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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순례 일기: 성모 발현지를 순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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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7-12 ㅣ No.2110

[평신도의 순례 일기] 성모 발현지를 순례하며

 

 

얼마 전, 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님께서 은퇴 후에 살고 계시는 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평생 그러하셨듯 여전히 가난한 사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아흔을 넘긴 주교님의 모습처럼, 그 집은 한적한 시골 마을과 꼭 어울렸습니다. 마을에 성당이 없어 거실이 미사를 드리는 곳으로 쓰이고 있었는데, 집을 방문한 건축가는 그 공간의 아이디어에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리포터가 ‘주교님께서 사시는 곳이고 경당이 있는 곳인데, 성모상이 보이질 않네요?’라고 묻자, 주교님께서는 “성모상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라고 웃으며 답하셨습니다.

 

스페인, 프랑스와 더불어 우리 나라 신자의 성모신심은 유명합니다. 한겨울에 루르드를 순례하면서도 결코 ‘침수예절’을 거르지 않는 우리나라 신자들을 보면서 유럽의 순례자들은 자주 놀라고는 합니다. 성당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커다란 성모상을 놓아두고, 가정집 탁자 중앙에도 성모상을 놓아두는 한국 신자들이니, 이쯤 되면 다른 이들이 ‘천주교는 성모님을 믿는 종교’라고 말하는 것을 탓하기도 어렵지요. ‘성당에 성모상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라는 두봉 주교님의 이야기가 귀에 남은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 순례단을 모집하더라도, 우리나라 신자들만큼 성모 발현지들을 사랑하는 이들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신앙의 중심지인 이스라엘에 버금가는 인기(?)를 자랑하는 성모 발현 성지 순례, 성모님께서 직접 발현하셨던 세계 곳곳의 장소는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합니다. 흔히 가장 먼저 떠올리는 프랑스의 루르드, 포르투갈의 파티마, 벨기에의 바뇌는 세계 3대 성모 발현 성지이지만, 사실 성모 발현지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18세기에 성모님의 발현이 보고된 장소가 100여 곳이 넘는다는 비공식적 기록이 있을 정도니까요. 물론 의도적으로 꾸며내거나 환상이나 착각으로 생겨난 허황된 이야기라는 것이 밝혀지는 경우도 많기는 했지만요.

 

이렇듯, 3대 성모 발현 성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성모 발현지가 있습니다. 프랑스만 해도 그 유명한 루르드 외에 파리 뤼뒤박(Rue du Bac)의 기적메달 성당, 퐁맹(Pontmain), 라살라트(La Salette)가 있습니다. 라살라트는 해발 1,800m가 넘는 곳으로 전 세계 성모발현지 중에 가장 높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벨기에 바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보랭 역시 성모님께서 30여 차례나 발현하셨던 곳입니다. 멕시코의 과달루페 성모 발현은 남아메리카 전역에 큰 영향을 끼친 기적이었습니다.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전교하시던 야고보 사도에게 성모님께서 나타나신 이래 사라고사는 대표적인 성모신심지입니다. 아일랜드에는 노크(Knock) 성모 발현지가 있는데, 다른 발현 때와 달리 단 한 마디의 말씀도 남기기 않으셨으므로 ‘침묵의 성모님’이라 부릅니다. 최근 우리나라 신자가 많이 찾는 베트남의 라방은 1789년 박해받는 신자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곳이며, 동남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모 발현지로 인정받았습니다. 가장 최근의 발현은 1980년 르완다의 키베호라는 마을이었는데, 집단학살을 예언하신 지 10여 년 후 르완다에 내전이 일어나 100일간 무려 10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학살되었습니다. 이밖에도 이탈리아, 체코 그리고 리투아니아 등에서도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성모 발현 성지가 많습니다.

 

오래전 영국 순례를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로 나뉘는 영국은 비록 지금은 단일한 국가이나 각 지역 사람들의 역사적, 문화적 정체성이 매우 뚜렷하여 사실상 별개의 나라나 다름이 없습니다. 종교적으로도 그러한데, 잉글랜드는 성공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스코틀랜드는 스코틀랜드 장로교가, 그리고 아일랜드는 가톨릭 신자가 대다수이지요.

 

저희는 아일랜드에 있는 성모 발현지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 이름조차 생소한 ‘노크’ 발현지에 대해 알고 있는 순례자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뜻밖에도 성지는 아주 아름답고 넓게 조성되어 있어서, 조용히 기도하며 순례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미사를 봉헌했던 발현 성당과 최근에 지어진 아름다운 대성당, 작은 언덕 아래에 만들어진 성체조배실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성모님께서 알려주신 곳에서는 여전히 샘물이 솟아나오고 있어, 여느 발현지와 같이 물통에 샘물을 받기도 했습니다.

 

노크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의 특별한 점은 두 가지입니다. 목격한 이에게 단 한 마디의 말씀도 남기시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정배이신 성 요셉과 복음사가 성 요한께서 함께 나타나신 것이죠. 교회에서는 노크의 발현을 조사한 후, 그 어떤 말씀보다도 훨씬 중요한 메시지를 남기셨다고 고백합니다. ‘침묵이야말로 신앙인의 가장 지혜로운 태도라는 것’이지요. 순례단이 방문했을 당시 그곳은 매우 한적하고 조용해서, 함께 성지를 다니며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후 침묵의 기도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조용한 가운데 노크 곳곳을 다니며 기도하였습니다.

 

모이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 성당 정문으로 걸어가다보니 이미 몇 분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자매님 한 분이 말씀 하셨습니다.

 

“노크 발현지가 참 좋네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고마워요. 언젠가 꼭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곳이네요.”

 

그런데 한 형제님께서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어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이곳은 참 중요한 곳이고 많은 신자가 순례하고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곳이라면 더 많은 순례자가 찾아와야 하는 게 아닌가요? 루르드나 파티마, 바뇌처럼 말입니다. 심지어 바뇌는 노크보다 훨씬 작지 않나요? 기도하기에는 좋은 곳이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성모님의 발현에 대해서도 조금 믿음이 덜하네요. 옆에 있는 요셉은 내가 신앙심이 약해서 그런다며 날 놀리는 중이었지요.”

 

사실 성모 발현지를 순례하다보면 형제님과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다른 순례자들은 진심으로 기도를 하는 것 같은데, 자신은 성모님의 발현이 진짜인지 의심하고 있다는 고백입니다. 신앙심이 약한 탓이라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시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발현을 포함한 사적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보여주신 공적 계시를 특정한 시대나 상황에서 좀 더 강조하는 것일 뿐입니다.

 

물론 성모님의 발현을 무조건 의심하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결코 좋지 않은 태도입니다. 교회는 기적이나 발현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세심히 조사하고, 그 사건이 신앙인에게 유익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공표합니다. 게다가 발현지에서 만나는 성모님의 메시지는 예수님과 교회가 오랫동안 강조해온 바로 그 내용들이므로, 발현이라는 사건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나 과학적인 판단은 순례자의 몫이 아닙니다.

 

하지만 동시에 성모님의 발현과 메세지는 신앙의 대상도 아니며, 믿어야 할 교리도 아닙니다. 성모님의 모든 메시지는 결국 하나입니다. ‘모든 이가 예수님에게 좀 더 다가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굳건하다면 성모님의 발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겠지요. 루르드와 파티마 발현지에 여전히 많은 순례자가 모이는 것은, 그곳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의 메시지가 여전히 이 시대의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방증입니다. 시간이 더 지나서 그 메시지의 내용이 더 이상 우리의 필요에 맞지 않는다면 루르드나 파티마도 지금의 노크처럼 조용한 성지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더 이상의 발현이나 사적 계시가 필요 없는 시대가 오는 것이겠지요.

 

이후 형제님께서는 한참이나 생각에 빠지시더니, 오후 내내 이곳 노크를 순례하면서 성모님의 발현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 의심한 시간이 아까워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기도를 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우리 교회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분께서 예수님을 낳으신 분이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잉태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는 때까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믿었던 참된 신앙인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모님께서 부족하고 모자란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 주님께 기도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성모님이 더는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는 그날까지, 우리 또한 그분처럼 결코 믿음을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평신도, 2022년 통권 제72호, 김원창 미카엘(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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