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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5년 환경의 날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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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5-28 ㅣ No.163

건강한 먹거리 문화를 회복합시다


2005년 환경의 날 담화문

 

 

2005년 환경의 날을 맞이하여, 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 만들어 주신 하느님의 축복이 국민 모두, 교우들, 특히 환경보전을 위해 음지에서 일해 온 모든 분들에게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3년에 걸쳐서 우리는 지구온난화, 환경호르몬 등 환경문제들을 언급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범국가적-범종교적-범교구적 연대 및 실천운동에 모든 교우들의 참여를 촉구하였습니다.

 

올해 저는 국민들과 교우들께서 실제적인 문제인 ‘먹거리 문화’에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먹거리 문화는 오늘날 우리 모두의 생존방식과 관련된 당면 문제이며 동시에 생태계 전체와 관련된 거시적 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식탁에 드리운 죽음의 문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가장 먼저 주신 선물이 바로 먹을 거리였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온 땅 위에서 낟알을 내는 풀과 씨가 든 과일나무를 준다. 너희는 이것을 양식으로 삼아라.”(창세 1,29) 이로써 먹을 거리가 생명의 기본권에 속한다는 사실이 확실해집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의 먹을 거리에는 죽음의 문화가 깊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화학유기질비료 및 유독성 농약의 남용, 수질오염, 환경오염에 따른 토양의 산성화, 먹이사슬의 파괴 등으로 인해 먹거리들이 유해물질로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들이 생산해 내고 있는 병충해 내성 GMO(유전자조작) 식품과 유해한 식품첨가물 등은 인간의 건강을 치명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생태계가 교란되고 인간 생명의 질서가 파괴될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 많았던 참새와 제비들도 이젠 거의 눈에 띄지 않는데 이것은 농약의 과용으로 곤충들이 사라져 먹이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들 유해화학물질들은 대부분 쉽게 분해되지 않고 우리 몸이나 토양에 쌓이면서 생명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아토피 등 알러지를 일으키며 장기적으로는 환경호르몬으로 작용하거나 각종 암의 원인이 됩니다. 먹을 거리가 오염된 요즘 우리 주변에 아토피, 비만, 당뇨, 고혈압 등 현대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으며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의 절반 이상이 아토피에 걸리며 평균 수명이 72.6세를 사는 남자의 경우 3명 중 1명 이상이 각종 암으로 사망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더구나 거대 다국적 기업들은 자본주의 침투의 상징인 햄버거 등의 패스트푸드를 전 세계에 퍼뜨려 지구촌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20년 사이에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청소년 비만율이 3%에서 30% 이상으로 거의 10배나 증가해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성장기 청소년들은 키가 커지고 몸무게가 늘어 체격은 커졌지만 체력은 크게 저하되어 신체의 발달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장차 불임과 당뇨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연구 결과입니다.

 

 

생명의 식탁 문화를 위한 통합적 노력

 

먹거리 문화의 문제는 단지 먹을 거리 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 차원에서 볼 때 이는 국가의 농업 및 환경 정책과 맞물려 있습니다. 교회 차원에서 볼 때 이는 우리의 영성 및 생활방식과 잇닿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식탁 문화를 회복-선도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이런 여러 차원을 고려한 통합적인 노력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감안하여 저는 우선적인 대안으로서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농촌 살리기 운동에 적극 앞장섭시다.

 

현재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5%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세끼 식사 중 한 끼도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식량으로 충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쌀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5%에 지나지 않아 사료용 곡물은 97%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한 국가가 아무리 잘 산다 해도 식량자급률이 50%에 미치지 못하면 국제 식량시장의 사정에 따라 언제든지 불안정해 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농촌의 농업을 육성하고 유기농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저는 각 교구에서 활약해 온 환경 및 농촌 관련 단체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더욱 분투해 줄 것을 독려하는 바입니다. 이들은 환경과 농업에 대한 신자들의 의식을 일깨우고 연대적 참여를 이끌어내어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각 본당들이 도농자매결연 및 생활협동조합을 이용한 건강한 먹거리 유통에 적극 나서 줄 것을 권고합니다. 농촌과 도시 교회 공동체간의 활발한 교류는 서로를 위한 상생의 길인 것입니다.

 

둘째, 가톨릭적 생태 영성을 개발-구현하는 데 역량을 기울입시다.

 

사실 가톨릭 교회는 지난 20여 년 간 환경운동을 단순히 사회운동의 부문운동 정도로 인식해 온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회운동 단체들의 활동과 특별한 차별성이 없이 실천운동 정도로 추진해 온 한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운동들을 그리스도교적인 창조 및 생태영성의 차원에서 성찰하고 새로운 대안을 구현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가톨릭적 환경운동은 단순히 환경오염을 줄이는 자연보호운동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생명운동이라는 확고한 신념 위에서 전개되어야 합니다. 곧 우리는 “피조물은 성령의 감실”이라는 인식, 달리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피조물 안에, 피조물을 통하여, 피조물과 함께 계신다.”는 영성적 자각을 생태영성의 토대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가톨릭적 생태영성은 실천적인 형태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영적인 경건, 탐욕에 대한 절제, 자발적 가난과 청빈, 천박한 유물주의로부터 탈피 등을 지향하는 실천적 영성이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가톨릭적 생태영성은 ‘생태’와 ‘정의’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생태는 함께 잘 사는 공동선을 지향합니다. 그런데 현실에 있어서 무공해먹거리를 찾는 ‘구매자’들이 공해를 유발시킨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농민과 도시 빈민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공해 먹거리를 섭취하며 다시 병마 속에서 신음하도록 방치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공해 발생의 주역은 자본을 축적하여 생태계를 계속 파괴할 자본력을 확보하는 가운데 공해를 피하여 휴가를 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공해 피해를 직접 겪는 민중은 계속해서 공해의 현실을 떠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가톨릭적 생태영성의 과제는 오늘의 특권형 웰빙 문화에서 대중형 웰빙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 것을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소박한 삶을 실천합시다.

 

소비사회에 대한 해독제인 자발적 소박은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적 항체입니다. 자발적 가난과 소박이야말로 무차별 약탈로 인한 전 지구적 생명 파괴와 과잉 욕망으로 인한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는 대안입니다.

 

음식은 넘쳐나 전체 식량의 24%인 16조나 되는 음식이 함부로 버려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음식을 낭비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소박한 식단 운동에 적극 동참해야 합니다.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화학조미료 등을 피하고, 채식, 유기농산물, 발효식품 등을 애용하며 심신을 건강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생명이시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있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10)

 

이토록 우리의 풍성한 생명을 원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은 환경 및 농촌을 살리라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2005년 6월 5일 환경의 날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기산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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