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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 탁희성 화백 그림과 약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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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3-09 ㅣ No.599

[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 탁희성 화백 그림과 약력은


한국교회사 주요 사건. 순교자 삶 그려

 

 

한국 천주교회 최초 공적 집회(제1도).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후 이벽 등 한국 천주교회 창설 주역 들이 서울 명례방 김범우의 집에서 집회를 갖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 초기 교회사 관련 작품 168점 중 탁 화백이 제1도로 내세운 작품이다(1991년 7월 작).


 

어떤 그림들인가

 

이번에 연재하는 고 탁희성 화백 그림들은 고인의 둘째 아들 탁동호(시몬, 68)씨가 소장하고 있는 고인의 원본 작품들이다. 한국 천주교회 초기교회사 주요 사건들과 인물들, 특히 순교자들의 삶을 그들의 행적이나 직업 또는 순교 장면 등에서 특징적 면을 화제로 삼아 가로 58㎝ 세로 47㎝ 화폭에 담고 그 한쪽에 생애를 간략히 서술하고 있다.

 

아들 탁동호씨가 소장하고 있는 유작은 208점. 이 가운데 전시나 표구 등을 하기 위해 배접(褙接)을 댄 작품이 168점이고 배접을 대지 않은 원판 그대로 작품이 40점이다.

 

배접을 댄 168점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 주역인 이벽(세례자 요한, 1745-1785)부터 1839년 기해박해 순교자인 하느님의 종 김사건(안드레아, 1794-1939)까지, 교회사 주요 사건이나 인물 또는 순교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림을 그린 시기는 1991년 6월부터 7월 사이다. 고인은 1992년 6월 28일에 선종했으니 선종하기 1년 전 두 달 동안에 혼신을 다해 그린 역작인 셈이다. 이 168점 가운데서 약 100점은 김옥희 수녀가 집필한 「시복시성을 기다리는 무명의 순교자와 증거자」(1996)와 「신유박해 순교자들」(2001)에 화보로 소개된 바 있다.

 

- 승자의 죽음(1-2도), 한국 천주교회 창설 중 중 한 사람인 이벽(사도 요한, 1754-1786)이 고뇌하는 모습을 담았다(1991년 6월 작). 1785년 을사년에 명례방 집회 모임이 관헌들에 의해 발각돼 김범우가 귀양을 가서 장독으로 순교한다. 게다가 아버지와 종중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치면서 이벽은 두분불출한 채 지내다가 1786년 봄에 요절했다.

 

 

배접을 대지 않은 40점은 아직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로, 제1도 1801년 신유박해 순교자 이득인부터 제40도 기해박해(1839) 순교자 한 안나와 김 바르바라에 이르기까지 여성 신자들만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고인의 마지막 작품들로 여겨지는 이 그림들은 모두 탁 화백이 선종하던 해인 1992년에 그린 것들이다.

 

전체 208점 가운데서 시복 대상인 하느님의 종 124위가 그려진 작품은 모두 모두 92점. 이 가운데 신유박해(1801) 순교자 강완숙과 최필공을 그린 작품이 2점씩이고, 1816년 순교자 고성대와 고성운은 한 작품으로 그렸다. 따라서 하느님의 종 124위 가운데 90위가 탁 화백 성화에 등장하는 셈이다.

 

 

탁희성 화백은 누구인가 - 1960년대 중반 이후 성화 작품에 심취

 

1915년 7월 29일 서울에서 출생한 죽정 탁희성(비오) 화백은 춘천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은사인 석흑의보 선생 문하생으로 입문, 동양화를 전수하고 궁중화가 길에 들어섰다.

 

북경에 가다(3도). 이승훈이 1783년 10월 동지사 편에 북경으로 가는 장면이다(1991년 6월 작). 이승훈(1756)은 북당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교리를 배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돌아온다. 그는 한국 천주교회 첫 세례자였다.

 

 

1960년 가톨릭에 귀의한 후 한국교회사를 연구하면서 매료된 탁 화백은 이로 인해 40년 동안 지켜온 자신의 사고와 화단(畵壇)을 혁신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까지 4차례 개인전을 연 고인은 이후부터는 한국교회사 공부와 당시 풍속 및 복식에 대한 연구 등을 계속하면서 교회사 및 순교자 관련 성화 작품을 그리는 데 심취했다.

 

처음에는 고 오기선ㆍ박희봉 신부와 장익 신부(현 춘천교구장 주교) 등의 도움을 받았으며 극작가 이서구 선생, 수도사대(현 세종대) 석우선 교수 등에게서는 사회 풍속과 복식에 관한 지도를 받았다.

 

탁 화백은 1970년 '천주교 박해 200년사 성미술전'(22점)을 시작으로 '김대건 신부 일대기 성화전'(1971년, 26점), '최양업 신부 일대기 성화전'(1976년, 30점),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성화전'(1984년, 19점)을 개최한 데 이어 1989년에는 '한국 103위 성인들의 순교화전'을 열었다. 당시 오륜대 한국순교자기념관장 김옥희 수녀 등의 도움을 받아 4년 간의 작업 끝에 순교성인 103위 특징적 면을 하나하나 조명해 103점으로 완성한 역작이었다.

 

그리고 다시 2년 간 작업 끝에 한국초기교회사 관련 순교자와 증거자들 삶을 화폭에 담아낸 작품들이 이번에 본지를 통해 공개되는 208점 유작이다. 고인은 1992년 6월 28일에 선종했다.

 

탁 화백의 둘째 아들 탁동호씨는 "선친은 전국을 다니시며 현장을 답사한 후에 스케치한 것을 가지고 고증을 거친 후에 그림을 그리셨다"면서 "한번 자리에 앉으시면 팔이 펴지지 않을 정도로 꼼짝않고 그림에 몰두하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평화신문을 통해 유작들이 공개되는 것을 계기로 가톨릭에 귀의하신 후 순교성화에만 온 힘을 쏟으셨던 부친의 뜻이 새롭게 자리매김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평화신문, 2009년 3월 8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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