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강론자료

연중 33 주간 목요일-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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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03-11-19 ㅣ No.532

연중 제 33 주간 목요일 - 홀수 해

 

        1마카베오 2,15-29     루가 19,41-44     

    2003. 11. 20.

주제 : 하느님을 따르는 일

 

우리 눈에 하느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눈에 하느님이 보인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지 알 수는 없습니다만 그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살아야한다고 신앙에서는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뜻은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사실은 이렇게 질문하는 방법과 그 질문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줄 아는 특징이 있기에 제가 여기서 말하는 것도 여러분의 필요에 닿는 일이 아니라면 아무런 응답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마음을 내가 갖고 있는지,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알아 실천할 생각이 있는지에 따라서 같은 질문과 응답이라고 하더라도 그 태도와 삶의 모습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마따디아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는 아주 동떨어진 아주 오랜 옛날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나라의 모습을 갖추기 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자신을 회유하려는 정치권력자의 심부름꾼들이 적절한 보상을 약속하며 마따디아의 생각을 돌리려고 하지만 실패합니다.  오히련 자기가 가진 것,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내던지고 율법에 대한 열성으로 길을 달리합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율법은 구약의 백성들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실천하는 방법으로 따라 살던 법칙이요 삶의 규정이었습니다.  그 율법에 성실하기 위해서 행동한 마따디아의 행동을 보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나오는 예루살렘의 최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걸어왔던 삶의 모습을 보시며, 그가 제대로 된 삶을 외면하였음을 서글퍼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고쳐놓겠다고 발 벗고 나서시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따르기로 한 삶의 규정이 어떤 것인지는 각자가 가장 잘 아는 법입니다.  하느님이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소홀히 사는 것도 내 선택이고, 율법을 위하여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내어던진 마따디아가 했던 행동도 그의 선택입니다.  다만 우리 삶을 보고 슬퍼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지 않아야 옳은 삶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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