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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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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공동체 갈등 상담: 불편하게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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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27 ㅣ No.156

[공동체 갈등 상담] 불편하게 살아야

 

 

본당이 시끄러운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치게 편안함을 추구하는 신자들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물론 편안함은 인간의 욕구 중에서 기본적이고도 간절한 욕구이지요.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총각이 장가가는 이유는 편하게 밥상 받기 위해서입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두는 이유도 부엌살림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하지요. 본당 주임신부가 보좌신부를 두고 싶어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듯합니다. 이처럼 편안하게 살고픈 욕구가 강하다보니 편하게 사느냐 불편하게 사느냐가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시집간 딸이 친정에 오면 친정어머니가 제일 먼저 보는 것이 손이라고 합니다. 딸 손가락이 살쪄서 반지가 안 들어갈 정도면 부잣집 맏며느리라고 좋아하지만, 손바닥이 갈라지고 피부가 거칠면 시집 잘못 가서 고생한다고 불행하다고 모녀가 붙들고 한바탕 웁니다. 이처럼 하루 종일 일하고 고생하는 사람들은 불편하게 살기에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심지어 벌을 받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나온 것을 두고 저주받았다고 하는 이야기마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제주도 해녀들의 꿈의 섬인 이어도 같은 곳을 바라고, 천국은 아무 일도 안하고 호의호식하는 곳이라고 상상합니다. 또 현대 산업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경제 강국들을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나라의 산업이 편안함을 추구하고, 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도구들을 갖추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산업이 각광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그렇다면 늘 편안한 것이 좋은 것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모든 영성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왜냐하면 편안한 삶에는 중독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몸이 편안하려고 꼼짝도 안하고 기계가 다 해주면, 당연히 살이 찌게 되고 온갖 질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심리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은 심리적인 비만을 불러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는 데만 집착을 하면 융합이라는 방어기제가 생겨서, 안보면 죽고 못 살 것처럼 굴지만 서로의 영역이 지켜지지 않는, 즉 내 생각이 네 생각이고 네 생각이 내 생각이라는 유치한 관계가 형성되고 배타적인 공동체가 만들어지며 심리적 퇴행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쓸데없는 소문이나 만들어내는 삼류집단이 될지도 모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약간은 불편하게 살아야 합니다. 몸은 불편하게 써야 건강해집니다. 수도원에서 장수하는 분들은 대부분 하루 종일 무엇인가 꼬물거리면서 몸을 사용하신답니다. 당뇨로 고생하던 선배 신부님이 핸드폰을 쓰지 않고 굳이 유선전화를 사용하는 이유가, 불편하지만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마음 건강 역시 그렇습니다. 가끔은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도 함께 지내는 시간을 가져야 심리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는 밥 먹는 자리이건 혹은 기도하는 자리이건 자기 마음에 드는 곳에 앉지 못하고 매번 지정해주는 자리에 앉아서 불편함을 견디는 훈련을 합니다.

 

산에 오르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뿌리가 깊고 굵은 나무들은 물도 없고 흙도 없는 바위틈바구니에서 자란 것들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뿌리를 길고 굵게 뻗었기 때문입니다. 사람 역시 나무와 유사합니다. 불편한 환경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은 그 마음의 뿌리가 깊고 굵습니다. 그러나 순탄하고 편안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뿌리가 가늘고 얇아서 작은 일에도 쉽사리 흔들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냅니다. 결국 본당이 시끄러운 것은 ‘불편함의 영성’이 얕은 분들이 많아서입니다.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은 자기를 불편하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떠들썩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본당 신부나 수도자 또는 다른 신자들이 자기 영역을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하면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분들은 신경쇠약일 가능성도 높으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소공동체모임길잡이, 2012년 11월호,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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