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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ㅣ 봉헌생활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가르멜 여자수도원 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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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7-02-12 ㅣ No.31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가르멜 여자수도원 연합회 (상)

 

 

- 성모님께 드리는 찬소을 봉헌하고 있는 수녀들(사진위)과 서울가르멜 수녀원 전경.

 

 

기원과 역사

 

교회와 사회가 분열로 혼탁했던 12세기 때는 은수생활과 성지순례로 자신의 죄를 씻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소원했으며 예수님이 생활하고 활동했던 지역을 방문해 자신의 남은 생애를 고독과 청빈, 무욕의 삶을 살려 애썼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당시 성지순례와 탈환을 위해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고 십자군들은 팔레스타인까지 이르게됐다. 이 때 일부의 사람들은 가르멜 산에 남아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며 은수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수가 점차 많아지면서 공동체적인 수도생활을 하게 됐고 13세기 초(1206년과 1214년 사이) 당시 예루살렘의 대주교인 알베르토 주교로부터 수도회 규칙서를 받아 은수자적 수도공동체 생활을 하게됐다.

 

그러나 수도회 규칙서를 받은 시기도 추측할 뿐 정확히 알 수 없고 또 훨씬 이전부터 가르멜 산에서는 은수자들이 생활해 왔기 때문에 가르멜 수도회의 기원과 설립자가 명확하게 제시돼 있지 않다. 따라서 하느님의 심판장소였고 예언자 엘리야의 기도장소였던 가르멜산(1열왕 18, 1-46)의 기원을 따라 가르멜 수도회의 시작은 구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엘리야의 관상과 기도를 모범으로 살아가던 은수자들은 당시 빈번했던 회교도들의 침공을 피하기 위해 1230년대 유럽으로 수도회를 옮겼고 처음 자리잡은 곳은 프랑스 북부의 발랑시엔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탁발수도회가 번성해 은수자들의 삶의 방식을 따르던 가르멜 수도회원들이 뿌리 내리기 무척 힘들었다. 그래서 이들은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 사도직 활동을 수행하게 됐고 1247년 교황 인노첸시오 4세로부터 원초적 은수정신과 함께 사도직 활동을 겸비한 탁발수도회로 최종 승인됐다.

 

그러나 이후에도 가르멜 수도회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일과 창설자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다. 이러한 가운데 16세기 스페인의 데레사는 관상생활을 주로 하는 원래 수도규칙 정신을 따라 1562년 아빌라의 성 요셉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했고 이후 십자가의 성 요한과 더불어 남녀 가르멜 수도회를 개혁하여 오늘날의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만들었다. 이로써 현재 전세계에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개혁을 따르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와 개혁 이전의 규칙을 따르는 '완화 가르멜 수도회'가 함께 있으며 한국에 있는 모든 남녀 수도회는 '맨발 가르멜 수도회'에 속한다.

 

1337년 화가 쟝 드 셔미노가 엘리야와 그의 제자 엘리사가 가르멜 수도회의 창설자인 것으로 드러내는 그림을 그림으로써 창설자에 대한 이 이야기의 전통은 널리 퍼졌으나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엘리야가 창설자라는 주장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가르멜회를 개혁했던 아빌라의 데레사를 비롯해 십자가의 성 요한 또한 엘리야를 그들의 '아버지'로서 중요한 인물로 생각했고 침묵과 묵상, 복음전파, 예언자적인 증거 등 엘리야의 정신을 잇고 있다.

 

이같은 가르멜의 관상과 침묵, 기도의 전통은 1939년 프랑스에서 나온 가르멜 수녀 3명이 서울 혜화동에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한국으로 전해졌다. 수녀들에 의해 처음으로 한국으로 진출한 가르멜회원들은 일제시대와 6?5를 거치면서 기도와 출판활동을 하면서 성장해왔다.

 

당시 서울 가르멜 수녀원은 55년 부산 가르멜을, 75년 대전 가르멜을 분가시켰으며 80년에는 천진암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분가 시켰다. 대구 가르멜 수녀원은 62년 오스트리아에서 진출한 가르멜 수녀들에 의해 창립됐으며 부산 가르멜 수녀원은 84년 고성 가르멜 수녀원을, 대전 가르멜 수녀원은 87년 충주 가르멜 수녀원을 각각 창립 분가시켰다. 97년 대구 가르멜 수녀원이 상주 가르멜 수녀원을 창립 분가하면서 현재 국내에는 모두 8개의 가르멜 수녀원이 있다.

 

이와 함께 수사들의 한국진출은 1974년 프랑스 '아비뇽 아끼뗀' 관구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인 가르멜회원 3명과 이탈리아 베니스 관구 요아킴 귀조 신부가 입국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가르멜 수도회는 같은 해 9월 8일 창립미사를 거행했고 현재 서울을 비롯해 마산, 광주, 인천 등지에서 47명의 회원들이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

 

또 48년 공안국 신부에 의해 한국 가르멜재속회가 발족됐으나 전쟁으로 잠시 중단됐고 68년에서야 가르멜회 총장으로부터 인준을 받아 정식 가르멜3회를 발족했다. 이후 전국 곳곳에서 가르멜재속회가 창립됐고 91년에는 한국 가르멜 재속연합회가 창립됐다. 현재 국내에는 3천여명 이상의 재속회원들이 있으며 미국 LA, 뉴욕, 워싱턴에서도 재속회 모임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1년 7월 1일, 이진아 기자]

 

 

[영성의 향기를 따라서] 가르멜 여자수도원 연합회 (하)

 

 

- 가르멜 여자수도원의 서원식 장면(사진 위). 관상을 위한 기도생활과 수덕생활은 필수적이며 가르멜 수도생활의 골격을 형성한다.

 

 

새벽 여명이 동틀 무렵, 가르멜의 봉쇄 수도원에서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아침기도 소리가 세상 밖으로 울려퍼진다. 침묵과 고독, 관상으로 수련된 수녀들의 기도소리는 천상의 것처럼 사람들의 영혼을 파고든다. 아침기도와 묵상이 끝난 뒤 바치는 삼시경. 기도소리만 잔잔하게 퍼질 뿐 숨소리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경을 드린 후 하느님께 봉사하러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가르멜 수녀들은 시장기를 면할 정도의 '요기'로 아침을 대신한다. 

 

각자의 소임지에서도 침묵으로 임하는 이들의 외적고요는 하느님과의 영적 대화로 내적 충만감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가르멜 수녀들의 이같은 수도생활은 매일 미사와 7번의 성무일도, 두시간의 묵상기도와 영적독서 등 끊임없는 기도생활로 이어진다.

 

'가르멜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수도회'. 수도회 명칭에서 드러나듯 가르멜의 영성은 성서에서 비롯되며 성모신심께 대한 봉헌을 기본으로 한다. 이와 함께 가르멜 수도회의 영성은 회헌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관상과 사도직으로 표현되는 데레사적 카리스마, 관상적인 삶, 포기와 이탈을 통한 수덕생활로 요약할 수 있다. 가르멜 수녀들은 청빈, 정결, 순명의 수도서약을 완덕을 추구하는 관상적인 방법으로 고행과 침묵을 통한 기도의 삶으로 실천하고 있다. 또 순수한 관상생활 안에서 모든 영혼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복음선교를 가진다. 이같은 순수관상적인 삶은 교회의 사도적 봉사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침묵, 고독, 현실적인 삶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만나게 한다. 이 현존의 체험은 바로 이웃과 공동체, 교회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일치를 가져다 주며 하느님 안에서 일치된 삶을 살도록 한다.

 

가르멜 영성의 근원을 이루는 것은 관상을 통한 '하느님과의 일치'다. 이 영성은 수덕적인 삶의 목표를 실천하고 초자연적인 삶을 바탕으로 한다. 관상을 위한 기도생활과 수덕생활은 필수적이며 가르멜 수도생활의 기본적 골격을 형성한다. 성녀 데레사는 '이 기도생활은 인간에게 은통을 주시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열쇠'라고 했다. 또 관상기도를 통한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필요로 하며 그 여정을 십자가의 성 요한은 '정화(淨化)'라고 말하고 있다.

 

정화의 목표는 하느님과의 일치, 그리고 관상적 삶에 이르기 위한 영성적 수련을 위해서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감각, 세속, 자애심에 대한 정화를 요구하며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를 위해 우리가 나아갈 영적 성장의 길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또 가르멜의 수녀들은 완덕으로 나아가기 위해 아무리 사소한 집착에서라도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수련의 길을 걷는다.

 

가르멜 여자수도회는 엄한 봉쇄와 규율 아래 끊임없는 기도와 복음적 포기의 생활로써 사도직을 도모하는 순수관상 수도회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광야에서 은수하던 사부들의 후예로서 엄한 봉쇄 안에서 21명의 수녀들이 침묵과 고둑 중에 머문다. 초기 가르멜 수도회는 예수님의 열두제자와 성모님을 의미하는 차원에서 13명이 수도공동체를 이뤘으나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데 어려움이 따라 최소한의 인원인 21명이 공동체를 이룬다.

 

가르멜의 수녀들은 순수한 관상생활의 형태 안에서 교회와 함께 기도하고 자기를 봉헌하며 사도직을 다하고 있다.

 

따라서 가르멜회 수녀로 서원하는 그 순간부터 모든 가르멜의 영혼은 교회를 위하고 이웃을 위한 도구의 삶을 살아간다.

 

이같은 삶을 위해 수녀들은 하느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정신을 단련하며 하느님께로 더 나아간다. 이와 함께 공동체 전례생활을 생활의 전부로 삼고있으며 형제적인 인간관계의 애덕, 재화의 공동소유, 상호 영성을 돈독히 하며 공동생활의 친교를 이룩한다.

 

39년 진출한 서울을 비롯해 대구, 부산, 대전 등 8개의 가르멜여자수도원의 수녀들은 정통 가르멜의 정신을 이어 관상과 기도, 묵상의 수도 삶을 살고 있다. [가톨릭신문, 2001년 7월 8일, 이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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