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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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 화학반응과 촉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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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9-17 ㅣ No.124

[과학과 신앙] 화학반응과 촉매


우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많은 화학제품들은 그 기초 원료가 까맣고 끈끈한 원유이며, 복잡한 정제와 분리공정과 화학반응이라는 복잡하고 많은 단계를 거쳐 얻어진다. 원유에서 파생된 화학산업의 가장 기본적인 화학물질은 에틸렌, 프로필렌, 벤젠, 톨루엔, 자일렌과 같은 것들인데 이러한 물질의 합성뿐만 아니라 이들로부터 부가가치가 훨씬 큰 다른 화학물질로 변환시키려면 화학반응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자연상태에서는 화학물질들을 섞어도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적절한 반응조건(온도, 압력, 화학적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촉매(catalyst)라는 물질을 사용하게 되는데, 촉매는 아주 소량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특정한 반응을 매우 빠른 속도로 촉진시켜 원하는 생성물을 빠르게 얻을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산업적으로 촉매기술은 화학기술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화학반응의 핵심인 촉매

대부분의 촉매는 고체 입자에 입혀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촉매를 담지촉매라고 부르는데 촉매 역할을 하는 금속, 무기 또는 유기 화학물질은 표면적이 아주 큰 다공성(多孔性)입자 내부에 고르게 분포된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담지촉매를 화학반응기라고 부르는 용기 안에 넣어 적절한 온도, 압력, 유체의 유속 등 조건을 맞추어 원하는 반응이 빠른 시간 안에 진행되도록 컴퓨터를 이용하여 제어하게 된다.

이때 사용되는 고체 촉매는 큰 것이 몇 밀리미터, 보통은 몇십 마이크론에서 몇백 마이크론 정도 되는 작은 크기로서, 다양한 형태의 용기(반응기)에 채워진다. 고체 입자 내부의 표면적은 촉매 1그램당 200㎡ 또는 그 이상인 경우가 흔하다. 이는 아주 작은 촉매 1그램에 테니스장 하나의 면적이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내부 표면적이 넓을수록 많은 촉매를 담지시킬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정해진 양의 촉매로부터 최대의 반응속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촉매반응은 발열반응인데, 이는 반응이 일어나면서 반응물이 안정한 생성물로 변환될 때 촉매 주위에 에너지가 열의 형태로 방출되는 현상을 말한다. 대형 반응기를 설계하고 운전할 때에는 막대한 양의 반응열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거하여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공학적인 문제가 된다.


화학적 변환 과정

이제 반응기 내부에 가득 채워진 촉매 입자 하나에서 일어나는 현상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여기서 촉매는 공처럼 둥근 형태를 가진다고 생각하자.

반응기 내부의 기체상에 존재하는 반응물 A가 촉매에 의하여 원하는 물질인 B로 변환되려면 고체 촉매입자 내부에 들어있는 촉매성분인 반응점(catalyst site)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고체 촉매입자의 바깥 표면에 A가 도달해야 하는데 이때 A는 이른바 기체 - 고체의 계면저항(interfacial resistance)을 거쳐 힘들게 표면에 도달하게 된다.

일단 바깥 표면에 도달한 A분자는 미로처럼 복잡하고 긴 입자 안의 틈새로 이동해서 들어가게 된다. 이때 분자들이 이동하는 틈의 크기는 아주 작다. 이를 분자확산(diffusion)이라고 한다. 이 과정이 매우 느리고 힘든 과정이다.

틈새 안으로 들어간 A분자가 촉매활성점에 도달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바로 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우선 틈새의 고체표면에 있는 촉매반응점으로 아주 가깝게 찰싹 붙어야 하는데 이 과정을 흡착(adsorption)이라고 한다. 일단 A분자가 촉매분자와 아주 가까이 있게 되면 비로소 A가 B로 변환되는 반응이 일어나게 되고 이때 많은 반응열이 발생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촉매반응 과정을 상세하게 알기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어쨌든 새로 생겨난 B라는 물질은 촉매활성점에서 떨어져 나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탈착(desorption)이라고 한다.

탈착된 B분자는 A가 들어올 때 그랬던 것처럼 미로 같은 틈새 공간을 분자확산에 따라 이동하여 입자 표면, 곧 바깥세상으로의 출구로 가게 된다. 일단 입자 표면에 도달한 B분자가 넓은 기체상 공간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려면 마지막으로 A분자가 입자 내부로 들어올 때 겪었던 것처럼 계면저항을 이기고 나가야 한다.

이렇게 촉매입자에서 완전히 벗어난 B분자는 반응기 내부를 흐르는 기체상을 따라 반응기 출구 쪽으로 이동하게 되고, 반응기에서 나간 B분자는 함께 섞여있는 다른 물질들로부터 분리되어 정제되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 최종 제품이 된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화학제품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사회를 향한 변환 과정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하고 졸업하여 사회에 나가는 과정을 이에 비길 수 있을 것 같다. 대학교에 들어가려면 수능시험도 보아야 하고 논술시험도 보아야 한다. 대학에 일단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계면저항).

대학에 입학하면 무얼 전공해야 할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대학생활 속에서 헤맨다(틈새 안으로 확산). 전공을 찾았다(흡착). 열심히 공부하고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반응). 좋은 성적, 곧 좋은 ‘제품’의 대학생이 되려면 땀 흘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발열반응). 영원히 강의실에 있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대학을 떠나야 한다(탈착).

어디에서 일해야 하는지 첫 방황이 시작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직은 확실히 모르지만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은 안다(분자확산). 졸업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니 두렵다. 움츠리게 된다. 그러나 이를 이기고 뛰어나가야 한다(계면저항). 나와 같은 수많은 동료들이 성공을 향해, 행복을 향해 한 방향으로 무리지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고, 나도 그 속에 들어가 함께 (대학 밖으로, 세상으로)나아가게 된다.


신앙인이 되기 위한 변환 과정

A라는 반응물이 촉매에 의하여 B라는 새로운 화합물로 변환되는 과정이나,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세상에 나가는 과정은, 우리가 주님을 만나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는 것과 정말 완벽하게 같다.

세속에서 헤매던 내가(넓은 기체상에 있던 A분자)주님의 부르심으로 주님이 계신 곳을 향해 처음으로 다가갈 때 얼마나 두렵고 망설였던가(계면저항). 주님이 계시다는 곳에 들어왔지만 어디에 계신지 보이지는 않고 어둡고 좁은 길을 하염없이 걸어간다(틈새 안으로 확산).

마침내 주님이 계신 곳을 찾았지만 더 가까이 가야 하는데 내 마음은 겁이 나고 또다시 망설인다. 그러나 결국 주님의 품에 안겨버린다(흡착). 주님께서는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주신다(반응). 이때 주님의 사랑으로 나의 가슴은 뜨거워진다(발열반응). 새롭게 바뀐 나를 주님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하신다(탈착).

새로워진 내가 세상 밖으로 나가려면 다시 한번 미로와 같은 길을 가야 하는데, 이 길은 너무 좁고 멀기 때문에 뛰어서는 안 되고 천천히 가야 한다(틈새 안에서의 확산). 세상과의 경계에 나온 나는 숨을 한번 고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주님의 사도로서 살고자 마지막 힘을 쓰게 된다(계면확산).

세상에 나간 나는, 내가 들어가 변환되었던 촉매 속에서 나처럼 변환되어 나오는 다른 많은 분자들(형제자매), 다른 촉매에서 나온 분자들(형제자매)과 만나 함께 거대한 흐름을 이루며 어떤 방향을 향해 움직여 나간다. 그리고 이 세상을 더 이롭게 하는 새로운 존재(더 가치 있는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자 밖으로(반응기 밖으로, 교회 밖으로) 나간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진리가 무엇이오?”(요한 18,38)

나는 진리를 깨달아서 주님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음으로써 이 세상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지혜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다양한 각자의 삶에서 행복과 고통을 겪으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진리를 보고 느낀다.

나와 다른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깨달은 다양한 진리의 모습을 교회 안에서 나눔을 통하여 모두 모으고 이것을 모자이크로 만든다면 비로소 하느님의 진리의 모습을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학은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을 더욱 확실하게, 그리고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해주며, 이 세상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함을 단 하나의 오류도 없이 증명해 준다.

* 최규용 알베르토 -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화학생명공학과 교수.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이며,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성김대건안드레아한국학교 교장이다. 미국 워싱턴 한인천주교회 사목회장을 지냈다.

[경향잡지, 2012년 9월호, 최규용 알베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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