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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로마의 바오로 사도 유적: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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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3 ㅣ No.633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로마의 바오로 사도 유적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지난해 초가을에 이탈리아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그 가운데 바오로 사도의 삶과 신앙을 전해주는 바오로 대성당과 바오로 순교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성당 다니면서 알게 되어 20여 년 귀한 만남을 잇고 있는 ‘한솔회’ 교우들과 함께한 여정이었습니다. 로마의 4대 성당, 이름난 성인성녀들의 유적지,  밀라노와 피렌체의 아름다운 성당…. 곳곳마다 새로운 감동, 터지는 탄성, 가슴 벅찬 환호의 시간을 지낸 뒤 로마로 입성했습니다.

 

로마 박물관과 시스티나 경당, 베드로 대성당을 순례한 다음, 우리는 ‘이제는 더 놀랄 일도 없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원이 없다.’고 방심(?)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바오로 대성당 앞에 서니 다시 가슴이 뛰었습니다.

 

정원 한가운데에 우뚝 선 바오로 사도의 대리석상은 한 손에 큰 칼,  다른 손에 성경을 들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내리꽂는 듯한 시선이 비장해 보입니다. 석상 받침대에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만을 말하는 이”라고 써있다고 합니다. 강렬한 예수님 체험에서 얻은 그의 사명의식이 서릿발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순례의 초점은 미술품의 감동에서 ‘바오로 성인 느끼기’로 바뀌었습니다.

 

대성당 정면에는 금을 입혀 제작한 모자이크가 있었는데, 쳐다만 봐도 눈이 부셨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오후 3-5시 사이에 방문하면 거기서 반사되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이,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장관이라고 합니다.

 

맨 위 모자이크에는 예수님과 두 사도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가운데모시고 천국의 열쇠를 쥔 베드로, 칼을 든 바오로가 양편에서 교회를 든든히 지키는 것 같습니다. 바로 아래 그림을 보니 예수님께서 어린 양의 모습으로 앉아계시고 좌우에는 사도들을 상징하는 열두 마리 양이 있습니다. 그 밑에 그려진 네 예언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다니엘입니다. 바오로의 신학이 유다교와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사상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벽화도 이러한 관점을 반영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대성당에 깃든 사도의 혼

 

희년에 열린다는 바오로 대성당 문은 은으로 부조된 청동 문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공사 중이어서 자세히 감상하지는 못하고, 바오로 사도께서 허락하시어 보여주시는 부분만 보고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80여개의 화강암 기둥이 내부를 힘차게 받치고 있었고, 바닥은 외벽처럼 대리석이 아름답게 배색되어 있었습니다. 단순하고도 간결한 성당의 모습이 바오로 사도의 명료하고 힘찬 면모를 닮은 듯합니다.

 

제대 위 반원형의 돔을 승리의 개선 아치라고 부르는데, 돔 안쪽에 설치된 모자이크화 중앙에는 예수님께서 성경을 들고 강복하시는 모습이 있어 머리 숙여 강복을 받았습니다. 왼쪽에는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가, 오른쪽에는 바오로와 루카가, 그 아래에는 열두 사도가 야자수와 함께 그려져 있었습니다. 정원에도 야자수가 서 있었는데 사막의 생명나무라는 뜻이겠지요?

 

대성당의 역사는 바오로의 생애만큼이나 파란만장합니다. 313년 완공된 뒤 386년에 지금의 규모로 확장되었고, 461년에 벼락을 맞았습니다. 739년에 롬바르크 족에게 약탈당하고, 801년 지진으로 천정이 내려앉았으며, 847년 사라센의 침입으로 또 약탈당했습니다. 1823년에는 한밤중의 대화재로 건물과 벽화, 모자이크가 파괴되었는데 레오 12세 교황의 특별 요청으로 전 세계가 뜻을 모아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모자이크화에서 예수님의 오른발을 붙들고 있는 강보에 싸인 아기는 그림의 보수를 명했던 교황 호노리우스 3세라고 합니다. 예수님 앞에선 우리가 아기와 같은 존재라는 의미겠지요.

 

제대 앞 중앙층계를 내려서니 바오로 사도의 무덤이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이었던 사도께서는 2년 남짓 로마에서 옥살이를 하면서도 끝까지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로마에서 순교하고, 로마에 묻히셨습니다. 지역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눈물의 편지로 그리스도교의 굳건한 초석을 놓으셨던 성인께서는 지금도 이곳에서 우리 교회를 노심초사 돌보고 계실 것입니다.

 

 

피로써 그리스도를 증언한 자리

 

대성당에서 가까운 거리에 ‘트레 폰타네’(세 개의 샘)라 부르는 바오로 참수터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중앙 성당, 베르나르도 성인께서 미사 중에 연옥영혼들이 부름 받는 것을 보셨다는 ‘천국 계단 성당’,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잘린 목이 땅에 떨어져 세 번 구른 자리에서 샘이 솟았다는 ‘트레 폰타네 성당’이 있습니다.

 

개신교 신자들도 꼭 다녀가는 이 순교지의 광경은 초라하다 싶을 만큼 수수합니다. 사도께서 지하 감옥에 갇혔다가 참수터로 가셨다는 길을 걸으니 목이 메고, 참수터의 기둥이 닳아 둥글어진 것을 보니 그리스도를 위해 피 흘린 순교자들 생각에 가슴 아프다 못해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세 곳의 샘을 보면서는 전도여행을 세 차례나 하며 불타는 열정으로 교회를 세우고 연설했을 사도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다만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가 가는 고을에서마다 일러주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사도 20,22-24).

 

유다인에게는 변절자요 초대교회 지도자들에겐 골칫거리였지만, 전 지역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그는 참으로 필요한 열두 사도의 동료였습니다. 첫 사도단에 끼지 못하였어도 목숨을 내놓고 예수님을 증언한 사도 중의 사도 바오로 성인이시여, 당신을 만날 수 있어 참 반가웠습니다. 저희도 당신을 본받아 용감하고 투철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용기와 지혜를 청해주소서. 예수님 체험에 힘입어 굳건한 신앙인이 되도록 도와주소서.

 

* 정연순 안젤라 - 서울 등촌1동성당 신자. 성서모임 봉사자와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8년 6월호, 글 정연순 ? 사진 오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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