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강론자료

2016-08-07.....연중 제19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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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8-06 ㅣ No.2123

 

연중 제19주일 (다해)

지혜 18,6-9       히브리 11,1-2.8-19      루카 12,32-48

2016. 8. 7. 이태원

주제 : 믿음을 드러내는 삶이란?

무척 덥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사람은 그런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겠지요?

 

피서(避暑,=시원한 곳으로 옮겨 더위를 피함)는 다녀오셨나요? 우리가 피서를 다녀왔다고 해서 더위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고 그래도 덥겠지만, 이렇게 더운 때에 다르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서로를 위해서 알려주실 분이 있을까요?

 

오늘 들은 말씀에서 우리가 묵상할 내용은 믿음에 대한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에서 인민군 장교(=림계진)가 주인공 장학수-대위를 향해 외치던 소리가 기억에 남습니다. 믿음에 관한 내용인데, ‘너는 신의 모습을 봤니, 그 신이 하는 일이 무엇이더냐고?’하는 소리였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인간을 넘는 대상을 확인하지 못한 공산주의는 신이나 하느님을 거부했다는 얘기가 될 것인데, 우리가 알고 따르는 믿음의 의미와 그 실체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의 삶은 어떠할까요? 신앙은 우리의 삶을 활기차게 하거나 의기소침한 분위기를 바꿀까요? 아니면 살고 있는 현실의 발걸음을 더 무겁게 만든다고 생각하겠습니까? 두 가지 얘기에서 분명히 한 가지 방향은 있을 것입니다.

 

믿음이나 하느님에 관한 것처럼, 현실의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만나기도 어렵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것에 대한 사람의 판단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삶을 나누고 또 나눌 때, 나누는 방법에 따라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대답은 아주 복잡할 것 같지만, 사실 그 시작은 아주 간단한 차이에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수학의 이론을 적용해서 말하면, 한 개의 점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선을 그을 때, 그 출발점은 같은 데서 시작하지만 긋기 시작하고서 시간이 지나면 선으로 긋고 있는 끝점은 어디까지 가 있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보이지 않는 것과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믿음이라는 글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역사는 아닙니다만, 출애굽의 사건이 일어나고서 1000년이 훨씬 더 지난 다음에 그 일의 의미를 생각하는 지혜서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역사의 어느 한 순간을 대하면서 그것이 현실의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도 될까요,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역사가 지금의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일이었다고 여겨야 하겠습니까? 다시 물으면, 믿음이라는 말의 의미를 좀 더 진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의 세상을 무시하는 고리타분한 생각이라고 여겨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보이는 것을 넘는 것 외에 또 다른 길이 있음을 보여주는 의미가 있는 행동이겠습니까?

 

믿음은 대하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서 드러나는 모습이 다릅니다. 이렇게 구별하면,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이야기 할 것이고, 동시에 믿음이 우리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강조할 것입니다. 반면, 세상의 삶을 더 중요하게 대하거나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믿음은, 영화에서 들은 내용이라고 제가 소개했습니다만, 인민군 장교가 말한 신 혹은 하느님에 대한 것처럼 의미가 없다거나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의 삶에서 생각으로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가진 한계입니다. 그러니 둘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고, 둘 중에 한 가지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겠습니까? 저것이겠습니까?

 

믿음을 갖고, 그것을 드러내려고 하는 사람의 삶은, 혼인잔치에서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에 문간에 있으면서 그 주인을 맞이하려는 사람과 같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이 있다고 하더러도 그것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혼인잔치에 참석한 주인은 내가 정한 시간에 와야 해라고 말하면서 제 멋대로 사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시간이 흐르는 일에 따라서, 이것을 선택한 결과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저것에 대한 결과가 드러날 때에, 우리는 어떤 삶의 결과를 맞이하겠습니까? 좋은 것을 생각할 줄 안다면, 좋은 결과가 생길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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