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강론자료

4월 21일(수)-부활 2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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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4-04-20 ㅣ No.637

부활 2 주간 수요일

 

        사도행전 5,17-26        요한 3,16-21

    2004. 4. 21.

주제 : 믿는다는 것의 힘

 

우리는 신앙인이라고 부릅니다.  

그 소리는 신앙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는 소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한자의 뜻을 이용하여 설명할 수 있는 신앙(=믿고 받드는 일)이라는 말을 우리가 쉽사리 쓸 수 있는 말로 표현한다면 믿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내 눈으로 봤던 것의 존재(存在)를 있는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실 확인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들이 그 사실을 헛갈려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올바르게 믿는다고 말하기 십상입니다.  지난 주일에 들었던 복음(=부활 2주 다해)에 나오는 토마스 사도가 그 본보기를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알아듣는 사람들에 따라서 여러 가지 얼굴로 나타나는 믿는다는 것의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신앙의 요소야말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힘이 다르고, 드러내고 싶은 자세에 따라 그 얼굴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아주 분명한 한 가지는 신앙은 ‘자격증’이 아니라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신앙인들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면서 ‘그 신앙을 자격증의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자격증은 상황에 따라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도 하고, 그 효력을 드러내는 것이 금지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은 내가 능력을 가졌다고 말하거나 우기는 것으로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고, 다른 기관이기 때문에 그 일에는 내 생각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믿음에 있어서 그 효력은 다릅니다.  누군가가 내 삶을 가로막는다고 드러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애석하게도 내 스스로 그 힘을 믿고 싶지 않다면 그 믿음이 드러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사람들의 본보기에서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믿음을 두려워했던 사람이 가진 자세라고는 ‘하지 말라’는 명령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명령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우리가 빛을 사랑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빛을 피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것은 순전히 내가 행동하기 나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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