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사제의 길, 사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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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11-02 ㅣ No.778

[허영엽 신부의 ‘나눔’] 사제의 길, 사제의 삶

 

 

“사제로 사는 것보다 사제로 죽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늘 기억하십시오.”

 

제가 사제가 되어 드린 첫 미사의 강론에서 선배 신부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때는 특별한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말씀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한 길을 평생 동안 충실하게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길을 충실히 간다는 것은 중요한 인생의 문제입니다. 삶의 방향과 가치를 결정해주기 때문입니다.

 

독일 유학 때 겨울방학 중에 지인으로부터 북유럽지역 신자들이 성탄미사를 꼭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별이 왔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신부님들이 모두 일이 있어 나에게까지 연락이 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차로도 꼬박 10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였지만 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성탄 전후로 약속과 개인적인 볼일이 있어서 조금 귀찮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사 한 대를 지내기 위해 적어도 3일은 사용해야 했으니까요.

 

드디어 미사 약속 날짜가 되어 나는 북유럽으로 기차를 타고 출발을 했습니다. 그런데 열차 시간을 착각해서 갈아타는 역에서 4시간 정도를 추위에 떨면서 역 벤치에서 새벽까지 있어야 했습니다. 나는 고생 끝에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역에서 중년 부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걱정하며 집을 오가며 나를 기다렸다고 하면서 울먹였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미사를 지낼 장소로 갔습니다.

 

미사를 지내는 장소에 모여있는 신자들은 어린이까지 합쳐 이십여 명 정도 되었습니다. 미사를 시작하자 신자들이 이곳저곳에서 훌쩍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국어로 미사를 지낸 것이 아주 오랜만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어느 분이 보편지향 기도에서 “어머니가 가르쳐준 한국어로 이렇게 미사를 드릴 수 있어 정말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에겐 일상적인 것이 그 사람들에겐 너무 귀하고 감격스럽고 애절한 것이었습니다. 평화의 인사 때 모든 신자가 서로를 안아 주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드렸던 어느 미사보다 초라하고 작았지만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느꼈던 미사입니다.

 

다음날 신자분 여럿이 기차 정거장까지 나와 환송해주었습니다. 어느 신자분이 그랬습니다. “신부님과 이제 이별하면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 중에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그 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한 자매님은 가는 길에 먹으라고 김밥까지 챙겨주셨습니다. 기차 창밖으로 손을 흔드는 그분들을 저는 차마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 눈에서 자꾸 눈물이 흘렀습니다.

 

돌아오는 열차 밖으로 흰 눈이 계속 그치질 않았습니다. 성체를 모시며 감격해 하던 그 신자분들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이 있더라도 은총이고 축복임을 새롭게 깨달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제의 길이라 생각합니다.

 

 

착한 사제, 훌륭한 사제는 교회 공동체의 노력과 기도로 양성돼

 

인생의 참된 행복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부귀와 영화에만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요. 한 선배 신부님께서 은퇴를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40여 년 사제의 삶은 그야말로 외줄 타기 선수 같았습니다. 줄에서 떨어지면 치명적인 고통을 당합니다. 하루도 편히 잠을 잔 날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산 것은 내 힘이 전혀 아닙니다. 주님 은총 없이는 하루 아니 한 시간도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는 하루도 자신의 삶을 지탱하기 힘듭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평생을 가난과 고독을 행복의 철학으로 여기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외국에 “살아 있는 성인이란 없다”란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신자들은 사제에게 많은 기대를 합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강론도 잘하고 어떠한 사목이라도 척척 잘하고, 신자들에게도 늘 자애롭고 편안한 사제, 유능하고 훌륭한 사제, 즉 완전한 사제를 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완벽한 사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제도 약점을 지닌 똑같은 허약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착한 사제, 훌륭한 사제는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노력과 기도를 통해 양성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전 사제 피정 중 휴식 시간에 선배 신부님 두 분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선배 신부님들은 자신들이 보좌로 일하던 1960년대에 경험한 이야기들을 나누셨어요.

 

“그때 우리 몇몇 신부들이 휴가를 이용해서 전방에서 군종 사제로 사목하던 동창 신부를 방문했어. 비포장도로를 오래 달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물어물어 찾아갔지.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도착하니 그 집이 사제관이라는 거야. 그 초가집 마루에 앉아 기다렸는데 저녁 무렵 새까맣게 얼굴이 탄 동창 신부가 돌아왔어. 당시 군종신부들의 생활은 말도 못할 정도로 어려웠어. 친구 군종신부는 반갑게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직접 쌀을 씻어 밥을 지어 주었어. 그리곤 ‘반찬이 없어 미안하다’하고는 겸연쩍게 웃는 거야. 우리는 그날 밤새도록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지. 새벽녘에 잠을 자는데 이불도 변변치 못해 참 마음이 아팠어. 다음 날 우리는 버스 터미널에서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지. 그런데 그 군종신부가 어딘가 급하게 다녀오더니 차창 문을 막 두들기는 거야. ‘가면서 심심할 때 먹어’ 하면서 음료수 몇 개와 삶은 달걀을 건네주더군. 우린 서로 아쉬워하며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지. 그런데 그것이 마지막이었어. 얼마 후 전방에서 미사를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사제관으로 돌아오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 그놈, 그때 고생 참 많이 했어. 그래도 주님 일하다가 하늘나라에 갔으니 행복할 거야.”

 

이야기를 나누던 선배 신부님들의 눈에 이슬이 맺혔던 기억이 납니다. 사제는 거룩한 사제이기에 앞서 연약한 인간이며 죄인입니다. 부족함을 안고 주님의 길을 따라야 하는 길, 그 길이 때로는 힘들고 어렵더라도 죽는 순간까지 성실하게 사는 것이 바로 모든 사제의 소망일 것입니다.

 

“주님, 모든 사제들을 사도들의 모후이시며 사제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길을 더욱 충실히 걷다가 사제로 눈감을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소서. 아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11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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