 하느님 나라가 임하도록 일한다는 취지를 갖고 젊은이 교육과 영적지도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왔다. 한국공동체 회원 4명이 성무일도를 바치고 있다.

 

 

광주시 서구 내방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 여느 수도원과는 달리 성모승천수도회는 아직 번듯한 수도원은 없었지만 신부 2명과 유기서원자 1명, 청원자 1명 등 총 4명이 오붓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 반갑게 기자를 맞는 외국인 신부와 한국인 수사의 모습은 170년 전 선교를 위해 낮선 땅에 오른 외국인 선교사가 김대건 신부 등 한국인 성소자를 키웠던 그 때의 상황을 아련히 떠오르게 했다.

 

1845년 프랑스 남쪽 지방 님에서 엠마누엘 달종(Emmanuel d」Alzon) 신부에 의해 창설된 성모승천수도회의 첫째 목적은 우리 자신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일하는 것이었다.

 

1834년 로마에서 사제로 서품된 달종 신부는 1844년에 성모승천학교 교장이 되면서 수도회의 필요성을 느끼고 1년 뒤인 1845년에 성모승천 수도회를 창설했다. 달종 신부는 수도회가 새 시대에 부응하는 현대적인 면모를 갖춘 공동체인 동시에 교회의 전통에 뿌리를 둔 공동체로 자리잡기를 원했다.

 

또한 달종 신부는 수도공동체가 하느님을 체험하고 형제적 공동생활을 하며 진리와 일치, 그리고 애덕 안에서 교회를 사랑하며 사람들에게 봉사한다는 목적에 대부분의 지침을 성 아우구스티노의 가르침 속에서 찾도록 했다. 

 

달종 신부는 자신의 출신 교구인 님교구의 총대리 신부로서 38년 동안 일하게 된다. 달종 신부는 그곳에서 광범위한 복음 전파활동을 했는데, 특히 개신교 신자들의 회개, 젊은이들을 위한 교육, 영적지도, 교육사업, 성지순례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한 사도직을 수행했다.

 

또한 1863년 교황 비오 9세로부터 동방교회와의 그리스도교 재일치를 위해 일해 달라는 선교사명을 받고 즉시 불가리아에 신부를 파견하고, 1865년 신부를 도와 일할 성모승천 봉헌자 수녀회를 창설했다. 그러나 달종 신부는 모든 활동에 임하기에 앞서 수도회원들에게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 주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찾는 일』을 추구하도록 강조한다. 

 

성모승천수도회는 1880년 달종 신부의 선종 이후, 칠레에 공동체를 설립하고 이후 터키와 미국에 공동체를 설립했다. 1900년 반 성직법으로 인해 프랑스의 수도자들이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등지로 귀양을 가게됐지만 오히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곳에서 수도회가 점점 더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러시아, 자이레, 브라질 등 27개국에서 1000여명의 신부, 수사들이 다양성 안에서 활동하는 국제적 공동체를 이루고 성모승천 수녀회, 성모승천봉헌자 수녀회, 성모승천 작은수녀회, 성모승천 관상수녀회와 함께 다섯 개의 수도회가 한 가족처럼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서로 도우며 하느님의 말씀을 이 세상에 전파하고 있다. 한국 공동체는 1991년 12월 당시 광주대교구장인 윤공희 대주교의 초청으로 진출해 활동하고 있다. 

 

1880년 11월 선종한 엠마누엘 달종 신부는 199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가경자」로 인정받게 된다. 또한 성모승천수도회 소속인 카멘 빛체브(Kamen Vitchev), 파벨 치저브(Pavel Djidiov), 요사팟 칫거브(Josahat Chichkov) 신부는 1952년 불가리아 공산당에 의해 불가리아 중앙 교도소 총살대 앞에서 사살당했다. 이들 3명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2002년 5월 26일 불가리아의 부럽디브시 광장에서 복자품에 올려졌다. [가톨릭신문, 2005년 1월 1일, 김재영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성모승천수도회 (하)

 

 

성모승천수도회는 1991년에 한국에 진출했으며, 현재 도세민 원장신부(벨기에)를 비롯해 2명의 신부와 유기서원자 1명, 청원자 1명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성모승천수도회의 영성은 우리 자신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일하는 것을 첫째 목적으로 한다. 성부께 대한 사랑의 증거자이며 인간과 친히 연대하시는 예수그리스도처럼 성모승천 수도회원은 신앙을 증거하는 사람, 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또한 『무엇보다 먼저 공동체 안에서 오직 한 마음과 한 정신으로 하느님을 향해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살라』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정신에 따라 공동체 안에 산다. 따라서 솔직하고, 우의 깊고, 소박한 형제적 생활을 추구하며, 회원들이 바치는 기도는 교회의 기도로서 공동체는 그 기도로 신앙을 드높이 표현하며 전교사명 수행을 위해 노력한다. 

 

또한 창설자의 정신을 따라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품고, 하느님이 인간 안에서 위협 당하는 곳이나,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위협 당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도록 촉구한다. 이처럼 교회의 가르침과 지향에 충실함으로써 교회의 생명력과 사명에 참여한다.

 

학교 안에서 공동체가 시작된 성모승천수도회가 학교라는 틀안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달종 신부는 당신이 맞아들인 첫 제자들로 하여금 진리, 신앙, 교회일치, 성소개발,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 등 하느님의 위대한 뜻과 그 시대 사람들에게 처해진 상황에 민감해지도록 이끌었다. 또한 달종 신부의 제자들이 새롭고도 과감한 길로 나아가도록 촉구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신학교 개설, 동유럽 선교, 언론, 성지순례, 노동자 가족을 위한 봉사 등을 착수하도록 했다. 

 

수도회의 사도직 활동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데 교육, 매스미디어, 성지순례 안내, 교회 일치운동, 본당사목, 평신도 사도직을 위한 기관, 사회사업,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위한 봉사 등을 들 수 있으며, 수도회원들이 하는 모든 활동은 교회일치의 정신으로 임하고 있다. 

 

특히 「십자가(La Croix)」라는 일간신문과 수십종의 출판물을 통해 진리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고 분열된 교회의 일치를 위해 동방교회와 끊임없는 대화 속에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성지 순례를 통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강한 믿음으로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하고 있다. 

 

1991년에 한국에 진출한 수도회는 현재 도세민 원장신부(벨기에)를 비롯해 2명의 신부와 유기서원자 1명, 청원자 1명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주로 본당사도직 활동과 청소년들을 위한 영어교육, 수도회 및 장애인 시설인 백선바오로의 집과 사랑의 집에서 전례 등을 돕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광주시 서구 쌍촌동에 자리잡은 수도원 기공식을 갖고, 올 여름에는 그곳에서 피정지도를 비롯해, 교회일치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또한 필리핀과 베트남 등 동아시아 지역의 공동체와 연계해 수도자 양성 등의 활동도 전개할 예정이다. 

 

『수도자들은 존재자체로 하느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도세민 원장신부는 『저희 수도회는 형제적인 사랑으로 공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도로서 일하고 있다』며 『성모승천 수도회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찾아오시면 환영한다』고 전했다.

 

※ 문의=(062)374-1880, 백호 수사 011-9615-9104, http://assumption.cafe24.com [가톨릭신문, 2005년 1월 9일, 김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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