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 (수)
(백)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진리의 영께서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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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새로운 복자: 신앙의 명문 홍씨 집안 순교자 (1) 홍낙민, 홍재영, 심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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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11-22 ㅣ No.1523

[새로운 복자] 신앙의 명문 홍씨 집안 순교자 (I) 홍낙민, 홍재영, 심조이

 

 

사도세자의 빈(嬪 : 세자의 부인)이자 정조의 생모인 ‘혜경궁 홍씨’(1735-1815)는 왕가의 비극을 끌어안은 채 한 생애를 살아야 했던 여인으로, 알려진대로 그녀의 친정은 천주교 집안입니다. 집안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홍유한 선생(한국교회 최초의 수덕생활자)이 있으며, 그 후손 가운데 13명이 순교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성인이 2위(홍병주, 홍영주), 복자 5위(홍낙민, 홍재영과 그 며느리 심조이, 홍필주와 그의 서모 강완숙)가 계십니다.

 

복자 홍낙민(루카) · 홍재영(프로타시오), 하느님의 종 홍봉주(토마스)와 그 아내 복자 심조이(바르바라)는 3대가 모두 순교하였습니다.

 

충청도 예산 양반 출신인 홍 루카는 1780년 생원시에, 1788년 문과 급제 후 한양으로 이주해 사람들로부터 촉망받는 인재였습니다. 권철신(암브로시오)으로부터 학문적 영향을 받았던 홍 루카는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면서(1784년), 가성직단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관직에 있었던 그는 신해박해(1791)와 을묘박해(1795)가 일어나자 천주교 신앙을 멀리하는 듯 보였으나 회개한 후, 교리를 준수하고 기도생활, 금식과 금육재를 지키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모친상을 당했을 때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신주(神主)를 모시지 않았습니다. 신유박해(1801)로 동료들과 체포돼 의금부로 끌려갔을 때에도 처음엔 두려워하였으나 점차 용덕(勇德)을 드러내며 답변합니다.

 

“내가 과거에 행하고 말한 모든 것은 일시적으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수치스러운 은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 지금 나는 하느님을 위해 죽기를 원합니다.”라며 신앙을 증거한 그는 순교의 영광을 받았습니다(1801년).

 

어려서 부친 홍 루카에게 교리를 배운 홍 프로타시오는 장성한 뒤 동료들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교리연구와 교회활동에 참여합니다. 함께 활동했던 동료 가운데 하나가 동서(同棲) 황사영(알렉시오)입니다. 그러나 신해박해 때 아버지가 순교하고, 그는 전라도 광주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 중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신앙을 견고케 한 홍 프로타시오는 더욱 기도와 묵상에 열중하면서 자녀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히 해, 그의 아들(홍봉주)도 순교로 이끕니다. 어떤 때는 너무나 오랫동안 꿇어앉아 기도한 탓에 걷기가 어려울 정도였고, 일주일에 세 차례나 금식재를 지켰으며, 어려운 교우들을 위해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그러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근본이 흉악한 종자’, ‘선교사를 청해 올 때 도와준 죄’, ‘서적 110여 권을 필사한 죄’명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순의 나이로 순교(참수)하였습니다(1840년).

 

심조이(바르바라)는 시아버지(홍 프로타시오)가 유배생활을 하던 광주에 머무르면서 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을 가족처럼 맞아 헌신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다 함께 살던 이들 모두 체포되어 전주 감영으로 끌려가 문초와 고문을 받았습니다. 심 바르바라는 이때에 받는 고통을 천주를 위해 당하는 것이라 여겨 신음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참고 받았다 합니다.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안 전라 감사는 사형을 선고하였으나, 심 바르바라는 그동안 받은 잔옥한 형벌로 옥중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교의 영광을 받았습니다(1839년 11월 11일).

 

[2015년 11월 22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 수원주보 4면, 최인각 바오로 신부(인계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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