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토)
(백)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아버지께서는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믿었기 때문이다.

강론자료

3월 7일(주일)-사순 2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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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3-05 ㅣ No.605

사순 제 2 주일 (다해)

 

        창세기 15,5-12.17-18      필립 3,17-4,1       루가 9,28ㄴ-36

    2004. 3. 7.

 

주제 : 하느님의 선택과 인간의 응답

 

한 주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주간에는 기상 관측 100 년 역사동안에 3월에 최고로 많은 눈이 내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특이한 현상이 힘겨운 일을 당한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막연하게 바라는 대신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말한다면, 기도는 입으로 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알아듣고, 우리를 선택해주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은 사순 두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 두 번째 주일에 묵상할 내용은 우리를 부르신 하느님의 선택을 생각하고 나는 과연 그 선택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발하신 제자 12명 가운데, 특별히 3명을 데리고 산에 오르십니다.  3명을 따로 선택하신 의도가 무엇인지 복음서는 우리에게 전해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선택하신 3명의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기도하는 중에 옷의 색깔이 변하고 놀라운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것은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였던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수난에 관해 예수님과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순간에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현실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생활을 했다는 소리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 제자들처럼 우리도 현실 생활만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하느님의 뜻을 두 번째 혹은 세 번째로 여기거나, 그것도 아니면 성당에 왔을 때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야 한다는 소리와도 같습니다.  내가 대충 살겠다고 신앙인이 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힘겨운 모습을 보였던 제자들이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사람이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밖에 행동하지 못할 거라는 판단을 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과는 달리 그 놀라운 현실을 처음부터 올바른 자세로 대하지 못했던 제자만이 엉겹결(?뜻 : 미처 생각하지 못하거나 뜻하지 아니한 순간)에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자신감도 없는 소리를 할 뿐입니다.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 베드로의 소리를 가리켜 복음사가는 ‘자기도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삶에서 많은 것을 선택하고 삽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일들이 잘못된 결과를 맺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내가 마음만 그렇게 갖는다고 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의 선택이 올바른 결과를 맺으려면 마음으로 바라는 것 말고도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결실을 맺기 위해서 가져야 할 자세는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람을 본받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마음 편하게 살던 고향, 하란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나서 낯설고 물 설은 세상, 가나안으로 살던 자리를 바꾼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그 부르심을 아브람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그가 보여준 행동을 보면 쉽사리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결심과 행동이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제사를 준비하고 그 제사를 올바로 봉헌하기 위해서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일들이 간섭하지 못하게 하려던 행동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자세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내용을 결과로 보고 해석하는 것[=結果論]이기는 합니다만, 아브람이 가졌던 그 자세가 하느님에게서 선택받은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보여준 그 자세가 새로운 축복을 가져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한두 번 눈 가리는 야옹하는 의도적인 선행’으로는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에게서 선택받은 (미래) 하늘의 시민으로서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던지 바오로 사도는 우리를 단죄하지 않을 것입니다.  훗날 하느님에게서 내가 받을 심판은 갑작스레 내 삶에 다가와서 나를 놀래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행동했던 것들이 모여서 내 훗날의 삶을 만든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택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행복에 참여하는 사람이 되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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