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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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한 달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멍한 상태… 우울증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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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1-25 ㅣ No.293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24)



질문) 한 달 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멍한 상태… 우울증인지

안녕하세요. 원장님. 제가 드리는 질문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다른 곳에 이야기할만한 곳이 없어 이렇게 문의를 드립니다. 저의 아버지께서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곧 한 달이 되겠네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멍합니다. 눈물은 났었지만 그게 슬퍼서 났다기보다는 뭐랄까요 분위기에 휩쓸려서 났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멍합니다. 아버지를 미워한 적도 없는데 왜 이런지 모르겠네요. 멍하다가도 갑자기 답답합니다. 지금 뭐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펑펑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이게 우울증인 건가요?


답변) 충분히 슬퍼하고 도움 청해야… 죽음 묵상도 한 방법

가족을 잃은 후, 감정은 사람마다 다른 식으로 표현됩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 앞에서 몇 시간이라도 곡하듯 울지만, 어떤 사람은 눈물 한 방울 비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자가 느끼는 슬픔의 크기가 후자의 슬픔보다 꼭 큰 것은 아닙니다. 다른 이들 앞에서 표현을 많이 한다고 해서 내적인 슬픔의 양이 꼭 많지 않다는 뜻입니다. 문화와 환경에 따라 애도의 방식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애도해야 된다는 정답이 있지는 않습니다.

또, 가족을 잃은 직후에는 실감이 나지 않아 아직도 살아 있는 것 같고, 가족의 죽음이 과연 무슨 뜻인지 가슴에 확 닿지 않은 시기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애도의 방식도 다르다는 이야기이죠. 때로는 그 사람에 대한 슬픔보다는 분노가 더 많을 수 있고,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다거나, 죽은 사람 자신이 고통스러웠다면, 죽음 그 자체가 일종의 속 시원한 ‘해방’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해방감을 느끼는 자신이 당황스럽고, 남들에게 밝히기 힘들 수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이들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가족이지만 죽은 사람과 큰 감정적인 유대가 없는 경우에도 자신의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알 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분명 부모 형제가 죽었다면 슬퍼야 하는데,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다면, 살아 있을 때에 별다른 추억도 사랑도 없이 그냥 이별하게 되는 죽음도 있습니다. 적지 않은 집에서 가족은 그냥 호적상의 가족일 뿐 서로 상관하지도 않고, 배려하지도 않는 남보다 못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으니까요. 만약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죽음이 찾아와도 그리 큰 충격이 있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가족인데 슬퍼해야 하지 않나 하면서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오히려 죄책감이 들어 더 힘들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사랑하고 애착관계도 형성이 되었지만, 슬픈 감정을 잘 모르겠다는 경우,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읽고 키우는 훈련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는 슬픔이나 애도를 유약함과 혼동해서, 자칫 강한 남자로서의 자신이 무너질까봐 감정을 억압할 수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여자들 역시 목적지향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건강한 애도 반응을 제때 거치지 않으면 두고두고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감정 때문에 힘들게 되는 이른바 ‘지연 애도 반응’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잃게 되면 충분히 슬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자신을 표현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라 조언하지요.

하지만, 말처럼 그게 쉽지 않다면, ‘기도’나 ‘성경 읽기’ 등을 하면서 삶과 죽음의 근본에 대해 충분히 묵상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버지의 영혼이 천당으로 들게 해 달라는 기도가 혹시 나오지 않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었는지, 또 그 예수님을 떠나보내야 했던 성모 마리아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혼자 상상하고 느껴 보려 애쓰는 것도 어쩌면 가장 훌륭한 애도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는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로 진행됩니다.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삶에서 겪는 어려움을 나누고 싶은 분은 아래 주소로 글을 보내주십시오.

※ 보내실 곳 133-030 서울특별시 성동구 무학로 16 (홍익동 398-2) ‘자아의 신화를 찾아서’ 담당자 앞
· E-mail: sangdam@catimes.kr

[가톨릭신문, 2016년 1월 24일, 
이나미(리드비나·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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