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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842년 김대건의 에리곤호 항해와 아편전쟁: 항해일지와 여정(마닐라, 대만, 정해, 오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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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3-17 ㅣ No.1507

1842년 김대건의 에리곤호 항해와 아편전쟁 : 항해일지와 여정(마닐라, 臺灣, 定海, 吳淞)*

 

 

1. 머리말

 

2. 에리곤 항해일지

   1) 1~3권 : 기본 자료 「Météorologie」

   2) 4권 : 「서문」의 승무원 명단과 항해 기기 목록

   3) 프리깃 에리곤의 여정과 정박

   4) 일별 좌표와 항해 지도

 

3. 1842년 2~6월 에리곤 항해 여정과 아편전쟁

   1) 마닐라 60일

   2) 3주간의 항해와 臺灣 경유

   3) 영국군의 기지, 定海 舟山 41일

   4) 기로 吳淞 80일

 

4. 맺음말

 

 

국문 초록

 

1842년 2월 마카오에서 조선 신학생 김대건이 세실(J.-B. Cécille) 함장의 프랑스 군함 에리곤(Érigone)호에 탑승하였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거의 없으며, 그리하여 기초적인 항해 여정에 대해서도 착오가 적지 않다. 본 연구에서는 에리곤호의 항해 여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항해일지(Campagne dans les mers de l’Inde et de la Chine, à bord de la frégate l’Érigone)를 발견 · 분석하여 1842년 2~6월 에리곤호의 항로를 구체적으로 추적 · 정리하였다.

 

항해일지를 통해 관련되는 김대건의 서한도 면밀하게 분석할 수 있었으며, 또한 에리곤 항해와 정박에 대한 그간의 여러 가지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었다. 김대건의 에리곤호 탑승 기간은 1842년 2월 15일 마카오에서 9월 11일 吳淞까지 7개월 정도에 이른다. 그중에서 항해일수는 26박 27일로 채 1개월이 되지 않은 반면 마닐라, 舟山, 定海, 吳淞에서의 정박 기간은 6개월이나 되었다. 에리곤호가 이처럼 오랜 기간 정박한 원인은 아편전쟁 때문이었다.

 

1842년 9월 11일 세실의 조선행 거부로 김대건은 吳淞에서 하선하여 그의 고국행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에리곤호 탑승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조선인으로서 처음으로 근대의 상징인 군함에 탑승하였으며, 이를 타고 조선이 天朝로 事大하며 세계의 중심으로 섬기고 있는 중화 문명이 ‘영국 오랑캐(英夷)’에게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는 시대의 대전환을 목도하였다. 이것은 마카오와 필리핀에서 4년여 동안 신학교의 울타리 내에서 배울 수 없는 역사적 광야에서의 경험이었다. 이를 통해 김대건의 心象地理는 남다른 시야를 확보하게 되었을 것이고, 육제적 · 정신적 · 영적으로 많이 성숙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 이 논문은 내포교회사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이며, 2021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논문을 수정 · 보완하였음.

 

[교회사 연구 제59집, 2021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도진순(국립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 남지우(국립대만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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