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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건축칼럼: 불러서 모인 거룩한 집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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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5-08 ㅣ No.854

[건축칼럼] 불러서 모인 거룩한 집 ‘안’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 성당(468-483년)

 

 

한때 학생들에게서 건축사 책에 그렇게도 많은 성당 건물이 실려 있는 것은 그리스도교가 강력한 권력으로 견고한 건물을 수없이 지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약간 도발적이지만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건축사에서 오직 성당만이 내부 공간을, 더구나 초월적인 공간을 인간들에게 계속 완성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그리스어로 ‘에클레시아(ekklēsia)’라고 합니다. ‘ek(어디에서 나와 어디로)’와 ‘kaleō(부르다)’가 합쳐서 생긴 말입니다. 그리스도교는 공적인 집회를 뜻했던 이 말을 ‘부름을 받아 나온 사람들의 모임’이라 해석했습니다. 그곳을 벗어나 이리로 오라고 하느님께서 부르셔서 모인 이들의 공동체, 이것이 ‘에클레시아’ 곧 교회입니다.

 

함께 있다 함은 같은 공간에 있다는 뜻입니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어야 가족이 되고 공동체가 됩니다.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신앙 공동체도 모여 함께 있을 공간이 반드시 있어야 했는데 그것이 성당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부름을 받아 모인 당신의 백성을 저 먼곳이나 집 밖의 마당에 세워두지 않으시고, 놀랍게도 당신의 집 ‘안’에 불러 모으셨습니다.

 

사람을 백성으로 부르시고 그들을 집 ‘안’에 불러 모은 종교는 오직 그리스도교뿐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그리스도교처럼 믿는 이들을 신전 ‘안’까지 불러들인 종교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들의 신전에는 내부 공간이랄 것이 없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전 탑인 지구라트는 담장을 몇 겹이나 두르고 높은 곳에 성소를 두어 신과 백성 사이를 격리했고, 고대 그리스에서도 높은 곳에 지어진 신전을 멀리서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 집인 성당의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 앉은 것, 심지어는 제대의 바로 앞까지 다가갈 수 있는 것은 그 자체가 은총이요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은 가운데에 선 사람을 모두가 둥글게 에워싸든지, 다른 사람들이 나란히 마주 보는 두 가지 형식으로 모입니다. 성당에서 우리가 주님의 식탁을 에워싸거나 마주 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평면을 각각 중심형, 장축형이라고 부르는데, 중심형 성당은 동방 비잔틴 교회에서 발전했고 장축형 성당은 중세 서유럽의 교회에서 발전했습니다.

 

성당은 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당에서는 벽으로 에워싸인 내부만이 거룩합니다. 거룩하신 분께서 당신의 집 ‘안’에 우리를 불러들여 몸소 감싸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는 일찍이 이런 내부 공간을 거룩한 분의 빛으로 통합하는 성당을 지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가장 오래된 원형 성당인 산토 스테파노 로톤도 성당(Santo Stefano Rotondo, 468~483년)을 보세요. 불러서 모인 우리가 함께 있어야 할 거룩한 내부 공간의 진수가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2022년 5월 8일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서울주보 7면,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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