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이스라엘8: 요르단 강과 예수님의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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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8-18 ㅣ No.1045

[이스라엘 성지 길라잡이] 요르단 강과 예수님의 세례



필자가 세례를 받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다. 영문도 모른 채 엄마에게 이끌려 잘 이해 안 되는 교리를 받은 다음,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소피아가 되었다. 그 어린 나이에 소피아라는 이름을 고집했던 것도 단지 예쁘게 들린다는 이유가 전부였던….

그러나 성지 이스라엘 방방곡곡을 누비며 삶으로 교리를 경험한 지금, 십수 년이 지나서야 세례명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우치고 그 이름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음은 내 오랜 세월의 무지와 무관심의 표징이겠다.



◆ 필자는 예루살렘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다 광야에 자주 나갔다. 아무것도 없어서 허무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광야는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세속을 피해 산 깊은 곳으로 찾아 들어갔지만, 2000년 전 이스라엘은 번잡하고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황량한 광야로 나갔고 그곳에서 하느님을 갈구했다. 풀 한 포기, 물 한 모금 찾기 어려운 광야에서는 의지할 곳이 하느님밖에 없었고, 주님과 나 사이에 절대적 만남이 가능하다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도 이 광야에서 구세주의 길을 준비하고 세례를 선포했다. 고독한 광야에서 거친 인생을 살았던 요한은 위기의 시대, 팍팍한 삶에 찌들려있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남겼고, 대쪽처럼 살다가 대쪽같이 죽은 요한의 생애는 유구한 세월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서있는 광야의 모습을 많이 닮았다.

 

 

◆ 당시 요한이 선포한 죄 씻음의 세례는 유다인들에게 뜬금없는 의식이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유다인들은 습관처럼 정결 예식을 받기 때문이다. 주검을 만졌거나, 여인의 경우 월경이 끝났거나 하는 다양한 이유로 정결례를 치러왔고, 하느님의 성전에 들어갈 때에도 반드시 정결 예식터에 가서 몸을 깨끗이 해야 했다. 그래서 예루살렘 근처에는 정결 예식터가 많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세례가 유다인들의 정결 예식에서 태동했다 할지라도 두 의식 간의 중요한 차이점은, 요한이 선포한 세례는 평생 한 번으로 족했던 반면, 유다인들은 평생에 걸쳐 정결 예식을 행한다는 점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를 듣고 여염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려고 왔을 때, 예수님이 그들 사이에 있는 모습을 보고 요한은 당연히 망설였을 것같다. 그러나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수 있었던 것은, 그 의미가 죄사함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의 공식적인 선교활동의 첫 테이프를 끊는 의미를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옛것을 벗어버리고 새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장소는 베타니아라고 불렸고(요한 1,28), 마태오 복음서 3장 말씀에 근거하여 요르단 강이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입구 쪽으로 본다. 세례를 받으신 이후(마태 3장) 광야로 나가시어 40일 간 단식 묵상을 하셨기(마태 4장) 때문에 광야를 끼고 있는 요르단 강 유역을 세례지로 추정한다.

원래 베타니아 유적지는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국경 지대로서 요르단 쪽에서만 순례가 가능했고 이스라엘에서는 군인의 동행 없이 들어갈 수 없었지만, 현재는 일반 순례객들에게 양쪽 모두 개방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터로 추정되는 곳은 두 군데이다. 두 번째 후보지는 갈릴래아 호수를 끼고 있는 야르데니트(Yardenit)로서, 마르코 복음 1장에 근거한다.

요르단 강은 헤르몬산에서 뿜어져 나와 갈릴래아 호수로 들어갔다가 나중에 사해까지 연결된다. 베타니아가 위도 상에서 좀 더 아래쪽에 위치한 사해 근처라면, 야르데니트는 위쪽으로 올라간 갈릴래아 호수 남단에 있다.

마르코 복음서 1장에는 나자렛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님이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으셨다고 기록했기 때문에 갈릴래아 지방에 근접한 야르데니트를 세례터로 보는 사람들이 있고, 지금도 순례객들이 찾아와 이곳에서 세례 (갱신)의식을 행한다.

나자렛에서 야르데니트까지 버스로 40분 정도 걸리는 반면, 베타니아 지역까지는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은 모습으로 내려왔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그분이 주님이심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히브리어로 ?????(bat qol), 영어로는 divine voice로 번역이 가능하다. 탈무드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개념으로, 구약시대 예언이 말라키서에서 종말을 고하고 난 다음 예언의 힘을 대신하는 개체로 유다교에 자주 등장하였다.]라고 하면 막연히 위에서 들리는 음성으로 상상할 따름이지만, 이 개념은 유다교에서 매우 중요하다. 바빌론 탈무드를 보아도, 현인들이 어떤 논제를 두고 토론하다가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등장하여 대신 결정해 주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 그러면 요르단 강은?

한국에서 막연히 성경 공부를 할 때는 분명 한강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큰 규모를 상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실제로 보는 요르단 강은 어이없이 작아서 웃음이 날 정도다. 모세 할아버지가 느보 산에서 돌아가신 숨은 이유는 위에서 내려다 본 요르단 강이 너무 작아 기가 막혀서였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겼을 정도이니 말이다.

2000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컸겠지만, 유다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요르단 물을 생활용수, 농업용수로 빼 쓰는 와중에 폭이 많이 좁아졌다. 그러나 어차피 이스라엘이 워낙 미니 사이즈이고 건조한 나라이기 때문에 물만 흘러도 강이라 불렀고, 요르단 강은 그래도 이스라엘에서 큰 강에 들어간다.

그러나 강의 크기를 떠나 요한이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던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먼저, 열왕기 하권 5장에 아람 장군 나아만이 요르단 강에서 몸을 씻은 뒤 문둥병에서 해방되었다. 세례를 통해 오래된 나의 죄를 씻으며 거듭나는 것처럼, 병든 자아를 떠나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묵상한다.

 

그리고 요르단 강에서는 이집트 탈출 사건이 함께 떠오른다. 모세가 죽고 난 다음 히브리인들은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았고, 죽음의 땅 광야를 떠나 생명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면서 요르단 강을 건넜다. 곧, 요르단 강은 40년의 방랑과 시련을 마감하고 안식으로 들어가는 입문이었다.

어쩌면 요한은 광야를 끼고 흐르는 요르단 강에서 활동하면서 백성들을 다시 출애굽 당시로 일깨워 부르는 역할을 했을 듯하다. 나의 방랑과 배회를 마감하고 생명의 땅으로 들어오라는 메아리 같은 외침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탕자가 마침내 회개하고 아버지에게 돌아가 안길 수 있었던 것처럼, 바오로 사도는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성령이 내려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다고 했다(로마 8,15-17).

* 김명숙 소피아 - 한님성서연구소 연구원. 이스라엘에서 성지순례 안내자로 일하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2년 8월호, 글 · 사진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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