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4월 25일(주일)-부활 3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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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4-24 ㅣ No.640

부활  3 주일 (다해)

 

        사도행전 5,27-32.40-41     묵시록 5,11-14      요한 21,1-19

    2004. 4. 25. 퇴계원

주제 : 사랑의 힘

한 주간 잘 안녕하셨습니까?  성당에 오신 분들은 평안하시리라고 믿습니다.  혹시라도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면 모두 우리의 주님께 맡기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부활 3 주일입니다.

오늘은 복음에서 들은 ‘사랑의 힘’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사랑의 힘은 총이나 칼로 표현할 수 있는 무기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폭력들이 드러내는 힘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힘은 드러나는 형태도 없고 아무에게나 보이지도 않는다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총과 칼의 힘은 있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많은 것처럼 보이다 약해지기도 하며, 오늘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내일도 같은 힘을 가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힘은 한번 발휘되기 시작하면 그 끝이라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  적어도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의 생명이 세상에서 다할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낸 사랑이 따라할 만한 것이라고 한다면, 다른 사람도 그대로 본받는 것이 사랑의 힘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통하여 우리도 사랑의 마음을 올바로 가질 것을 부탁하십니다.  이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소리쳤지만, 가리옷 사람 유다에 이어 스승을 모른다고 부정하며 ‘배신의 길’을 간 사람이었습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스승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지만, 그 마음의 심지를 꿰뚫어 보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새롭게 무장할 것을 부탁하십니다.

 

고기잡이를 마치고 아침을 먹고 난 다음,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랑에 관한 질문을 하십니다.  남과 비교하는 일이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른 제자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십니다.  두 번째 질문과 대답까지는 그런대로 쉽게 이루어진 듯합니다.  그러다가 베드로는 세 번째의 질문에 서글퍼합니다.  복음에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그는 스승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배신한 것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우리도 삶에서 삼세번이라는 말을 씁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한 번이나 두 번보다는 세 번을 확인합니다.  세 번의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확인하면 우리는 그대로 믿습니다.  스승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배반했던 사람, 그래서 다시 부활하신 스승에게서 세 번씩이나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받아야했던 베드로 사도가 훗날 어떻게 살았는지는 잘 아는 사실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훗날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십자가형을 당하게 되지만, 예수님과는 달리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우리 눈에 ‘사랑’이라는 콩깍지가 덮이면 우리는 세상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현실과는 달리 오로지 한 가지 생각에만 골몰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의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독서에 나오는 사람들도 각자의 위치에 충실했기에 드러내는 모습도 비슷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기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에게 ‘사람에게 복종해야 하겠는지, 아니면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하겠는지’를 묻습니다.  사도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도 증언해야할 정말로 중요한 사실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의 이런 질문에 정답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안다는 것과 그 답을 말로 하는 것 대신에 올바른 삶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오늘 날짜의 가톨릭신문 1면에는 아프리카 잠비아 사람들을 위해서 써달라고 돈을 보냈다는 34살의 부산에 사는 어떤 사람에 관한 기사가 1면에 실려 있습니다.  3D업종에서 10여년을 일해서 모은 돈을 4,750만원을 모두 보냈다는 기사였습니다.  전셋집이라도 면하자는 남편의 이야기를 뿌리치고 지구상에서 가난한 나라들이 많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인 잠비아를 위해서 써달라고 보냈다는 기사를 보면서 저는 뭐하고 사는 사람인가를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섭섭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지만 아마 이 사람에게 하느님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응답하실 것입니다.  사랑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앞뒤를 재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선포하는 사도들의 소리에 귀를 막고 그 말을 못하게 하던 사람들처럼 왜곡된 마음이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그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은 나를 착한 사람으로 봐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다른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드러날지 그것은 우리들 각자가 가장 잘 아는 일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장 앞에 두고 살 것인지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물으셨던 예수님께서 오늘날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는 사람이 될지 그 질문에 응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오셔서 아주 오랜 세월 전에 구원의 가르침을 주신 예수님은 2004년을 지내는 우리를 위해서도 그렇게 ‘살해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먼저 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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