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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프랑스 몽생미셸: 미카엘 대천사의 이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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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22 ㅣ No.629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프랑스 몽생미셸


미카엘 대천사의 이끄심으로

 

 

2003 년 늦여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즈음 나는 새로운 일을 찾기보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것은 여행이었다. 서른이 다 되도록 한 번도 혼자 살아보거나 홀로 여행을 가본 적이 없기에 나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다.

 

2개월간 입고 먹을 살림이 들어있는 15킬로그램짜리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났다. 주목적은 미술관 순례였지만 유럽의 중세미술이 종교와 함께 발전했음을 감안하여 간간이 유명한 성당, 성지 순례도 계획해 두었다.

 

광고로 먼저 끌린 그곳 순례는 영국에서 시작하여 프랑스로 넘어왔는데, 많은 장소 가운데 프랑스 서부 노르망디 주에 있는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이 기억에 남는다. 프랑스어로 ‘몽’은 산, ‘생 미셸’은 대천사 성 미카엘을 뜻한다. 처음에는 그저 아름다운 경치를 보려고 갔지만, 다 둘러보고 나왔을 때는 하느님의 현존을 마음 가득 채워준 곳이다.

 

그곳에 가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여행책자에서 본 훌륭한 사진에 반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어느 항공사의 텔레비전 광고에 펼쳐진 그곳 풍경을 보고 한 눈에 반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만큼 훌륭한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신앙과 관련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몽생미셸은 코탕탱 반도의 남쪽 연안에 있는 78.6미터 높이의 작은 바위산으로, 그 유래는 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 지역을 관장하던 오베르 주교가 꿈에서 미카엘 대천사를 만나 이 바위산에 수도원을 세우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미카엘 대천사를 모신 소성당을, 훗날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대수도원을 세운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바위산 위에 지은 성은 프랑스혁명 직후 감옥으로도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옛 프랑스의 유물을 전시한 기념관과 수도원이 들어와 있다. 이곳으로 가려면 파리 몽파르나스 역에서 ‘렌’이라는 도시로 가는 기차를 타고, 렌에서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기차 시간을잘 맞추어야 버스를 곧장 탈 수 있는데, 주로 새벽과 오전 기차를 타는 것이 좋다.

 

11월의 어느 날, 미리 렌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러 기차역으로 갔다. 버스 정류장은 기차역 오른편에 있는데, 주일이라서 표를 파는 창구는 다 닫히고 몽생미셸로 가는 버스만 운행하는 듯했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었다. 예전에 본 사진처럼 맑은 날의 멋진 경치를 찍고 싶었는데….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버스 창밖에 커다란 성이 나타나자 실물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기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무거운 욕심과 가벼운 짐

 

성 아래쪽에는 상점들이 즐비했고 수도원은 꼭대기에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둘러보려 표를 끊고 기념관을 구경하다 천천히 올라가니, 꼭대기에 종탑과 함께 수도원 성당이 있었다.

 

주일미사를 하지 않나 두리번거리다 안으로 들어가니 수녀님께서 무슨 말씀을 건네셨다. 프랑스어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수녀님께서 큰 종을 치시는 걸 보니 곧 미사가 있는데 참석하겠냐고 물어보신 것 같아 “예스!”라고 대답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미사 준비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수녀님 수사님들의 발에 시선이 멎었다. 바닷바람이 거센데도, 게다가 늦가을 흐린 날씨 탓에 기온이 뚝 떨어져 돌바닥이 차가운데도, 그분들은 맨발에 샌들을 신고 계셨다. 오리털 파카와 두꺼운 양말, 운동화로 무장한 나도 덜덜 떨고 있는데…. ‘발이시리지 않을까? 검소하신 분들이네.’ 하고 생각한 순간 마음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어깨에멘 15킬로그램짜리 배낭만큼이나 무거웠던 마음이.

 

결국 나는 나 자신에게 거듭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나?’

 

욕심. 내가 가진 것은 그것뿐이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이런저런 것을 가지고 싶고, 모든 게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등 수많은 욕심을 품는다. 그래서 늘 고민하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힘들어한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주님께서 바라시지 않는 나 자신의 욕심인 것이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주님께서는 당신의 온유와 겸손에 우리 마음을 맞추시라고 하신다. 자기 욕심을 버리고 주님의 뜻으로 살면 더 이상 힘들어 할 필요 없이 우리 마음도 주님의 짐처럼 가벼워진다고 하신다.

 

수녀님 수사님들이 추운 날 샌들만 신고 있어도 힘들지 않아 보였던 건, 하느님께 마음을 맡긴 삶이 충분히 행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느님의 손길 가득한 곳

 

미사를 마치고 성 위에서 바닷가를 굽어보니, 성에 둘러놓은 방파제를 빼고는 모든 물이 빠져 넓게 드러난 갯벌이 보였다. 지금이야 방파제가 있어 성 꼭대기까지 걸어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했던지라 바닷길이 열려야만 성으로 갈수 있었다. 그래서 한때는 이곳으로 순례를 오던 수도자들이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드넓은 갯벌을 보는 순간, 뒤쫓아 오는 이집트 병사들을 피해 홍해를 건넌 모세의 기적(탈출 14,1-15,21)이 눈앞에 펼쳐질 듯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바다를, 하느님께서 갈라 길을 열어주셨던 것이다. 과연 바닷물이 빠진 갯벌 위에는 저 멀리 있는 섬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하느님의 기적을 몸소 체험하고 싶었던 것일까? 성에서 내려오면서 이 여행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드릴 십자가상과 나 자신을 위한 미카엘 대천사 펜던트를 샀다. 문득 ‘순례의 출발점은 신앙이 아니었지만 여기 오게 된 건 미카엘 대천사의 이끄심 덕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 때문에 바람은 스산했지만, 하느님을 마음속에 고이 모신 그날은 마음도 따스하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 손채성 미카엘라 - 서울 독산동성당에서 6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다. 20대의 마지막에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지금은 웹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경향잡지, 2008년 1월호, 글 ? 사진 손채성 미카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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