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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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필리핀 롤롬보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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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01-08 ㅣ No.989

필리핀 롤롬보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

하느님 사랑한 성인의 숨결 살아 숨쉬다


김대건 성인은 이곳 롤롬보이를 3차례 방문하고 1년 이상을 공부하며 생활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최초의 한국인 사제로서 한국교회의 큰 걸음을 뗀 김대건 성인은 25살의 짧은 생애에 겨우 1년 남짓 사제생활을 했음에도 수많은 발자취들이 아직도 성인의 삶을 말해준다. 고향인 솔뫼성지에서부터 박해를 피해 머문 골배마실, 사제가 돼 처음으로 밟은 고국 땅인 용수리포구와 나바위, 어려서 세례를 받고 마지막 미사를 집전했던 은이성지, 순교의 피가 뿌려진 새남터성지, 시신이 묻힌 미리내성지에 이르기까지. 그 발자취만으로도 김대건 성인의 생애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신학생으로서 공부하던 마카오에서도 김대건 성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김대건 성인이 공부하던 신학교,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김대건 성인이 자주 찾아가 기도했다고 전해지는 성 바오로성당이 남아 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김대건 성인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그를 기억하고 기도하고 있지만 남쪽의 섬나라, 필리핀의 발자취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필리핀 불라칸(Bulacan)지역의 롤롬보이(Lolomboy). 그곳에 남아있는 김대건 성인의 흔적을 찾아가봤다.
 

한글로 적힌 표지판 눈에 들어와

마닐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약 1시간 30분, 거기서 또다시 30분가량을 필리핀 특유의 교통수단 지프니(Jeepney)로 달렸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작은 마을 롤롬보이. 지프니에서 내려 매캐한 매연을 헤치고 주변을 보니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낯설다. 고온다습한 날씨도, 건물들도, 사람들의 모습도, 심지어는 풀포기에 이르기까지 달랐다. 지금이야 그나마 포장도로나 콘크리트 건물들이 늘어서 그나마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지만 170여년 전 열일곱의 어린 신학생 김대건이 이 땅을 밟았을 당시에는 조국의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별세계였을 것이다.

 

롤롬보이본당의 김대건 성인상의 모습, 성지조성으로 롤롬보이본당은 김대건 성인을 본당주보성인으로 삼고 성인의 축일에는 마을 전체가 성대하게 축제를 벌이며 기쁨을 나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알파벳으로 가득한 이 이방의 땅에 한글로 또박또박 적힌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김대건 성인의 늠름한 동상이 반기고 맞은편에는 최양업 신부의 동상이 당장이라도 복음을 선포하러 갈 듯 지팡이를 짚고 있다.

김대건 성인이 이곳 필리핀에 처음 온 것은 1837년 8월. 서울에서 순명과 봉사를 서약하고 6개월간의 험난한 여정을 거쳐 마카오에 도착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신학생이 공부를 시작한 지 불과 두달 만이었다. 신학생들은 당시 아편문제로 혼란에 빠진 마카오를 피해 필리핀의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1839년 4월 다시 민란을 피해왔고 1842년 2월 대만으로 가기 전 10여 일을 머물기도 해 김대건 성인이 이곳에서 생활한 기간만 1년 이상이다. 현재 김대건 성인의 성지가 조성된 곳이 바로 도미니코수도원 터다.

기와를 활용,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경당과 7궁방탑의 모습.


롤롬보이 주민들도 성인에 큰 관심 가져

김대건 성인 동상 뒤편으로는 성인의 유해소와 기와지붕의 경당이 있고 경당 옆에는 커다란 망고나무가 서있다. 도미니코수도회의 기록에 따르면 지금은 ‘망향의 망고나무’로 불리는 이 나무 곁에서 김대건 성인이 부친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망고나무를 뒤로하고 길을 따라가면 7궁방탑이 보인다. 관상의 7단계를 상징하며 김대건 성인이 온갖 역경을 딛고 공부하던 과정을 기억하게 하는 이 탑은 근방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로 탑 7층에 올라가면 롤롬보이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탑에는 각 층별로 작은 방을 마련해 기도와 피정 등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곳은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롤롬보이 사람들 사이에선 ‘한복을 입은 목 없는 귀신이 나오는 흉가’로 불리며 방치돼 있었다. 그러나 1986년 고 김수환 추기경, 고 오기선 신부 등이 김대건 성인의 동상을 세우고 2002년부터 성안드레아수녀회가 성지를 매입, 조성하면서 ‘목 없는 귀신’의 소문은 사라지고 롤롬보이 주민들도 김대건 성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유해소에 안치된 김대건 성인의 유해 모습.


후원금 부족으로 성지 건축 진행 힘들어

성안드레아수녀회는 약 10년간 후원금이 마련될 때마다 성지를 가꿔 지금의 아름다운 건물들을 조성했지만 후원금의 부족으로 진척이 안 돼 아직도 성지의 중심이 될 성당과 봉헌소 등의 건축이 진행 중이다. 특히 김대건 성인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갓’을 형상화해 8층 높이의 건물로 건축 중인 성당은 호숫가에 지어져 성지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자금 부족으로 건축이 중단된 채 방치되기도 했다. 또 피정의 집도 있어 30여 명이 숙식할 수 있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적인 느낌의 건축물들은 그 자체로도 이목을 끌기 충분했지만 성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롤롬보이 사람들에게 김대건 성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심어줬다. 롤롬보이본당은 김대건 성인을 본당주보성인으로 삼고 성인의 축일에는 마을 전체가 성대하게 축제를 벌이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김대건 성인의 정신은 필리핀에서도 퍼져나가고 있었다. 필리핀, 이 멀고도 가까운 섬나라에서 유학생으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학업에 정진했던 김대건 성인의 숨결이 느껴졌다.

유해소 외부 모습.



‘갓’을 형상화한 성당(좌측)과 봉헌소(우측)의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등 완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성지에 마련된 피정의 집은 30여 명이 숙식할 수 있지만 찾는 방문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피정의 집 모습.

※ 순례문의 031-673-8560 성안드레아수녀회, 후원계좌 310-08-225166 우리은행 (예금주 김화숙)

[가톨릭신문, 2012년 1월 8일, 롤롬보이(필리핀)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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