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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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새로운 복자: 천주님의 사랑을 아름답게 꽃피운 부부 정광수, 윤운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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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2-21 ㅣ No.1529

[새로운 복자] 천주님의 사랑을 아름답게 꽃피운 부부 정광수 · 윤운혜

 

 

천주님에 대한 신앙 안에서 아내를 크게 품어준 남편 정광수(바르나바), 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며 천주님에 대한 사랑을 더욱 꽃피운 아내 윤운혜(루치아)! 그런데 이들 부부의 혼인은 쉽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혼인준비는 정 바르나바의 부모가 윤 루치아가 천주학쟁이라는 이유로 혼서와 채단(함: 函)을 보내지 않아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윤 루치아와 그녀의 부모는 정 바르나바의 믿음과 사랑만 믿고 혼례를 올립니다. 그들 부부에게는 하느님 안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행복이 있었기에, 그것이 시집살이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무던히 견뎌내는 힘이 되었습니다.

 

여주 가마골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정 바르나바는 당시 교회의 지도자인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을 찾아가 교리를 배워 입교해 신자가 됩니다. 이후 정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진리에 상당한 감명을 받고 신앙생활에 깊이 젖어, 1794년 말 주문모(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자 한양으로 올라가 성사를 받고 교리도 보충합니다. 그런 다음 주 신부의 명에 따라 여주의 김건순(요사팟)과 동료들을 입교시키는 중개자 역할을 하고, 고향 인근에 교리를 전하면서 비신자를 입교시키는 데 노력합니다. 그러면서 부모님과 여동생 정순매(바르바라)에게도 자주 교리를 설명하며 천주교 신앙을 이해시키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전통을 고수하는 부모는 막무가내였고, 오히려 아들을 천주교로부터 떼어놓는 일에 열중하였습니다.

 

이에 정 바르나바는 아내와 함께 기도를 드린 후, 한양 벽동(현 종로구 송현동)으로 이주합니다. 부모에 대한 효의 도리는 아니었지만, 하느님이신 부모(大父母)께 대한 효를 위해서는 불가피했습니다. 이때 이미 열심한 신자가 되어 있던 동생 정 바르바라도 함께 따라나섭니다. 이곳에서 이들은 집 한쪽에 집회소를 짓고 주 신부를 모시고 미사를 봉헌하며 은혜로운 시간을 갖습니다.

 

이들 부부는 밤낮으로 성경과 교리를 강습하고, 교우들과도 주야로 강학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서적을 베끼고, 예수님과 성모님의 상본이나 묵주 등을 제작하여 교우들에게 팔거나 나누어주면서 이들 부부의 집은 ‘한양의 성물 보급소’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벽동에 가면 언제든지 원하는 서적과 성물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윤 루치아는 남편을 지방으로 피신시킨 다음, 교회 서적과 성물들을 교우의 집으로 옮겨 숨깁니다. 그리고 혼자 집을 지키다가 급습한 포졸들에게 체포됩니다. 윤 루치아는 포도청에서 배교를 강요당하며 심문을 받았으나, 조금도 굴하지 않고 배교를 거부하다가 순교(참수)의 영광을 받습니다.

 

아내 윤 루치아가 순교할 당시, 정 바르나바는 한양과 지방을 오가면서 피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피신을 단념하고 스스로 그들 앞으로 나아가 천주교 신자임을 고백하며 참수당하여 하늘에서 아내와 함께 천상의 영광에 참여합니다.

 

어렵게 혼인했지만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했던 부부! 하느님 안에서 속 깊은 사랑을 나누었던 부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님 말씀에 심취했던 부부! 손가락에 피멍이 들어가며 성물을 만들어 하느님 사랑을 주위에 나누던 부부!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고백한 부부! 이들 부부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모든 부부에게 등불이 되어 계속 비추고 있습니다.

 

[2015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수원주보 4면, 최인각 바오로 신부(인계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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