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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이스라엘10: 카이사리아 필리피와 천국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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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0-21 ㅣ No.1063

[이스라엘 성지 길라잡이] 카이사리아 필리피와 천국의 열쇠




- 헤르몬 산에서 흘러나오는 바니야스 샘(그 위쪽으로 유적지가 있다).


가나안 최북단의 고대 ‘단’ 지파 유적지 동쪽에는 5분 정도 거리를 두고 ‘바니야스’라는 곳이 있다. 원래는 시리아 땅이었다가 1967년, 6일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이 빼앗아 온 골란 고원의 일부이다. 서로 내 땅이라며 끊임없이 싸워서 너무 곤란한 ‘골란’ 고원 아래쪽으로 바니야스는 치열한 영토 분쟁을 반영하는 듯 흩어진 지뢰밭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아직도 제거되지 않은 지뢰 표시를 보고 아찔해지기도 하지만, 피바람 불었던 역사의 소용돌이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 청명하게 흐르는 헤르몬 샘물과 바니야스를 보면 과연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듯하다. 바로 이곳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다는 ‘카이사리아 필리피’이고 마태오 복음 16장 13-20절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 ‘바니야스(Banias)’라는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언급되는 자연과 목동의 신 ‘판(Pan)’에서 유래했다. 판 신에게 봉헌한 도시였기에 원래는 ‘파니야스’였지만, 아랍인들이 ‘ㅍ’ 발음을 하지 못하여 발음이 비슷한 ‘ㅂ’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2,000년 전(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했던) 헤로데 영주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에게 이곳을 선물 받았고, 헤로데가 죽고 난 뒤 세 아들들이 유다 왕국을 이어받았을 때, 갈릴래아 북부를 다스린 막내아들 필리포스가 수도로 삼았었다.

로마 황제에게 충성하는 의미로 ‘카이사르에게 바친 도시’곧 ‘카이사리아’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영어로는 ‘시저리아(Caesarea)’라 한다. 그러다가 필리포스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 ‘카이사리아’와 구분하려고 자신의 이름을 덧붙이면서 이곳을 ‘카이사리아 필리피’라 불렀다.

 

 

◆ 50% 이상의 국토가 광야인 이스라엘을 순례하다가 바니야스를 방문하면, 갑자기 숨통이 트이면서 쏟아지는 물들이 신기하게 보인다. 흔할 때는 중요성을 못 느끼지만, 마른땅만 보다가 갑자기 나타나니 그 존재가 더욱 눈부시다고 해야 할지. 하물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고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귀한 물이었을까! 그래서 옛날부터 이곳 사람들은 물이 풍부한 곳을 거룩하게 여겼고, 우상의 도시 ‘파니야스’에 헤르몬 산에서 터져 나오는 수원이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중요한 생명수를 제공하는 바니야스 샘은 1급수의 맑은 물이고, 가파른 절벽에서는 폭포가 되어 보기 드문 장관을 연출한다(오른쪽 사진 참조). 그리고 바니야스 물들이 요르단 강을 통하여 갈릴래아 호수로 내려갈 때, 물줄기를 따라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골란 고원 화산의 검은 현무암들이 지천에 쌓여 흡사 제주도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이스라엘에서 보기 힘든 폭포와 우거진 수풀을 보노라면 1967년의 6일 전쟁이 새삼 이해가 된다. 골란 고원의 수원을 막아 갈릴래아 호수로 들어가지 않도록 빼돌리려 했던 시리아와 생명수를 지키겠다고 선제공격을 감행한 이스라엘. 속전속결로 엿새 만에 전쟁이 종결되어 6일 전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적국을 견제하여 물을 끊으려 했던 시리아와 다시 뺏기면 수자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이스라엘의 강박 관념 사이에서 분쟁이 깊어지는 골란 고원에는 바니야스를 포함한 유적지 몇 개와 군사 시설 사이의 지뢰밭만이 남아있다.



◆ 갈릴래아 호수에서 카이사리아 필리피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가량 소요된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이곳에 오셨던 것은 마태오 복음 16장 13-20절에 기록되었고, 이동 여정은 족히 이틀은 걸렸을 듯하다. 예수님이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는 신앙 고백을 했다.

그때 예수님은 시몬 바르요나의 이름을 베드로(‘반석’이라는 뜻)로 바꾸시고,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으로 베드로의 ‘수위권’을 처음 확인하셨다(마태 16,18). 수위권이란 수장이 될 수 있는 권한을 뜻한다. 교회의 수장이 될 소명을 부여받은 베드로 사도는 이곳에서 “하늘나라의 열쇠”를 함께 받았고, 베드로 성인 기념 동상에는 항상 하늘나라의 열쇠가 장식되어 있다.



◆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당신께서 활동하셨던 공생애의 중심지를 떠나 멀리 북쪽까지 오셨고, 왜 굳이 이곳에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정체성을 확인하셨는지 궁금해진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일단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처형된 사건이 매우 크게 작용했었을 듯하다(마태 14,3-12; 마르 6,17-29). 요한의 참수 사건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신 예수님은 안티파스의 영역을 떠나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다스린 북부로 피난하셨을 것이다.

참고로 안티파스는 헤로데의 둘째 아들로서 갈릴래아 중부와 페레아 지방(현재 요르단의 모압 산지)을 다스렸고, 헤로디아 딸의 요청에 따라 마케루스 요새에서 요한의 목을 베었다. 반면 헤로데의 막내아들 필리포스는 갈릴래아 북부를 다스렸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티파스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북쪽 지방으로 피신하신 듯하다.



◆ 그러나 이런 정치적인 이유 외에도 종교적인 배경이 함께 작용했었을 것이다. ‘판 신의 도시’라는 이름이 암시하듯이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다신문화의 중심지였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왕을 신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신전을 지어 섬겼고, 카이사르에게 봉헌한 도시답게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신전이 있었다. 그 오른쪽에는 제우스 신전이 있었고, 카이사르 신전과 제우스 신전 사이 제단에 판 신의 동상이 모셔져 있었다(116쪽 사진 참조).

특히 천둥과 번개로 가축들에게 장난을 쳐서 발작을 일으켰다는 판 신은 나중에 ‘패닉(panic : 공포)’이라는 영어 단어의 어원이 된다. 곧,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이방신앙의 중심지로서 우상숭배가 판을 쳤던 곳이었기에 예수님이 이곳에 오시어 참 하느님을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예수님은 카이사리아 필리피에 오셨을 무렵 당신의 공생애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음을 아셨던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아 안티파스를 피해 북쪽 멀리까지 이동하셨고, 이곳에서 당신의 참의미를 제자들에게 먼저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직접 보기도 하고 말씀을 듣기도 했지만, 그분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거나 견해를 표출하기에는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가오는 당신의 수난에 앞서 제자들을 준비시킬 필요가 있었고, 그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알게 해야 했었을 것이다.

현재 바니야스는 이스라엘이 지정한 국립공원이 되었고, 골란 고원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 산 아래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 신전과 제우스 신전만이 일부 폐허로 남아있다. 그러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돌고 도는 헤르몬 샘은 먼 옛날의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는 듯하다.

바니야스의 견고한 바위 산 아래에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하여 교회의 견고한 반석이 된 베드로. 2,000년 전 이곳을 휘어잡았을 우상숭배와 바위 속에 묻혀버린 신전들의 폐허에 대비되어, 헤르몬의 이슬처럼 영원히 남을 말씀의 위대함을 깨닫게 한다.

* 김명숙 소피아 - 한님성서연구소 연구원. 이스라엘에서 성지순례 안내자로 일하며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잡지, 2012년 10월호, 글 · 사진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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