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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예루살렘 올리브산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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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5-19 ㅣ No.627

세계 교회 신앙유산 순례 - 예루살렘 올리브산 지역


그분의 숨결을 찾아

 

 

예루살렘은 아브라함 이래 구약성경의 중심지이며,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이 적어도 다섯 번 이상 방문하신 신약의 중심무대이다. 그러나 10년 넘게 성경공부를 하면서 아무리 성경을 열심히 읽고 지도를 들여다보아도 그 수많은 산 이름, 인명, 지명, 복잡한 역사를 이해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상상 속으로만 이리저리 그려보곤 할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본당 교우들과 함께 ‘이집트-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할 좋은 기회가 생겼다.

 

예루살렘 성지는 올리브산 지역과 최후의 만찬 경당, 성령강림 경당, 성모영면 성당, 베드로 눈물성당 등이 있는 시온산 지역, 그리고 예수님 무덤성당이 있는 예수님 십자가의 길 지역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우리는 우선 올리브산으로 향했다. 이곳은 예수님이 갈릴래아와 예루살렘을 왕래하시면서 수없이 지나셨던 길이고, 늘 기도하시던 곳이다(루카 22,39 참조). 특히 마지막 파스카 축제 닷새 전 어린 나귀를 타시고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벳파게에서 도성으로 들어가신 길이다. 라자로를 살리신 뒤 백성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자 최고의회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누구든지 예수님 계신 곳을 알면 신고하라고 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그것도 왕의 모습으로 당당히 예루살렘 입성을 강행하신 길이다.

 

 

죽음이 있어야 부활과 승천도 있다

 

올리브산 정상에는 ‘주님 승천 기념 경당’이 있다. 도성에서 약 1km 남짓한 그곳에는 루카가 전해준 예수님 승천(루카 24,50; 사도 1,12 참조) 장소로 여겨지는 곳에 기념 경당이 있다. 다른 성당이나 경당들과 마찬가지로 1187년 살라딘에 의해 이슬람 경당으로 개조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주인이 바뀌어왔다. (가톨릭의 최초 건립(383년)과, 페르시아의 파괴(614년), 가톨릭의 재건(676년), 이슬람의 파괴(1009년), 십자군의 재건(1152년), 이슬람교 경당으로 개조(1187년). 예루살렘은 그 이후에도 1517년 오스만 터키, 1917년 영국 지배, 1967년 이스라엘 점령 등 구약시대 이래 겪어오고 있는 기구한 운명을 오늘날에도 겪고 있다.) 처음 건립 당시에는 승천의 의미를 살려 지붕이 없는 둥근 건물이었다가 십자군 시대에 재건할 때 팔각형으로 지었다. 현재는 이슬람식 돔이 위를 덮고 있는데, 주님 승천 대축일 때만 가톨릭의 신심예절이 가능하다. 아쉬운 마음이 짤막한 한숨으로 변한다. 아무튼 그 모진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되어 온 것이 고마웠다. 경당 바닥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발자국을 남겼다는‘예수님 승천 바위’도 있다.

 

예수님은 복음전파와 하늘나라 건설을 당부하고 승천하셨다. 우리들이 잘 해낼 것으로 믿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셨다. 그러나 이 사명을 수행하기에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 미사를 통해 수없이 회개와 믿음을 고백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보잘것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어야 부활도 있고 승천도 있는데 죽음 자체를 너무나 싫어한다. 작은 모욕도 못 참고, 항상 남을 이기겠다는 욕심만 가득하다.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 지기는커녕 내 십자가도 지기 싫어한다. “너희는 어찌하여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하는 꾸짖음이 들리는 듯하다.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조금 밑으로 내려오면 예수님께서 수시로 들르시어 기도하시고,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 를 가르쳐주셨으며(루카 11,1-4 참조), 종말에 관해 말씀해 주신(마태 24장 참조) 곳에 ‘주님의 기도문 성당’이 있다.

 

보통 때 수없이 왕래하신 길이지만 나귀를 타고 내려 오시면서는 군중의 환호보다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던 동굴(이스라엘에는 동굴이 많다. 예루살렘의 성모 마리아 탄생터, 나자렛의 성모 마리아 생가터, 아인카렘의 세례자 요한 탄생터,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하신 곳 등이 모두 동굴이다.)을 지긋이 바라보셨을 예수님. 그 동굴 위에 성당이 지어졌다. 주님의 기도를 가르칠 때 앉으셨다는 동굴 안의 바위는 사람들이 자꾸 긁어가서 아예 콘크리트를 입혀놓았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거처하시던 동굴을 보니 제자 열두 명이 앉기에는 좁아 보인다. 갑자기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루카 9,58)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동굴을 보는 순간, ‘돈’에 대한 걱정, 남들보다 더 좋은 집, 남들보다 더 높은 권위 등 하잘 것 없는 것들이 나의 머릿속을 꽉 채워왔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성경 곳곳에 수없이 나오는 “세상 걱정 이전에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는 내용의 가르침이 나를 휘감았다.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

 

주님의 기도문 성당에서 200m 정도 내려오면 ‘주님의 눈물성당’이 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 번 눈물을 흘리셨는데,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 라자로가 죽었을 때(요한 11장)와 나귀를 타고 내려오시다가 바로 이 자리에서 그토록 깨우쳐 주고 가르쳤건만, 진정으로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예루살렘이 결국 멸망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시며 한탄하실 때이다(루카 19,41-44).

 

예수님은 당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시면서까지 ‘생명의 길’, ‘진정한 평화의 길’로 들어서도록 모든 것을 다 바쳐 이끌어주셨다. 그런데 미사 때마다 성체를 모시면서도 얼마 못 가 또 다시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는 우리의 모습, 자유 의지가 있기에 오히려 유혹에 빠지는 우리의 모습이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이 주신 빵을 받고도 곧바로 배신한 유다 이스카리옷(요한 13,21-30)과 무엇이 다를까?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시며 지금도 울고 계시지는 않을까?

 

성지순례를 하면서 느낀 것이 너무 많았다. 특히 예수님은 전설 속의 어렴풋한 인물이 아니라, 당시 고도로 발달된 문명 속에 실제로 사셨던 분이시라는 점이다.

 

로마 14대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제2차 유다 항쟁(132~135년)이 끝나자마자 유다인들의 독립 항쟁의식을 꺾고 예수님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도록 베들레헴의 예수님 탄생 동굴을 흙으로 메우고 아도니스 신전을 세웠으며, 예수님의 무덤도 토사로 메워 그 위에 제우스 신전 등을 세웠다. 그러나 그 덕분에 예수님의 탄생자리와 묻히신 자리를 고스란히 되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 서는 순간 ‘예수님은 실제로 이 땅에 사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으며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뒤 오늘날 성령의 모습으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의 숨결을 좀 더 가까이서 느끼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사랑 안에 영원히 머물게 하소서.’

 

* 최경하 바오로 - 서울 잠원동성당 신자. 성가대 지휘와 합창단 활동을 해왔으며, 브라질 성경대학에서 성경 공부를 하기도 하였다.

 

[경향잡지, 2009년 5월호, 최경하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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