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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교회 안 상징 읽기: 수리부엉이에서 읽어내는 상징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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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1-07 ㅣ No.4359

[교회 안 상징 읽기] 수리부엉이에서 읽어내는 상징성들

 

 

1달러 지폐 속의 수리부엉이(좌) 수리부엉이

 

 

미국의 1달러짜리 지폐의 한쪽 면 오른쪽 상단 귀퉁이에는 올빼미가 있다. 한 나라에서 발행하는 화폐에, 그것도 여러 구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올빼미가 자리 잡게 된 데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깊은 의미와 곡절이 있을 것이다.

 

올빼미(이 글에서는 이제부터 ‘올빼미’ 대신에 올빼미과의 한 종으로 머리에 난 뿔 모양의 깃털이 특징인 ‘수리부엉이’라고 쓰기로 한다)는 세계의 여러 문화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상징성을 지닌 동물로 여겨져 왔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부엉이, 지혜와 경계심의 상징

 

수리부엉이는 특이한 생김새와 생태로 일찍부터 지혜와 지식을 상징했다. 아득한 옛날의 신화에서 수리부엉이는 지혜의 여신들, 곧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와 로마 신화의 미네르바와 상징적으로 관련되는 새였다. 그리고 그 시절의 사람들이 보기에, 수리부엉이는 어두운 곳에서도 볼 수 있고 소리도 없이 날아다닐 수 있는 새였다. 그런가 하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는, 그러니까 큰 눈을 결코 깜박이거나 감는 일 없이 늘 모든 것을 지켜보는 새였다. 실제로 수리부엉이는 눈동자를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 대신에 목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고개만 돌려서 모든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새다. 이러한 능력과 특성으로 수리부엉이는 예리한 관찰력과 경계심을 상징하는 새가 되었다.

 

수리부엉이의 이러한 상징성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에게도 받아들여졌다고 할 수 있겠다. 또는 아테나 여신과 미네르바 여신을 숭배하던 고대 문명이 미국의 건국 이념에도 연결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신화 속 지혜의 여신들이 미국이라는 새로운 국가에서 지향하고 수호하고자 했던 가치들, 곧 지혜와 정의의 수호자로 여겨졌다고나 할까. 아니면 이 여신들이 더 나은 사회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의감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다고나 할까. 나아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지켜보는 수리부엉이의 눈길은 또한 미국의 국민이 의사를 결정할 때 필요한 경계심과 현명함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일깨우는 데 한몫을 했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수리부엉이가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정체성의 핵심 덕목인 지혜, 경계심, 정의라는 지속적인 가치를 상징하게 된 것이라 하겠다.

 

- 필사본 속의 수리부엉이 삽화

 

 

수리부엉이에 대한 중세기의 이해

 

중세 시대에는 동물에게서 어떤 상징성을 읽어내는 것이 사람들이 동물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들 중 하나였다. 앞선 글들에서도 이미 말한 것처럼,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동물들 중 몇몇은 낙원(하느님의 세계)의 특징적 면모들을 반영하고 하느님의 진리와 선과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사자의 고결하고 당당한 자세, 독수리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식견, 개미의 인내심과 부지런함, 비둘기의 배필에 대한 충실함이 그것인데, 이는 동물들이 좋은 평판을 듣게 해주는 좋은 속성들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피조물들은 이 세상 안으로 스며들어 온 죄와 악을 가리키는 존재로 여겨졌다. 항상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숨어 사는 개구리,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희생물들을 잡으려고 지옥 같은 덫을 쳐놓는 거미, 낮에는 볼 수가 없어서 밤에만 날아다니며 잠든 동물들의 피를 빨아먹는 박쥐, 진중하지 못한 원숭이 같은 동물들은 갈라진 혀를 날름대는 뱀과 더불어 악마를 상징하는 나쁜 동물이었다. 이 동물들은 마귀가 늘 어둠 속에 숨어서 사람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들고 그 영혼을 죽음으로 몰아가기 위해 호시탐탐 노린다는 점을 사람들이 상기하고 경계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들이었다.

 

중세 시대에 세워진 성당들에서는 돌이나 나무에 새겨진 선하거나 악한 여러 동물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들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는 그리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겠지만, 그 상징성을 이해하던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는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수리부엉이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 사람들이 보기에 수리부엉이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새였고, 그런 점에서 애도와 폐허를 나타내는 새였다. 그러다 보니 수리부엉이는 빛 속에서 살기를 포기하고 죄악의 어둠 속에서 사는 삶을 선택한 죄인들을 가리키게 되었다. 나아가, 어둠 속에서 숨어 지내며 빛을 기피하기 때문에 어둠의 지배자인 마귀를 상징하게도 되었다.

 

중세기에 나온 동물 우화집은 수리부엉이가 자신이 배설한 오물로 자기 둥지를 더럽히는 불결한 새라고 말했다. 수리부엉이는 무덤과 황폐해져 가는 구조물들 주변에서 서식한다. 그리고 어쩌다가 환한 낮에 밝은 곳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다른 새들에게 공격받는다. 이러한 습격은 대체로 사악한 무리를 향한 의로운 이들의 정당한 적대감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수리부엉이가 다른 새들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을 중세 시대에 나온 필사본 책들에서도 종종 볼 수 있고, 또한 노약자들이 오랜 시간 서서 기도할 때 손으로 짚고 의지할 수 있도록 마련된 성당의 구조물이나 묘비에서도 적잖이 볼 수 있다.

 

필사본의 삽화, 새들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치스코

 

 

수리부엉이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유다인들을 상징하기도 했다. 중세 시대의 한 동물 우화집은 수리부엉이의 특성을 풀이해 말하면서 유다인들에 빗대어 이렇게 말했다. “이 새는 우리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분을 거부한 유다인들을 가리킨다. 유다인들은 이스라엘의 임금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느냐는 빌라도의 물음에 ‘우리 임금은 황제뿐이오.’라고 대답했다(요한 19,15). 그리고 당신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으냐는 물음에는 ‘그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오.’(요한 9,29)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답변들을 미루어 볼 때, 유다인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다.”

 

중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에서 시편만을 따로 필사한 뒤 책으로 묶어서 읽곤 했는데, 13세기에 만들어진 한 시편 필사본에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새들에게 설교하는 장면이 삽화로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수리부엉이가 눈에 띄는데, 이 수리부엉이는 특별한 개종 대상인 유다인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가 하면, 중세 시대의 동물 우화집에서는 애초 악의 표상이던 수리부엉이가 그리스도 또는 무엇인가 좋은 것을 가리키는 부차적인 상징성을 가지기도 한다. 이 점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다분히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이 놀라운 융통성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무엇이든 하느님의 어떤 속성을 나타낼 수 있고, 세상과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신 그리스도의 면모를 반영할 수 있다는 폭넓은 이해에서 비롯한다.

 

그런 점에서 수리부엉이는 일차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가졌음에도,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한 장소에서 지내는 새로 알려져 있었기에 중세 시대의 수도원들에서 수도자들이 살아가는 독거 생활과 관상 생활을 가리키기도 했다. 그리고 수리부엉이의 빛을 기피하는 특성은 인간적인 찬사와 그것이 주는 영예에 연연하지 않는 가난하고 겸허한 마음과 자세를 뜻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은수자들이 기도하는 장면을 표현한 그림에 더러는 수리부엉이가 등장하기도 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1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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