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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동성고등학교의 역사와 교육철학: 에리히 프롬의 삶의 기술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살리는 교육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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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7-19 ㅣ No.1574

동성고등학교의 역사와 교육철학


- 에리히 프롬의 ‘삶의 기술’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살리는 교육’을 중심으로 -

 

 

국문 초록

 

2022년은 한국 천주교회에서 동성 중·고등학교를 인수하여 운영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한편 그 100년은 동성고등학교가 한국 가톨릭 중등교육의 정신을 축적해 온 시간이기도 하다. 본고는 동성고등학교 100년의 역사와 교육철학을 고찰해야 하는 당위성을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찾았다. 이를 위하여 먼저, OTT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의 흥행 요인을 분석하면서 <오징어 게임>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과 교육계의 반응을 비판적 시각에서 살펴보았다. 다음으로, 동성고등학교의 역사와 교육사상의 흐름을 에리히 프롬의 성격 이론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프롬이 제시한 ‘일차적 성향’과 ‘생산적인 성격 지향’, 그리고 ‘사회적 성격’ 개념을 통해 과거 동성고등학교의 역사에 내재한 인간중심 교육과 공동체성 회복 교육을 고찰하였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중등교육기관으로서 동성고등학교 역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바를 프롬의 삶의 기술인 비오필리에 사상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살리는 교육’을 종합하며 전망해 보았다. 이로써 오늘날 동성고등학교가 공교육 기관이자 종립학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기여해야 할 교육 정신을 재확인하였다.

 

 

I. 들어가며: 역사,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과정,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1)이다. 이 명제는 E. H. 카(Edward Hallett Carr, 1892~1982)의 저서인 『역사란 무엇인가』(1961)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당시 E. H. 카가 대중에게 던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곧 ‘역사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물음이었다. 그는 이 질문을 통해 역사가 또한 자신이 사는 시대와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E. H. 카는 ‘역사의 사실’(the facts of history)이 현재를 사는 역사가가 과거의 사료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선택된 산물, 즉 역사가의 해석임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역사가라면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사명을 제시했다. “새로운 것들에 관해서 또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왜?’라는 질문을 제기”2)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가는 자신의 연구를 확장하고 심화시킴으로써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점점 더 많이 끊임없이 축적”3)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는 “역사가는 ‘왜?’라는 질문에 더하여 ‘어디로?’라는 질문도 제기”4)할 줄 알아야 함을 천명했다. 이는 E. H. 카가 강연을 하던 당시에 만연한 자유방임적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자 역사가 기여할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5) 『역사란 무엇인가』의 제2판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파괴와 쇠퇴 이외에는 아무것도 내다보지 않으면서 진보에 대한 모든 신념과 인류의 더 나은 진보에 대한 모든 전망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배제해버리는 오늘날의 회의주의와 절망의 조류”6)에 대한 대항이기도 했다. 그는 역사의 객관성은 미래의 진보에 기여할 때 확보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E. H. 카에게 역사는 “그 본질상 변화이며, 운동이며, (…) 진보”7)였다.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출판된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에 대한 카의 비판적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오늘날 E. H. 카의 역사 담론은 이미 해체되었고 역사학은 다양하게 세분화되었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가 지향했던 진보적 역사관, 즉 “우리의 역사관은 우리 사회관의 반영”9)이기 때문에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고 실천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는 여전히 심금을 울린다. 

 

E. H. 카가 살아온 격동의 시기를 동성고등학교 또한 겪었고 견디어내며 오늘에 이르렀다. 노년의 E. H. 카가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 고민하며 강연을 한 것처럼, 동성고등학교 또한 지금까지 축적해 온 116년이라는 시간과 한국 가톨릭 중등교육으로서 축적해 온 100년의 시간, 그 역사의 사실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왜’ 고찰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과거 동성고등학교의 역사를 E. H. 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현재적 시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동성고등학교의 역사를 교육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해야 하는 당위성을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 찾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OTT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의 흥행 요인을 분석하고, <오징어 게임>에 대한 교육계의 반응을 비판적 시각에서 살펴볼 것이다. 다음으로, 동성고등학교의 역사와 교육사상의 흐름을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의 성격 이론을 중심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프롬이 제시한 ‘일차적 성향’과 ‘생산적인 성격 지향’, 그리고 ‘사회적 성격’ 개념을 통해 과거 동성고등학교의 역사에 내재한 가톨릭 중등교육의 철학적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중등교육기관으로서 동성고등학교 역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프롬의 비오필리에(Biophilie) 사상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육적 관점을 종합하며 전망해 보고자 한다. 이로써 오늘날 동성고등학교가 공교육 기관이자 종립학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교육 정신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II. 드라마 <오징어 게임> 흥행과 한국 교육의 현실


1. 드라마 <오징어 게임> 흥행의 아이러니

 

2021년 9월 OTT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영어권과 비영어권을 통틀어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작품, 넷플릭스 역대 최단 시간 최다 시청을 기록한 작품, 그리고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성공을 이끈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킨 요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다. 그 가운데 두 가지 요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새로운 TV 시청 양태이다. 넷플릭스는 “초국가적(transnational) 텔레비전 보기’라는 새로운 TV 시청 양태를 발명”10)함으로써 미국의 텔레비전 산업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또한 넷플릭스와 같은 유료 텔레비전 서비스의 등장은 “특화된 시청자를 몰입시키는 몰아보기 방식(Being Watching)”11)과 “시청자의 행동을 유도하는 추천 시스템”12), 그리고 “시청자의 참여를 강화함으로써 ‘보기’(viewing)를 수동적 보기에서 능동적 하기(doing)”13)로 변형시켰다. 이는 시청자에게 더 이상 ‘보는 자’가 아닌 ‘플레이어’로서의 역할을 부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넷플릭스의 이러한 ‘새로운 보기’ 양태가 인간의 정서를 조작할 수 있다는데 있다. 일반적으로 한 콘텐츠의 세계적 확산은 팬덤의 열렬한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데, 이 팬덤은 동시에 극혐을 표명하는 집단적 소비자층을 만들기 때문이다. 혐오를 동반한 열광을 유도하는 넷플릭스의 마케팅, 즉 입소문 마케팅은 시청자들에게 정동적 강도를 높임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윤리적 공황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래서 정서적, 윤리적 문제를 유발하는 넷플릭스 컨텐츠에 대해 특히 청소년에게 드라마 시청을 금지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14) 이러한 맥락에서 <오징어 게임> 또한 청소년에게 시청을 금지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두 번째 성공 요인에는 ‘게임’이라는 장르에 대한 익숙함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시청자들에게 긴장감과 극적 몰입을 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놀이나 스포츠가 아니라 ‘데스 게임’(Death Game)이다. 데스 게임은 소위 인간의 목숨을 담보로 진행되는 게임인데, 구체적으로는 게임 안에서 서스펜스와 스릴, 갈등을 구축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긴장감과 극적 몰입을 가져오는 장르이다. 특히 시간 제한을 설정하는 데스 게임은 시청자의 몰입감을 극대화시킨다. 그동안 한국에서 데스 게임 장르는 주목받지 못한 소재였지만, 서구권과 일본에서는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게임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제작되어 왔으며 마니아층도 형성되어 있다.15) 그래서 영어권을 비롯한 비영어권에서도 낯설지 않은 이 데스 게임 장르인 <오징어 게임>이 해외에서 성공한 요인이라고 보는 평가도 있다.16)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 내포된 정서적 혼란이나 윤리적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흥행 요소인 데스 게임 장르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 보인다. 기존의 데스 게임 장르는 ‘인물’보다는 ‘게임’ 자체에 방점을 두고 허구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반면, <오징어 게임>은 현실적인 사회적인 문제로 이야기를 확장시켰다. 이에 대해 대중문화평론가인 김성수는 <오징어 게임>이 아이들의 놀이로 자본주의 적자생존의 논리를 장르적 재미와 탁월한 연출력으로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서바이벌 게임의 형식으로 사회고발극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17) 전영재는 <오징어 게임>을 기존의 데스 게임과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기존의 데스 게임 장르에서 게임의 승패는 생존이라는 문제에 머무르지만 <오징어 게임>의 승패는 가족의 삶의 문제로 확장된다.”18)고 해석하였다. 그러면서 <오징어 게임>이 데스 게임 장르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기존의 데스 게임에서 드라마가 서스펜스와 스릴를 만들기 위한 장치로만 작동되었다면 <오징어 게임>에서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드라마 요소를 데스 게임이라는 소재에 완벽하게 녹여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비평과는 별개로 <오징어 게임>의 팬덤이 무엇보다 열광한 것은 잔혹한 데스 게임과는 어울리지 않게 어린 시절 추억을 자극하는 게임 규칙과 분홍빛 파스텔 톤의 게임 현장이었다. 문제는 팬덤의 ‘수동적 보기’에서 ‘능동적 하기’를 이끌어낸 낸 요소는 ‘사람’이 아니라 ‘게임’이었다는데 있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게임은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켰고, 관련 놀이 상품을 판매하는 팝업 스토어도 성행했다. 초국가적 시청자들이 이색적인 한국 놀이를 모방하는 사이, <오징어 게임>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들은 잊혀졌다. 특히 한국 시청자들에게 여섯 개의 게임은 <오징어 게임>이 소환환 일종의 추억의 놀이였을 뿐, 정작 그들은 게임에서 드러난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적 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무엇보다도 한류 열풍에 밀려 <오징어 게임>이 학생들에게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의되지 못했다.

 

2. 드라마 <오징어 게임> 흥행에 대한 교육계의 반응

 

넷플릭스의 초국가적 자본 시스템과 데스 게임을 기반으로 한 <오징어 게임>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폭력과 유혈, 욕설 등의 장면에 대한 지적은 해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게임 자체가 해롭다기보다 게임하는 과정에서 탈락자가 폭력적으로 제거되는 장면을 학생들이 운동장 놀이에서 모방하는 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북미, 남미, 유럽,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 각국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게임을 모방하다가 폭력성에 노출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유럽에 있는 학교의 경우에는 드라마 속의 게임을 모방하여 폭력적 놀이를 하는 학생에게 징계하겠다고 표명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오징어 게임>은 16세 이하의 청소년에게는 시청이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이미 다른 경로를 통해 드라마를 이미 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각 학교는 공문을 통해 학부모들에게 학생들의 온라인 활동 관리 및 <오징어 게임> 시청 금지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다.19)

 

한국의 경우,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에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다.20) 그러나 외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오징어 게임>을 시청한 일부 학생들이 게임에 지거나 탈락한 학생들 때리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인천시와 부산시 교육청에서 각 학교에 ‘경계’ 공문을 보냈고,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통해 연령 제한 등급의 기준에 맞지 않는 미디어 시청을 금지할 수 있도록 지도를 요청했다.21)

 

<오징어 게임>에 대한 교육계의 부정적인 반응은 <오징어 게임> 흥행으로 인한 ‘유명세’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언론의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22), 한국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아동 및 청소년에 미칠 위험성은 한류 컨텐츠의 세계적 흥행과 적극적인 마케팅에 가려 공론화되지 못했다. 이 드라마에 대해 교육학적 관점에서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한국 가톨릭 교회 언론에서도 <오징어 게임>에 대한 문화적인 비평이나 가톨릭 사상과 관련된 칼럼은 게재되었으나, 가톨릭 교육의 관점에서 고찰된 글은 찾을 수 없었다.23) 무엇보다도 동성고등학교를 비롯한 전국에 있는 가톨릭 학교들이 <오징어 게임>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가톨릭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바를 천명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물론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게임을 모방하여 실제로 탈락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학생은 극히 소수일 수 있다. 적극적인 상업적 마케팅과 손쉬운 미디어 접근으로부터 학생들의 호기심을 완전히 차단시킬 수 없다. 그럼에도 가톨릭 학교라면 비록 한 명의 학생이라도 게임 탈락자가 되어 당했을 폭력과 그로 인해 느낄 자괴감, <오징어 게임>에 투사되어 나타날 수 있는 학생들의 입시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감에 대해서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징어 게임>은 오히려 현재 동성고등학교를 비롯한 가톨릭 학교가 간과하면 안 될 점이 무엇인지 상기시켜준다. 황동혁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작품만 두고 본다면 좋은 일인데, 세상 사람들이 이 작품에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서글프다”24)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서글픈 점’이 무엇인지 찾는 작업은 동성고등학교가 100년의 역사를 회고하고 교육의 가치를 재발견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될 수 있다.

 

 

III. 인간 중심 교육 100년, 공동체성 회복 교육 100년


1. 에리히 프롬의 ‘삶의 기술’과 동성의 ‘인간중심’ 교육

 

1999년 7월 14일 당시,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김수환 추기경의 특별 강연은 동성고등학교의 교육관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바로 ‘인간’입니다. (…) 인간의 존엄성은 이렇게 설명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느님을 믿으며, 자신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가지고 살 때 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 저는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먼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을 세울 때,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인간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우리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또한 학생들에게 ‘진리를 사랑하고, 정의를 따르며,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참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고 훌륭한 인간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너는 사회의 등불이라 할 수 있다’라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25)

 

추기경이 강조한 바에 따르면, 가톨릭 교육의 중심은 ‘인간’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가 교사들에게 숙고할 것을 요청한 “신앙적 인간관”26)이 가톨릭 신앙만을 가진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깊은 믿음을 가진 인간’, 나아가 ‘정의를 따르고 인간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추기경이 가톨릭 중등교육의 본질과 교육의 사회적 과제 모두를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태도와 행동 방식을 키우는 것이 곧 ‘인간 중심 교육’인 것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추기경은 동성고등학교가 가톨릭 학교로서 ‘보이지 않는 초월적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고유한 인격체’이면서 동시에 ‘현실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회적 가치를 확장해 나가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우선적 목적이 있음을 특강을 통해 교사들에게 상기시킨 것이다. 추기경이 ‘인간 중심 교육’을 새롭게 요청한 것이라기보다는 동성고등학교가 지향해 온 이 교육 정신을 교사들이 잊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야 함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성의 인간 중심 교육과 연관시켜 에리히 프롬의 사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리히 프롬은 ‘현실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회적 가치를 확장해 나가는 인간’의 성향(Natur)과 성격(Charakter)에 대해 면밀하게 연구한 대표적인 학자이다.27) 그는 인간을 성장하고자 하는 ‘일차적인 성향’(primäre Potentialität)을 가진 존재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일차적인 성향을 ‘적당한 조건만 주어진다면 스스로 발달’28)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여기서 프롬이 말하는 일차적인 성향은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자발적인 능력’, ‘환경과 융합하기 위해 쏟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프롬은 타고난 인간의 일차적인 성향을 ‘생산적인 성격 지향성’(produktive Charakterorientierungen) 개념으로 확장시켰다. 여기서 말하는 성격(Charakter)이란 “개인 혹은 다수의 사람들 마음속에 형성되어 있는 감정이나 충동의 구조”29)이다. 프롬의 견해에 따르면, 이 감정과 충동은 인간의 심리를 좌우하는 힘을 가지고 있고 행동에 구체적인 방향과 목표를 제시한다. 그래서 프롬은 “성격을 (비교적) 동일하게 유지되는 형태, 즉 동화와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이 가진 에너지가 모여 저장된 형태”30)라고 정의했다. 즉 인간의 행동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무엇인가를 원하고 추구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의 행동은 어떤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반사 작용과 같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적극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목표를 향한 갈망과 열정에 이끌려서 행동하기 때문에 일관된 형태를 취한다.31)

 

특히 프롬은 이러한 ‘성격 특징’ 뒤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갈망을 탐색했다. 그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성격은 그저 우연히 그렇게 모여 있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한데 묶어 주는 근본적인 지향성, 즉 성격 지향성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생산적’(produktiv)이라는 표현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생산적’이라는 단어의 어원인 라틴어 ‘pro-ducere’의 뜻이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힘을 ‘속에서부터 이끌어낸다’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로써 생산성은 곧 ‘인간의 고유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 ‘인간이 가진 고유한 힘을 펼치는 것’이라 정의했다. 그 고유한 힘을 프롬은 생각과 감성, 행동으로 구체화했다.32)

 

생각의 힘은 곧 ‘생산적 이성’(생산적인 사고, produktives Denken)으로 현실을 이성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프롬은 이성이 지적인 능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감각, 인지 능력, 지성, 감성적 성향 등을 동원하여 현실을 왜곡하거나 뒤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마음 자세라고 보았다. 자신이 보는 세계와 현실로서의 세계가 합치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생산적 이성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어떤 대상을 진솔한 마음으로 보고 동시에 존중할 줄 아는 것도 생산적 이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생산적 이성이라 할 수 있다.

 

감성에서 생산성은 사랑으로 표현된다. ‘생산적 사랑’(produktive Liebe)은 사랑으로 관계를 이끌어가는 능력, 즉 다른 사람과 서로 조화를 이루거나 하나됨을 체험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생산적 사랑의 성격 특징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 상대를 향한 존경과 모든 것을 함께 나누려는 이해심, 경청, 상대방의 독립성 존중, 이웃 사랑과 자기 사랑의 일치 등이 있다. 

 

행동의 힘은 ‘생산적 노동’(produktive Aktivität)으로 나타난다. ‘생산적 노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창조적으로 꾸미는 능력이며, 생산적 노동의 원형은 우리가 솜씨나 재주로 여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한 행동도 아니며, 두려움이나 불합리한 열정에 끌려 이루어지는 행동은 생산적 노동이 될 수 없다. 가슴에서 우러나와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한다면 작고 단순한 일도 모두 생산적 노동이 될 수 있다. 

 

프롬이 평생 천착해 온 인간의 성격 지향성에 관한 연구는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그 물음은 ‘사랑과 이성을 실천에 옮기면서 인간이 가진 고유한 힘을 길러내어 생산적으로 펼치는 것’이라는 해답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그는 남에게 의존하거나 이끌리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사는 방식, 즉 삶의 기술(Kunst des Lebens)을 정립하고자 했다. 

 

프롬이 삶의 기술에 관심을 쏟은 이유는 그가 온전히 살아 온 20세기의 시대적 상황, 즉 사회를 병들게 하는 파괴 성향인 ‘네크로필리에’(Nekrophilie)와 무관하지 않다. 동성고등학교가 한국 가톨릭 중등교육기관으로서 걸어온 100년의 역사에도 네크로필리에로 인한 학교 존립의 위기와 그로 인한 교육 정체성의 혼란은 곳곳에 있었다.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 미군정기(美軍政期), 유신정권, 외환위기 등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사건들 속에서 동성고등학교가 시대의 역정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가톨릭 중등교육 기관으로서 지향했던 인간중심의 ‘삶의 기술’ 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2. ‘일차적인 성향’ 계발과 자강(自强) 교육

 

보통학교였던 소의학교가 소의상업학교(昭義商業學校)로 학제를 개편하면서 지향해 온 교육 방침은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인격체를 상업 교육을 통하여 확립하는 것이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속에서 민족자강(民族自强)을 위해서는 경제생활을 독립적으로 해 나가는 것이 우선적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따른 결단이었다. 당시 상업학교로 학제를 개편한 것에 대해 방규환 교장은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내가 재직 후 3년, 상급 학교 입학률이 1백분의 3 정도였었죠. 국민학(民學)교를 사학(私學)으로 하려는 데로 너무 치우친 상태를 지속했었다는 것은 학생들 장래는 물론이거니와 나라의 장래도 그르칠 우려가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사회 각계의 상황과 여론도 경제면을 염두에 둔 실력의 양성이 근본임을 설명하는 것이었죠. 내가 상업 학교를 만들 때의 생각은 우리가 경제를 열심히 해서 경제적으로 생활을 보람되이 함이 곧 독립 정신의 근본이라 했는데 실제 취직률이 좋다는 걸 듣게 되었소.33)

 

실제로 당시 3년제 을종 상업학교로는 소의상업학교(昭義商業學校)와 선린상업학교(善隣商業學校)가 있었는데, 소의상업학교만이 한국인 학생만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다고 한다. 당시 실업학교가 조선인과 일본인 학생 모두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소의상업학교는 실업교육을 통하여 조선인 학생들에게 경제적 자립 능력과 민족의식 모두 고취시키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34)

 

그러나 당시 조선 총독부는 하급 기술만을 습득시키려는 목적으로 조선인에게 실업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소의상업학교는 조선 총독부의 교육 의도에 동조하지 않았으며, 학생들을 하급 기술만 익혀 사회로 진출시키면 끝나는 수동적 존재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자급자족을 하면서 사회와 민족, 그리고 조국을 위하는 큰 일을 도모하게 하는 준비를 쉬지 않고 해나갔다. 생활 형편이 가난하고, 산업 발전은 미약한데다가 대중이 무지한 상태에 있는 이상 실업(實業)과 직업을 통하여 잘 사는 것으로 만족하게 하기도 손쉬울 수 있었지만, 소의상업학교(昭義商業學校)만은 그러한 안락한 생각에 젖게 하는 교육에서 탈피해 있었다.35) 소의상업학교가 교육을 통해 경제적 자립 능력과 민족의식 모두 고취시키고자 했던 이유는 학생들을 자신의 힘으로 현실과 맞서며 살아가는 능동적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당시 소의상업학교에는 “자기 일을 제 스스로가 감당해 나가는 자립적인 인간을 양성”36)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교육과 그에 따른 학생들의 의지가 있었다. 또한 “일본 제국주의 침략 세력에 의하여 지배받는 상황에서나마 자주적인 생활인이 되어 보자는 안타까운 염원”37)도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여건 속에서 소의상업학교가 학생들에게 내어준 학교라는 교육 공간과 실업(實業)이라는 교육 내용은 학생들의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자발적인 능력’을 키우는 조건들이었다. 실업교육을 통해 소의상업학교는 조선 총독부가 의도한 식민지 체제에 순응하는 하급 기술자 양성을 지양하고, 학생들의 내면에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자립할 수 있다는 강렬한 소망’을 끌어내고자 했다. 이 열망은 바로 프롬이 말한 인간의 ‘일차적 성향’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생산적 성격 지향’ 계발과 가톨릭 인간관을 토대로 한 인간 중심 교육

 

1922년 남대문상업학교(南大門商業學校) 운영권이 천주교 경성교구로 이관되면서, 소의상업학교가 지향해 온 자강 교육은 더욱 확장되고 구체화된다. 1922년 4월 15일자 《경향잡지》에 천주교 경성교구는 남대문상업학교를 인수한 목적을 다음과 같이 표명했다. 

 

우리가 이 중학교 수업을 경영함은 무슨 육신의 이익을 위함도 아니요, 세속의 헛된 체면과 허탄한 영광을 위함도 아니다. 다만 현재의 영광과 사람의 개인 사정을 위함이니 곧 교중 자제들을 교중 학교에서 타당히 교육하기를 위함이요, 이 학교로써 전교하는 기관을 삼아 외교인을 성교회로 회두식에 인도하기 위함이니, (…)38)

 

이제 천주교 경성교구가 남대문상업학교를 인수하면서 소의상업학교 때는 없던 종교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특히 남대문상업학교에 신학생 예비반인 을조(乙組)가 설정되면서 가톨릭 정신에 기반한 학풍은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당시 남대문상업학교는 신자 양성이나 교리교육에만 치중하지는 않은 듯 보인다.39) 또한 학생들의 취업에만 혈안이 된 실업학교와도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 나라의 형편을 보면 학생들에게 보통 학식을 가르쳐 그 지혜를 발전시키고, 또 이 나라 인민 되는 사상과 심정을 넣어 준다 함은, 그 목적 뿐이요, 종교 지식의 필요한 사상과 심정, 품행은 아주 몰라도 긴요한 사상만 주입시키는 비합리적인 교육에 영향 받은 교우는 인생의 참된 목적이 다만 이 세상의 영리(永利)한 인격과 민족 주격(民族主格)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사람이 현재와 명령으로 금시 출세하는 것으로만 아니, 반드시 조건(條件)이 조성된 현재를 알아 그 명령을 순순(純順)히 하고 훌륭한 품행(品行)과 예식(禮飾)을 섬김으로써 영생을 준비함이라.40)

 

1923년 1월 15일자 『경향잡지』 기사에 따르면, 천주교 경성교구가 인수한 남대문상업학교는 학생들에게 인생의 참된 목적이 출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품격을 갖추고 유지함으로써 영생을 얻는 것’이 교육 목표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남대문상업학교가 이제 종립학교이자 실업학교로서 ‘보이지 않는 초월적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 고유한 인격체’이면서 동시에 ‘현실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 나가는 자립적인 인간’을 양성하는데 교육의 목적이 있음을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김수환 추기경이 1999년 특강에서 교사들에게 강조한 인간중심 교육은 천주교 경성교구가 남대문상업학교를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41)

 

여기서 천주교 경성교구가 특히 실업계 학교를 인수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 총독부가 조선인들의 중등교육을 억제하고 있던 상황 속에서 졸업 후 취업이 확실히 보장되는 실업학교, 특히 상업학교로의 진학은 조선인들에게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도 했다.42) 그렇다 보니 전국에서 많은 학생들이 지원을 했고, 남대문상업학교 입학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43) 천주교 신자들의 자제들 또한 입학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무렵 교우 자제들의 본교 입학 사정을 살펴보면, 1922년의 신입생 중에는 6명, 1925년에는 13명에 불과하여 전교생 2백 30명 중 교우의 자제는 20명 정도였다. 그 후에도 교우의 자제는 신입생 전체의 3할을 넘지 못하였다.44) 신자, 비신자를 구분하지 않은 공정한 입학 선발 과정은 이후 남대문상업학교가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는 실업 교육 기관이 되는 중요한 발판이 된다.45)

 

당시 천주교 경성교구가 남대문상업학교를 인수하면서 추구한 교육 방침은 프롬의 ‘생산적 성격 지향성’ 교육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가톨릭 인간 이해에 기반한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실업인 양성’은 학생들에게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자립할 수 있게 하는 일차적인 성향을 적극적으로 끌어냄으로써 생각의 힘[생산적 이성], 감성의 힘[생산적 사랑], 행동의 힘[생산적 노동]을 키우는 교육으로 구체화되었다. 먼저, 남대문상업학교는 천주교 경성교구로 인계된 이후에도 실업학교로서의 정체성을 이어나갔고 교사 확충으로 실업교육의 질을 높였다. 이는 학교가 실업교육을 도구적 이성이 아니라 당시 조선이 처한 식민지 현실을 직시하고 그 상황 속에서 부딪치는 문제들을 타개해 나가기 위한 ‘생산적 이성’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46) 방규환 교장은 당시 학생들에게 ‘월급쟁이 노릇을 하지 말고 자영 상인의 길을 개척하라고’ 늘 강조했다고 한다.47)

 

프롬이 말하는 ‘생산적 이성’은 ‘생산적 사랑’으로 이어졌다. 남대문상업학교가 천주교 경성교구로 이관된 이후 학생들에게 강조된 교육이 수신(修身)으로서의 종교교육이었다. 교회 운영으로 인한 종교적 색채가 강화될 것에 대한 몇몇 학생들의 우려도 있었으나 학교는 가톨릭 종립학교로서 학생들에게 인생의 참된 목적은 개인의 출세가 아닌 ‘품격을 갖추고 유지하는 것’임을 시종일관 강조했다. 개인의 품격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품격’으로서의 사랑을 강조했는데, 동성고등학교 100년의 역사에는 사제 간, 학생과 학생 사이에 하나됨, 또는 조화를 이루는 체험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박준호 교장에게 용서를 청한 학생들의 용기48), 프랑스 선교사였던 크렘프 경(慶) 신부의 ‘이놈아! 왜 이제 오십니까?’ 에피소드49), 학교 교훈의 모범인 박준호, 장면 교장이 학생들에게 보여준 감화력50), 동문들이 회상하는 교사들의 면모51) 등이 있다. 개교 35주년 행사에서 고인이 된 박준호 교장과 송충원 선생을 비롯한 작고한 직원 및 생도들을 위한 위령제가 혜화동 성당에서 엄수된 점도 생산적 사랑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52)

 

남대문상업학교가 시종일관 유지해 강조해 온 ‘생산적 이성’과 동문들이 학교를 회상할 때마다 언급하는 학생과 교사 간의 가족 같은 분위기, 즉 ‘생산적 사랑’은 학생들을 ‘생산적인 행동’[생산적 노동]으로 이끌었다. 교사를 혜화동으로 이관한 이후 동성상업학교는 학생들에게 신체를 단련할 수 있는 다양한 운동과 학생활동을 장려했다.53) 1940년대 조선 총독부의 전시 조치령으로 군사 훈령이 강행되는 불안한 정국 속에서도 학생들이 활동한 상업 경제 조사부, 포스터부, 주사부, 정구부, 농구부, 문예부, 음악반 등은 프롬의 표현을 빌리면, ‘자신이 사는 세상을 창조적으로 꾸미는 능력’을 끄집어내는 생산적 활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생각의 힘[생산적 이성], 감성의 힘[생산적 사랑], 행동의 힘[생산적 노동]을 키우는 교육은 동성상업학교가 인문학교로 개편된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54)

 

4. 사회적 성격 지향과 공동체성 회복 교육

 

프롬은 열정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성격 지향성이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사회 공동체에도 있다고 보았다. 그는 한 사회의 모든 개인들에게 결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이 지향성을 ‘사회적 성격’(Gesellschafts-Charakter, social character)이라 명명했다. 

 

성격이 갖는 사회생물학적인 기능은 개인 성격뿐만 아니라 사회 성격의 형성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회 성격이라는 것은 어떤 사회 그룹의 성원들 대부분이 갖는 성격 구조의 ‘모태’이자 ‘핵심’이다. 그러니까 사회 성격은 이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활 방식과 경험이 어우러져 빚어낸 성과물이다. … 사회 성격의 발달은 그 사회가 성공적으로 존재하고 작동하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55)

 

프롬은 이 사회적 성격이 어떤 지향성을 가지느냐에 따라 인간 개인의 삶 또한 성공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가 고정된 것도 아니며 대립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는 살아있는 구체적인 개인들이며 개인은 오로지 사회화된 개인으로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곧 사회적 존재라 할 수 있다. 프롬이 말하는 사회적 존재는 ‘세계와 관계하면서 살아가는 존재’,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이다. 프롬은 인간을 본래 “스스로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Bedürfnis), 고독을 피하고자 하는 욕구”56)를 가진 존재이기에 세계와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를 변화, 발전시켜 나가는 존재로 인식했던 것이다.

 

다만, 사회적 성격이 “집단을 이루는 대다수 구성원들에게 공통된 성격 구조”57)라고 하여 개인들 성격의 합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프롬이 말하는 사회적 성격은 “인간의 에너지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거나 필요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사회적 구조”58)이다.59) ‘바람직하거나 필요한 방향으로 유도한다’는 것은 ‘인간의 에너지를 생산적인 형태로 사회에 사용될 수 있도록 그 에너지를 모은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 구성원의 에너지를 형성하는 것이 사회적 성격이 갖는 기능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성격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변화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 

 

사회적 성격은 인간 본성이 사회구조에 동적으로 적응한 결과다. 사회적 조건이 변화하면 사회적 성격도 변하여 새로운 욕구와 불안이 생긴다. 이 새로운 욕구는 새로운 사상을 낳고 사람들은 이 새로운 사상에 민감해진다. 이 새로운 사상은 다시 새로운 사회적 성격을 안정시키고 강화하며 행동에서 인간을 결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바꿔 말하면, 사회적 조건은 성격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념적 현상에 영향을 준다. 한편 성격은 사회적 조건에 수동적으로 적응한 결과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거나 역사 발전의 결과로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근본적인 요소에 동적으로 적응한 결과이다.60)

 

여기서 인간 본성의 ‘동적인 적응’(dynamische Anpassung)을 ‘정적인 적응’(statische Anpassung)과 비교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적인 적응’은 “성격 구조 전체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새로운 습관을 받아들이면서 행동 양식에 적응하는 것”61)을 말한다. 반면 ‘동적인 적응’은 외부 상황에 적응해야 하는 점에서는 정적인 적응과 같지만 내면에서 ‘새로운 무언가’(etwas Neues)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62) ‘새로운 무언가’는 새로운 욕구로서 잠재력이다. 이 잠재력이 겉으로 드러나는 경향을 프롬은 곧 ‘성장하려는 일반적인 경향’으로 보았다. 따라서 프롬의 ‘동적 적응’은 인간을 사회에 적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인간의 요구에 적합하도록 이끌어갈 수 있는 에너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사회적 성격이 사회 변화에 동적으로 적응하면서 생겨난 성격의 모태라고 하더라도 항상 사회를 견고하게 유지해주는 역할만을 하지는 않는다. 

 

사회적 성격은 사회의 사회-경제적 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성격은 사회 구조를 견고히 해주는 시멘트의 작용을 하든가, 특별한 경우에는 사회 구조를 파괴하는 폭발물을 제공한다.63)

 

사회적 성격이 ‘해당 사회를 더 공고히 하는가’[시멘트 작용], 아니면 ‘사회를 변혁하는데 기여하는가’[폭발물 작용]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의 변화가 인간 본성을 말살하고 있다는 사실을 용감하게 주장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변화가 인간 본성을 말살하고 있음을 잘 알지 못하거나 그것을 알면서도 용기가 없어 침묵하는가에 따라 사회적 성격의 역할을 결정된다.64)

 

지금까지 살펴본 프롬의 ‘사회적 성격’은 공동체성 회복 교육과 관련하여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 번째는 교육의 사회적 기능이다. 프롬은 교육의 사회적 기능을 “개인이 나중에 사회에서 맡을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도록 하는 것”65), 즉, “개인의 성격이 사회적 성격과 비슷해져서 개인적으로 소망하는 바를 사회적 역할에서 필요로 하는 것과 일치하도록 성격을 형성시키는 것”66)이라 정의했다. 프롬의 관점에서 볼 때, 사회적 요구를 개인적 자질로 변형시키는데 교육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다만 학생들이 지향하는 바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이 일치할 수 있도록 성격을 형성시키는 것은 교육 사회화의 소극적 기능이라 할 수 있다. 프롬은 적극적 기능으로서 교육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교육을 한다는 것은 아이가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영어의 education, 즉 교육은 ‘e-ducere’라는 라틴어에서 온 말인데, 직역하면 ‘끌어내다’ 또는 ‘잠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끄집어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교육의 반대말은 조작이다. 조작은 오늘날 어른들이 아이의 발전 가능성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입하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억눌러야만 아이가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한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우리는 로봇을 신뢰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로봇은 펼쳐야 할 인생이 없기 때문이다.67)

 

따라서 사회적 성격을 지향하는 교육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요구에 학생들이 ‘동적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한 사회에 사는 학생들을 수동적으로 사회에 적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학생들의 요구에 맞추어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인 것이다. 동성 100년의 역사 속에서도 끊임없이 학생들의 사회적 성격을 배양하려는 교육적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두 번째 교육적 함의는 프롬이 인간을 사회적 존재, 즉 ‘세계와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는 존재’라고 정의한 것에서 추론해 볼 수 있다. ‘사회적 존재’ 개념에서 프롬은 인간의 “능동성”과 “생산력”(produktive Kräfte)68)을 발견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생물학적으로 고착된 것도 아니며, 인간은 사회적 환경이라는 끈에 묶여 조종당하는 꼭두각시도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는 존재도 아니다. 오히려 프롬은 인간의 본성은 세계와 인간의 관계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69) 따라서 인간의 본성이 세계와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생산적 사회 성격을 내재화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러한 사회 성격은 ‘생산적인 삶’으로 이어진다. 궁극적으로 한 사회 안의 생산적인 사회 성격은 건전한 사회를 형성한다. 건전한 사회는 곧 공동체성이 회복된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건전한 사회는 개인이 동료를 사랑하고,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 이성과 객관성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고유한 생산적인 힘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형성된 자의식을 갖도록 도와준다. 상호 간에 적의와 불신을 일으키고, 한 인간이 타인으로부터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는 도구로 변모시키는 사회는 불건전하다.70)

 

프롬의 사회적 성격 개념과 연관지어 볼 때, 동성고등학교의 역사에도 동성인들만의 고유한 사회적 성격이 있었다. 『동성 100년사』는 소의상업학교 당시 학생들의 성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이는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동성 교육에서 오는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학생들은 그 기질면에 있어서 결코 거칠다거나 짓궂은 면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온건하고 성실한 성품이 일반적인 기질이었으며, 얌전하고 내실(內實)을 기하며, 책임을 다하는 그런 기상이었다. 1920년대 초반에 형성된 이러한 전통은 무형의 자산으로 동성인(東星人)의 혈맥(血脈)에 지금도 흐르고 있다. 표면적으로 감정 노출을 억제하는 듯하면서도 큰 일을 당하면 사자의 기상을 발휘하는 야성인(野性人)이 되어 줄 수 있었다. 말 없이 자기 일에 충실하며 안으로 불길을 태우고 있는 사색형(思索型)의 인간, 이것이 소의상업학교(昭義商業學校) 시절부터 형성된 동성인의 건실한 기질이었다고 본다.71)

 

『동성 100년사』는 학생들의 성향을 세 가지, ‘온건하고 성실한 성품’, ‘얌전하고 내실(內實)을 기하며, 책임을 다하는 기상’, ‘말없이 자기 일에 충실하며 안으로 불길을 태우고 있는 사색형 인간’으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온건하고 성실한 성품’은 당시 소의상업학교에 입학할 당시 학생들이 가졌을 일반적 성향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의 위압적인 교육 정책 속에서 소의상업학교 학생들의 ‘얌전하고 내실을 기하며, 책임을 다하는 기상’은 사회적 변화에 따른 사회적 성격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즉 이 기질은 동성인의 일차적인 성향으로서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자발적인 능력,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쏟은 힘’이었다. 이후 소의상업학교가 천주교 경성교구로 인수되고 남대문상업학교로 개명되면서 학생들의 사회적 성격은 ‘말없이 자기 일에 충실하며 안으로 불길을 태우고 있는 사색형 인간’으로 강화된다. 즉 천주교의 학교 운영과 새교육령에 따른 남대문상업학교로의 재정비는 사회 변화에 따른 새로운 욕구였으며, 가톨릭 사상에 기반한 교육관은 새로운 교육방침[새로운 사상]이었다. 이로써 ‘말없이 자기 일에 충실하며 안으로 불길을 태우고 있는 사색형 인간’은 동성인의 사회적 성격이 되었다. 

 

이제 동성인은 ‘말없이 자기 일에 충실하게’ 있다가도 사회의 변화가 인간의 본성과 건전한 공동체[건전한 사회] 정신에 어긋난다면 언제든지 ‘사자의 기상을 발휘하는 야성인(野性人)’이 되었다. 동성인의 사회적 성격은 동성고등학교의 역사 곳곳에서 발견된다. 1929년 12월 9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지지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을 때, 동성상업학교 학생들 또한 함께 지지하며 독립 만세를 열창했다.72) 당시 학생들의 열창은 조선 총독부의 차별적인 교육정책과 조선인 혐오를 부추기는 식민지 사회를 적극적으로 변혁시키려고 했었던 학생들의 동적인 적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동적인 적응은 1960년 4·19 혁명 때 재현되었다. 동성고등학교 학생들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대해 강하게 항거하며 민주 수호를 외쳤다. 당시 결의문을 통해 “새로운 역사 창조의 의욕으로써 정연한 질서를 이루어 우리의 성스럽고 순수한 목적을 달성하여 떳떳한 행동을 할 것을 결의한다”73)라고 밝힌 바와 같이, 동성인들은 인간 본성을 말살하는 사회 현상에 침묵하지 않았다. 황금찬이 “책상머리에선 잠든 비둘기 같더니 / 민주 대열의 일원으로는 사자보다 무섭구나”74)라고 묘사한 것처럼, 동성인들은 사회 변화에 민주 수호와 학원의 자유를 요구하며 ‘동적인 적응’을 해나갔다. 이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시위대열에서 ‘서로 연대의식을 느끼고 닥치는 문제들을 창조적으로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경험’75)은 공동체성 회복의 경험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동성고등학교 학생들이 세계와 능동적인 관계를 맺고 생산적 사회 성격을 내재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교사들의 공동체성 회복에 대한 교육철학이 있었다는 점도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창기 교장을 비롯한 교과 담당 교사들은 학생들의 신변이 걱정되어 함께 시위에 참여했으나 학생들 스스로 능동성과 생산성을 발휘하도록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1960년 4·19 혁명은 동성인에게 사회적 성격의 변화를 가져온 사건임과 동시에 공동체성 회복의 교육을 확인하는 생생한 현장이기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동성인들의 사회적 성격 지향과 공동체성 회복 교육은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더욱 강화되었다. 4·19 혁명 이후 동성고등학교의 분위기는 학생들을 “너무 억압해서 2중 인격자가 되는 습성을 만들 수 없다는 것”76)이었다. ‘학원의 민주화와 교육의 질적 향상’이라는 새로운 교육이념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동성고등학교는 학교 운영의 민주화와 학생회 발족을 통해 동성인의 사회적 성격과 공동체성을 강화시켰다.77)

 

 

IV. 삶의 기술과 삶을 살리는 교육


1. 줄다리기 게임과 희망의 행동

 

프롬은 사회적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특정한 사회·경제적 구조가 인간성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사회적 성격이 사회 구조와의 상호관계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IV장에서는 가톨릭 중등교육 기관인 동성고등학교의 사회적 성격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오늘날의 사회·경제적 구조 안에서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II장에서 살펴본 OTT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다시 소환하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징어 게임>은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풍자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감독이 ‘작품만 두고 본다면 좋은 일인데, 세상 사람들이 이 작품에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서글프다’라고 소회를 밝혔듯이, 그 ‘서글픈 점’은 곧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자화상이라 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은 현대인들에게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첫 번째는 ‘변질된 게임’이다. 즉 참가자들의 합의로 시작된 게임은 표면적으로 공정한 것처럼 보인다. 과반이 동의하면 게임을 중단한다는 원칙도 있다. 그러나 취침 시간에는 서로 죽이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게임장은 무법지대가 된다. 심지어 이 게임은 VIP들의 판돈에 의해 짜여진 불공정한 도박판이었다. 공정함을 가장한 불공정한 이 게임은 두 번째 문제로 이어진다. 즉 ‘욕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의 무한 반복’이다. <오징어 게임>에서 상금 456억은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숫자인 동시에 다른 참여자들의 죽음과 맞바꾼 돈이다. 그 죽음이 자기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공포를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게임 참가자들은 때로는 돈에 대한 욕망에, 때로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기도 하면서, 게임에 탈락하여 죽거나 생존하여 판돈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문제는 참가자들이 이 무한 반복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각각의 참가자들이 이 악순환을 감내해야 하며 선택의 결과 또한 개인에게 돌아간다.78)

 

<오징어 게임>에서 ‘아이들의 순수한 놀이가 도박판으로 변질된 상황’은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놀이가 오히려 놀이를 통해 공동체성이 파괴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펄쳐지는 판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모습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현대인들에게 선택에 따른 경쟁을 정당화한다. 더구나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도 없다. 따라서 ‘욕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의 무한 반복’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무한경쟁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한 처지를 묘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생존 불안감, 그리고 홀로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고립감은 주체성의 부재를 낳고 결국 공동체의 와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서바이벌 게임의 최종 승자는 성기훈이 아닐 수 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성기훈을 보며, 치열한 경쟁 사회 안에서 인간의 선한 의지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것이라는 위안을 받는 것도 무의미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머지 참가자 455명은 게임판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망각”79)되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이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한다면, 게임이 진행될 때마다 패배자들이 잔혹하게 죽어 나가는 상황은 결국 한 개인의 파멸인 동시에 456명 모두의 파멸일 뿐이다.

 

프롬은 한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이러한 파괴적인 성향을 네크로필리에(Nekrophilie)라 특징지었다. 네크로필리에는 좁은 의미로 ‘죽음에 대한 사랑’, 또는 ‘죽음에의 이끌림’이며, 넓은 의미로는 ‘생명이 없는 기계적인 것을 지향하는 힘‘을 말한다. 프롬은 네크로필리에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생명이 사라진 것으로 바꾸려는 성향‘이라 규정했다. 즉 사물(=기계)에 대한 우상화가 경제,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살아 있는 것보다 기계를 더 선호하는 사회 성격 지향성을 만들어낸 것이다.80) 따라서 프롬은 생명보다 사물(=기계)을 지향하는 사회적 성격이 ‘인간 같은 기계’, ‘기계 같은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81) 그는 교육적 차원에서도 인간의 사물화 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교육은 초등교육에서 고등교육에서 이르기까지 하나의 완벽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교육은 향상했지만 이성과 판단력, 신념은 감소되고 있다. 기껏 지성이 높아진 정도로 이성표피를 뚫고,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의 밑바닥에 있는 다양한 힘을 이해하는 능력은 점점 빈약해지고 있다. (…) 인간은 자기가 만든 기계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그 노예로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사물로 되기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더욱이 소비의 완전한 충족과 더불어 인간의 생명력을 끊임없이 중단 상태에 둘 수는 없다.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82)

 

여기서 프롬은 생명보다 물질을 더 높이 평가하는 성격이 지배적인 사회 속에서 학교 교육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프롬이 말하는 ‘하나밖에 없는 선택’이란 무엇인가. 그 단초를 <오징어 게임>에서 찾는다면, 바로 줄다리기 게임이다. 줄다리기는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게임들 가운데 개인 간 경쟁이 아니라 집단 간에 경쟁하는 유일한 게임이었다.83) 001번 참가자가 “줄다리기는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야. 다들 기죽을 거 없어. 줄다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나? 버티는 거야.”라고 말한 것처럼, 참가자들은 줄다리기 게임을 통해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갔고 함께 버티어냈다. 줄다리기 게임에서는 프롬이 말한 ‘개인이 동료를 사랑하고 창조적인 작업을 하고 이성과 객관성을 발전시키고 자신의 생산적인 힘’, 즉 공동체성을 체험한 것이다. 이처럼 줄다리기는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유일하게 소속될 수 있는 공동체적 놀이였다. 그러나 개인 간의 게임인 구슬치기를 하게 되자 참가자들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에 다시 내몰린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다시 홀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개인 간 경쟁이다. 경쟁의 단위가 집단으로부터 개인으로 바뀌면 거의 모든 공동체가 전멸할 수밖에 없다. 각종 소규모 공동체, 심지어 가정 공동체까지 붕괴되면 모든 사람들은 개인으로 파편화되고 그 결과 고독해진다. 이것이 개인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자신이 소속될 그 어떤 공동체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살아갈 이웃, 동료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사람이 과연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구슬치기 게임에서 아내를 죽이게 된 남편이 죄책감에 못 이겨 자살을 하는 장면은 이런 끔찍한 현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84)

 

프롬은 네크로필리에적 사회적 성격 지향성을 소멸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은 “다시 인간이 기계의 주인이 되어 생산을 목적 아닌 수단으로 삼고 그것을 인간의 발달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뿐”85)이라고 했다. 이는 인간이 생존하는데만 자기 힘을 쏟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성숙하고 창조적이며 사랑하고 이성적인 인간의 발전이 목적”이 되는데 자기 힘을 스스로 계발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동성고등학교가 과거의 역사를 왜 돌아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프롬의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라는 결단에서 시작된다. <오징어 게임> 드라마가 개인이 고립되고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을 게임의 속성을 통해 잔인하게 보여주었다면, 동성고등학교의 역사에서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도 자립할 수 있는 생각의 힘, 감성의 힘, 행동의 힘을 길러온 한 사람 한 사람의 ‘동성인’이 있었다. 또한 시대적 풍파 속에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연대를 통해 공동체성을 회복하려고 분투했던 ‘동성인들’도 있었다. 그 동성인들이 보여준 연대는 ‘동성’이라는 학교 공동체의 ‘사회적 성격’이었다. 나아가 동성의 ‘사회적 성격‘은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동성인들이 키워나가야 ’희망의 행동‘이어야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고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전진시키고, 우리의 ‘올바른 운명’을 완수시키는 일종의 ‘구세주’라든가 ‘기적 같은’ 결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 이 문제들은 너무나도 버겁고 힘겨운 것들이라서 한 사람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나 기술자에게 위임해서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역사적 창조라는 집단적 실천’에 의해서만 보다 행복한 결과들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이 도전의 최선봉에 바로 교육자 여러분의 과업이 놓여 있다는 저의 직관은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역사적 한계와 가능성 안에서 집단적으로 더 나은 현실을 창조해내는 것이 바로 ‘희망의 행동’an act of hope입니다. (…) 모든 자원을 다 가동하되 미리 계산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더해지면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86)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었을 당시 가톨릭 교육자들에게 보냈던 편지에서 현재 닥친 시련에 대해 “교육자로서 우리가 맡은 과업이 ‘원래 하고 있던 것을 계속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될 것”87)이며, “혹독한 역경에 맞서서 그저 ‘저항만’하고 있어서도 안 될 것”88)이라고 충고한다. 대신 교육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과업을 권고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며, 역사의 한가운데서 새 건물에 쓰일 벽돌들을 쌓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역사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말은 우리가 과거를 담고 있는 현재 속에 처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현재는, 소망컨대, 미래 역시 품고 있습니다.”89) ‘동성’이라는 학교 공동체가 키워나가야 할 ‘희망의 행동’은 100년의 과거를 담은 현재 속에 있으며, 나아가 미래의 100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2. 비오필리에와 삶을 살리는 교육 

 

사회를 병들게 하는 파괴적인 성향의 사회구조 속에서 프롬의 ‘비오필리에’(Biophilie)는 ‘희망의 행동’을 유도하는 인간의 성향이다. 네크로필리에와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비오필리에’(Biophilie)는 ‘생명을 향한 사랑’을 뜻한다. 프롬의 비오필리에에 대한 관심은 과거의 참혹했던 경험에 기인한다. 홀로코스트와 제3제국 시절을 경험하면서 그는 인간의 파괴성 성향을 단호히 거부하거나 억압하는 것보다 오히려 파괴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이로써 얻게 되는 중요한 결론이 “삶에 대한 충동이 방해를 받을수록 파괴를 향한 충동은 강해진다. 삶이 실현될 수록 파괴의 힘은 줄어든다, 파괴성은 살지 않은 삶의 소산이다.”90)라는 것이었다. 즉 프롬은 과거의 참혹했던 결과로부터 생명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깨달았고, 파괴성은 곧 생명력을 잃어버린 삶의 결과라는 확신에 이르게 된다.

 

폭력과 무력의 연쇄 고리를 끊을 수 있는 희망은 오직 한 가지다. 우리는 다시금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를 보듬을 줄 아는 감성을 회복해야 한다.91)

 

1966년에 베트남 전쟁을 보며 다시 주창한 비오필리에, 즉 ‘모든 생명체를 보듬을 줄 아는 감성’은 여전히 전쟁과 테러가 일어나고 있고 일상의 폭력도 끊이지 않는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도 유효하다. 무엇보다도 프롬은 성장을 지향하는 일차적 성향이 차단되었을 때 파괴적 성향이 야기되며, 생명을 창조할 수 없을 때 파괴적 행동이 나온다고 보았다.92) 그렇다면 ‘모든 생명체를 보듬을 줄 아는 감성’ 또는 ‘생명을 향한 온전한 사랑’은 ‘생명을 창조하려는 갈망이자 생명을 창조하려고 노력하는 자발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다. 프롬이 “생명을 사랑할 줄 사람은 모든 분야에서 생동하며 성장하려는 끌림을 갖는다”93)고 말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비오필리에는 일차성 성향에서 시작된다. 일차적인 성향은 남에게 의존하거나 이끌리지 않는 당당한 삶을 만들어 주는 힘이다. 따라서 비오필리에는 프롬이 제안하는 삶의 기술, 즉 삶에 대한 태도이다. 

 

프롬은 스스로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을 그는 노년에 ‘소유를 벗어나 존재로 넘어가는 것’이라 했고 자신의 저서인 『소유냐 존재냐』에서 ‘존재로의 지향’이라 정의했다. 이때 프롬이 이해하는 ‘존재’라는 말은 인간이 가진 고유한 힘을 길러내어 펼치는 것을 뜻한다. 

 

존재의 실존양식을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은 바쁘게 움직이는 활동이 아니라, 내면을 성찰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힘을 생산적으로 쓰는 능동성으로서의 활동이다. 능동성이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신의 다양하고도 풍부한 소질과 재능을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94)

 

프롬이 말한 대로 삶의 기술이자 궁극적으로 존재를 지향하는 비오필리에는 교육적 차원에서도 충분히 논의해 볼 가치가 있는 개념이다. 프롬은 오늘날 ‘학교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요소들을 많이 떨쳐버리긴 했으나, 이젠 오히려 자식에게 지나치게 많이 먹이려는 모성애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학생들에게 ’지루한‘ 학습이라는 음식을 삼키도록 강요하고 있다.’95)고 비판한 적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지식 전달 중심의 교육은 학생들의 주체성과 자아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적 학습96)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역으로 보면, 프롬의 비오필리에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삶의 기술]를 길러줄 수 있으므로 존재지향적 교육의 토대가 될 수 있겠다. 헬무트 베어는 “제도로서의 학교는 기술 만능주의적이고 행정적인 체제에 강요에 굴복했다.”97)고 비판하면서, 프롬의 비오필리에 사상이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반권위적인 공동체 중심의 체험 교육이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창조적 표현능력을 키울 수 있는 실질적인 지식과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았다.98)

 

동성 100년의 역사에도 비오필리에에 기반한 존재론적 교육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스승의 생명을 구한 사랑의 헌혈 운동’99)이다. 2000년 4월 당시 동성중학교 교사였던 김제선 선생에게 보여준 학생들의 자발적인 헌혈 행위는 교육계의 분열과 감정대립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 동성인들이 보여준 ‘희망의 행위’였다. <동성 100년사>는 이 헌혈 운동이 ‘학교장부터 참여한 자발적인 행위였다는 자부심’과 ‘꺼져 가는 한 생명을 살려냈다는 자랑스러운 성취감’을 줌으로써 교사와 학생들 모두를 하나가 되게 했다고 평가했다.100) 프롬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동성인의 헌혈 운동은 ‘생명을 창조하려고 노력하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능력’에 기인한 것으로 한 인간에 대한 존중이자 공동체성 회복의 노력이라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성모의 밤’ 행사이다. 1980년대 들어오면서 학원의 복음화 관련 행사들이 체계화되고 활성화되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행사가 ‘성모의 밤’이다.101) 2022년 현재까지 교내 행사로 이어지고 있는 ‘성모의 밤’은 ‘복음에 입각한 전인적 교육활동’의 전형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성모의 밤’은 종교부 활동 중심으로 동성인의 신앙생활을 고양시키는 시간으로 정착되었다. 동시에 시대적 요구에 동성인이 가져야 할 사회적 성격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교사들와 학생들, 학부형들 등 동성 학교의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공동체 중심의 체험의 장(場)으로도 확장되어 가고 있는 듯 보인다.102)

 

동성고등학교의 위와 같은 비오필리에에 기반한 존재론적 교육의 시도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육관과도 맞닿아 있다. 교황은 오늘날 가톨릭이 교육기관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버겁다는 사실에 공감하면서도 가톨릭 교육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한다. 

 

모든 그리스도교 교육의 본질적인 사명은 전적으로 포용에 투신하는 것이며 포용을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103)

 

교황이 강조한 것은 ‘포용’이다. 이는 어떠한 사람도 배제되어서는 안 되며, 나아가 가톨릭 교육이 배타적인 사회를 지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타성은 폭력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황은 몇몇 사람에게만 가능성을 열어주는 교육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가능성을 열어주는 교육이며, 구체적으로는 ‘형제자매적 연대’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즉 사람은 쓸모가 있어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과 딸로서 인간 존재가 지닌 내재적 가치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포용’은 바오로 6세의 식별 원칙을 토대로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한 교육이어야 함을 의미한 것이라 볼 수 있다.104) 한편 ‘연대’는 “인간 행동 및 인간 사회를 이해하고 살아내는 하나의 방식”105)을 의미한다. 이 연대에는 “사회적 불균형이 가져오는 결과를 완화시키기 위한 개인적 혹은 공적 활동”106)일뿐만 아니라 “그러한 불균형의 발생 자체를 막는 길을 찾아내려는 탐색”107)이 요구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교육적 차원에서 ‘형제자매적 연대’는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모든 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길을 모색하는 희망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포용’과 ‘형제자매적 연대’가 가톨릭 교육의 이념이자 방침이라고 한다면, 교황이 강조한 교육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는 가톨릭 학교가 “마치 소시지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획일적인 교육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108)다고 당부한다. 

 

우리의 목표는 ‘사회를 위해 유용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사람을 교육하는 것입니다.109)

 

교황은 교사들이 ‘열매 맺음’을 지향하되 그 열매들이 효율적인 방식으로 ‘결과 생산’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할 때, 학생들에게 내재된 자유, 자기 결정, 창조성을 역동적으로 끌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열매 맺음’과 ‘결과 생산’을 분리하거나, 가톨릭 교육기관이 “균일성과 이해타산을 바탕으로”110) 교육을 한다면, “소비 사회의 맥없는 꼭두각시”111)가 출현하고 말 것이라고 오늘날의 가톨릭 교육 기관에 주의를 준 것이기도 하다. 

 

한편 교황의 이러한 경고(?)는 가톨릭 교육자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읽을 것을 간곡하게 요청한 것이기도 하다. 교황은 교육자들에게 “이 사회에서 어린이들이 어떤 현실에서 살고 있는지 거기에 다가서려고 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는 것이 중요”112)하다고 했다. 교육의 출발점이 현실의 이야기에서 시작될 때, 즉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돌보고 발전시키며, 교육하는 이 현장에서 눈을 크게 뜨고 우리가 지닌 생각, 정서, 행동, 그리고 무관심을 성찰”113)할 때, 삶을 살리는 교육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성찰은 곧 성숙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교황은 이 성숙을 “자기가 속한 수많은 상황과 역사적 배경에서, 자유롭게 결정하고, 자기 선택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능력”114)이기도 하지만 “인간들 사이에 유대를 맺어주는 사랑에 대한 완전한 긍정”115)이라고도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가톨릭 중등교육은 곧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모든 이들’의 삶을 사랑하고, 그들의 삶을 살리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성숙한 인간을 양성하고 성숙한 사회를 이루어내는 교육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점에서 가톨릭 중등 교육인 동성 교육의 과거 100년의 역사는 삶의 기술, 인간 중심,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미래 100년대의 가톨릭 중등 교육의 ‘열매 맺음’은 교황이 제시한 교육 목표인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사람’을 교육하는 데서 시작된다. 

 

 

V. 나가며: 역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과정

 

E. H. 카는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계에 대한 그 충만한 감각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이다.”116)라고 고백한 바 있다. 여기서 E. H. 카는 변화를 성취나, 기회, 또는 진보로 생각하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했다. 왜냐하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무기력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무기력은 우리에게 급진적이고 원대한 이념은 믿지 말라는 훈계, 혁명의 냄새가 나는 것은 모조리 피하라는 훈계밖에 줄 수 없다고 보았다. E. H. 카에게 ‘역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과정’이었다. 물론 역사가도 그 과정 안에서 움직여 나가는 존재다. 

 

프롬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에 주목했다. 한 사회 안에 ‘인간의 에너지를 필요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사회적 성격이 있다고 보았다. 그 사회적 성격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변화하는 역동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생물학적 동기보다 사회적 동기라 볼 수 있다. 인간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변화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교구장 시절 교육공동체에 보내는 편지 서두에 당시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삶에 닥친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이처럼 경제공황이라는 위기의 순간에 교황이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진 대상은 가톨릭 학교의 교사들이었다. 그는 교사들이 “역사적 창조라는 집단적 실천”117)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다만 교황은 가톨릭 학교들이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손에 쥔 채, 권력을 휘두르는 그리스도인의 군대를 형성하려는 열망”118)은 변화에 대한 경직된 태도로서 역사적 창조에 저해된다고 보았다. 

 

본고에서는 동성중·고등학교 역사에 대한 고찰 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교육환경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시작하였다. 이를 위하여 먼저 현재 한국의 사회경제적 문제가 반영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통해 개인이 고립되고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한국 사회 변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오히려 학교 교육에 대한 희망을 찾고자 했다. 따라서 동성중·고등학교 역사에서 사회의 변화 속에 자발적으로 성장하려는 갈망을 지닌 ‘동성인’과 연대를 통해 공동체성을 회복하려고 분투했던 ‘동성인들’을 소환했다. 특히 그 동성인들의 심리적 동기와 내면의 힘을 프롬의 성격이론인 ‘일차적 성향’, ‘생산적 성격 지향’, 그리고 ‘사회적 성격’ 개념을 통해 살펴보았다. 

 

한편 동성중·고등학교의 116년의 역사는 한국 교육사의 한 페이지이기도 하지만 이 가운데 100년은 한국 가톨릭 중등교육 100년의 역사이기도 하다. 특히 ‘생산적인 성격 지향’과 ‘사회적 성격’을 강화할 수 있었던 ‘인간 중심 교육’과 ‘공동체성 회복 교육’은 가톨릭 중등교육의 중요한 이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동성중·고등학교 역사에 나타난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인간 중심 교육’과 ‘공동체성 회복 교육’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중등교육기관으로서 동성고등학교 역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를 프롬의 비오필리에 사상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을 살리는 교육적 관점을 종합하며 전망해 보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시대의 삶을 살리는 교육을 새로운 인류를 향한 희망이라고 하였다. 한국 가톨릭 중등교육의 산실인 동성 교육도 교황의 교육관과 궤를 같이 하면서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희망의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동성 교육은 과거 100년 격동의 역사를 겪어 온 것처럼, 앞으로 올 100년의 시간 속에서도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럴 때마다 교황의 다음 메시지를 상기해야 할 것이다. 

 

어떤 학교들은 고객에게 상품을 제공하듯 교육을 합니다. 인맥과 환경과 수월성이 바로 그 학교가 판매하는 상품입니다. 하지만 좋은 교육상품 판매가 우리 가톨릭 교육의 이유는 아닙니다. 우리는 윤리적 사명과 복음적 사명에 이끌려 교육서비스를 제공할 뿐입니다. 우리가 교육에 참여하는 단 한가지 이유는 또 다른 세상과 새로운 인류를 향한 희망 때문입니다.119)

 

 

참고 문헌


1. 자료

 

『동성 100년사』

『동성 100년사: [東星總同窓會史]』

OTT 드라마 <오징어 게임>

 

2. 논문

 

강정석, 「도덕주의와 생존주의의 늪 : 〈오징어 게임〉에 대한 윤리적 비판」, 『문화과학』 108, 2021, 

권명아, 「『오징어 게임』 어펙트, 마주침의 윤리와 연결성의 에톨로지」, 『석당논총』 82, 2022.

박찬국, 「에리히 프롬의 인간관 :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 『시대와 철학』, 7-2, 1996.

박찬국, 「인간주의적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에 대한 보수주의적 입장에서의 일고찰-에리히 프롬의 인간주의적 사회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시대와 철학』 11-1, 2000.

이영경, 「고독의 철학」, 『철학연구』 134, 2015. 

전영재, 「〈오징어 게임〉의 스토리텔링 전략 연구」,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65, 2021.

조준배, 「역사가와 이데올로기: E. H. 카와 자유주의」, 『사림』 78, 2021.

 

3. 저서

 

김태형, 『싸우는 심리학』, 서해문집, 2014.

데이비드 캐너다인 엮음, 문화사학회 공역, 『굿바이 E.H.카』, 푸른역사, 2005.

라이너 풍크, 김희상 역, 『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 것들』, 갤리온, 2008.

로런스 프리드먼, 김비 역, 『에리히 프롬 평전』, 글항아리, 2016.

박찬국,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세창미디어, 2014.

부르크하르트 비어호프, 「사회적 성격과 교육」, 라이너 풍크, 헬무트 요하흐, 게르트 마이어 엮음, 박규호 역, 『에리히 프롬과 현대성』, 영림카디널, 2003.

에드워드 H. 카, 김택현 역,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 2015.

에리히 프롬, 김병익 역, 『건전한 사회』, 범우사, 1975.

에리히 프롬, 홍순권 역, 『휴머니즘의 재발견』, 한벗, 1983

에리히 프롬, 차경아 역, 『소유냐 존재냐』, 까치, 2017. 

에리히 프롬, 황문수 역, 『사랑의 기술』, 문예출판사, 2017.

에리히 프롬, 김석희 역, 『자유로부터의 도피』, 휴머니스트, 2022.

헬무트 베어, 「학교발전을 위한 생명애호적 대안」, 라이너 풍크, 헬무트 요하흐, 게르트 마이어 엮음, 박규호 역, 

『에리히 프롬과 현대성』, 영림카디널, 2003.

프란치스코 교황, 박준양·조재선 역, 『삶을 살리는 교육』,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5. 

Erich Fromm, Die Furcht vor der Freiheit (1941a), Gesamtausgabe Bd.1. Analytische Sozialpsychologie,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Erich Fromm, Psychoanalyse und Ethik. Bausteine zu einer humanistischen Charakterologie(1947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2. Analytische Charaktertheorie,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Erich Fromm, Die Seele des Menschen. Ihre Fähigkeit zum Guten und zum Bösen(1964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2. Analytische Charaktertheorie,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Erich Fromm, Haben und Sein. Die seelischen Grundlagen einer neuen Gesellschaft (1976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2, Analytische Charaktertheorie,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Erich Fromm, Wege aus einer kranken Gesellschaft (1955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4. Gesellschaftstheorie,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Erich Fromm, Anatomie der menschlichen Destruktivität (1973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7. Agressionstheorie,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Erich Fromm, Die Kunst des Liebens (1956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9. Sozialistischer Humanismus und Humanistische Ethik,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1.

Rainer Funk, Mut zum Menschen : Erich Fromms Denken und Werk, seine humanistische Religion und Ethik,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78.

 

4. 신문 및 잡지

 

김기홍, 〈〈오징어 게임〉의 인기와 공공성〉, 《공공정책》 2021년 11월호.

김태형, 「오징어게임의 심리학」, 『다른백년』 2021년 10월 14일자, http://thetomorrow.kr/archives/14641(검색일: 2022.11.10.).

「‘기생충’처럼 계급사회 꼬집은 ‘오징어 게임’ 글로벌 히트」, 

『연합뉴스』 2021년 9월 23일자, 

https://www.yna.co.kr/view/AKR20210923067852005

(검색일: 2022.11.02.).

「“애들이 따라 한다”…각국 학교 오징어게임에 ‘골치’」, 

『연합뉴스』 2021년 10월 15일자, 

https://www.yna.co.kr/view/AKR20211014179451009

(검색일: 2022.11.02.).

「경기도교육청, 청소년 뽑은 뉴스 1위 ‘오징어 게임’」, 

『국민일보』 2021년 12월 19일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586104&code

=61121111&cp=nv(검색일: 2022.11.02.).

「오징어게임 후폭풍?... “딱지치기 하고 뺨 때리면 안 돼요” 공문」, 

『오마이뉴스』 2021년 10월 29일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

CD=A0002783542(검색일: 2022.11.02.).

「자녀의 ‘오징어 게임’ 시청을 막아야 하는 이유」,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1월 10일자, 

https://news.catholic.or.kr/WZ_NP/section/view.asp?tbcode=SEC0

3&cseq=2&seq=172982(검색일: 2022.11.02.).

「황동혁 감독 “‘오징어 게임’ 세계적 흥행, 기쁘고 서글퍼”」, 

『아주경제』 2021년 10월 6일자, 

https://www.ajunews.com/view/20211005134756723

(검색일: 2022.11.02.).

 

………………………………………………………………………………………………

 

1) E. H. 카, 김택현 역, 『역사란 무엇인가』, 까치, 2015, 46쪽.

2) 같은 책, 121쪽.

3) 같은 책, 125쪽.

4) 같은 책, 149쪽.

5) 조준배, 「역사가와 이데올로기: E. H. 카와 자유주의」, 『사림』 78, 2021, 90~97쪽 참조. 

6) E. H. 카, 위의 책, 12쪽.

7) E. H. 카, 위의 책, 180쪽.

8) 데이비드 캐너다인 엮음, 문화사학회 공역, 『굿바이 E.H.카』, 푸른역사, 2005, 261~267쪽 참조.

9) E. H. 카, 위의 책, 181쪽.

10) 권명아, 「『오징어 게임』 어펙트, 마주침의 윤리와 연결성의 에톨로지」, 『석당논총』 82, 2022, 135쪽.

11) 같은 글, 134쪽.

12) 같은 글.

13) 같은 글.

14) 같은 글, 137쪽.

15) 전영재, 「〈오징어 게임〉의 스토리텔링 전략 연구」,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65, 2021, 416~417쪽.

16) 김기홍, 「〈오징어 게임〉의 인기와 공공성」, 『공공정책』 2021년 11월호 104쪽.

 

17) 「‘기생충’처럼 계급사회 꼬집은 ‘오징어 게임’ 글로벌 히트」, 『연합뉴스』 2021년 9월 23일자, https://www.yna.co.kr/view/AKR20210923067852005(검색일: 2022.11.02.).

 

18) 전영재, 앞의 글, 433쪽.

 

19) 「“애들이 따라 한다”…각국 학교 오징어게임에 ‘골치’」, 『연합뉴스』 2021년 10월 15일자, https://www.yna.co.kr/view/AKR20211014179451009(검색일: 2022.11.02.).

 

20) 아이러니하게도 2021년 12월 19일 경기도교육청이 주관하는 하루방송국에서 ‘청소년이 뽑은 2021년 10대 뉴스’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검색한 단어는 ‘오징어 게임’이었다; 「경기도교육청, 청소년 뽑은 뉴스 1위 ‘오징어 게임’」, 『국민일보』 2021년 12월 19일자,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6586104&code=61121111&cp=nv(검색일: 2022.11.02.).

 

21) 「오징어게임 후폭풍?… “딱지치기 하고 뺨 때리면 안 돼요” 공문」, 『오마이뉴스』 2021년 10월 29일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83542(검색일: 2022.11.02.).

 

22) 기사 「“애들이 따라 한다”…각국 학교 오징어게임에 ‘골치’」의 주요 내용은 <오징어 게임> 속 놀이를 모방하다가 폭력성에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각국 학교의 반응이다. 그런데 이 기사 서두에는 “넷플릭스의 한국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유명세도 치르고 있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로써 이 기사는 <오징어 게임> 속 놀이를 모방하는 학생들의 반응이 곧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돌풍에 따른 유명세일 뿐이라는 뉘앙스를 주고 있다; 앞의 글, 『연합뉴스』 2021년 10월 15일자 참조. 

 

23) 『가톨릭평화신문』에 〈오징어 게임〉을 교육적 맥락에서 연결하여 쓴 칼럼은 한 편에 불과했다. 기사 「자녀의 ‘오징어 게임’ 시청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프랑스 교사인 가드너가 가톨릭 온라인 매체인 『알레테이아』(Aleteia)에 기고한 글인데, 『가톨릭평화신문』에서 이 기사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게재하였다; 「자녀의 ‘오징어 게임’ 시청을 막아야 하는 이유」,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1월 10일자, https://news.catholic.or.kr/WZ_NP/section/view.asp?tbcode=SEC03&cseq=2&seq=172982(검색일: 2022.11.02.).

 

24) 「황동혁 감독 “’오징어 게임’ 세계적 흥행, 기쁘고 서글퍼”」, 『아주경제』 2021년 10월 6일자, https://www.ajunews.com/view/20211005134756723(검색일: 2022.11.02.).

 

25) 동성중·고등학교 편, 『동성 100년사』, 2011, 352~353쪽(이하 『동성 100년사』를 인용하는 경우, 저서명과 쪽수만 표기하기로 한다).

 

26) ‘신앙적 인간관’은 특강 마지막 부분에 다음과 같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이런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을 제쳐놓고 겉으로만 겸손하고 교양있는 체하면, 그 사람은, 그 사회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인간’이 근본적 가치관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적 인간관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동성100년사』, 354쪽.

 

27)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에리히 프롬은 그 대중적 인기로 인해 통속적인 사상가로 평가절하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프롬은 현대사회의 위기에 대해 누구보다도 깊이 고뇌했던 사상가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이 처한 체념과 절망이 개인의 본능적 욕망의 좌절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보고, 인간의 내면과 사회구조에 주목하였다. 또한 그는 현대인의 삶이 충만하고 풍요롭기를 희망하며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신뢰도 잃지 않았다. 프롬의 인간에 대한 희망과 애정은 교육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이들에게 그리고 교육에서 희망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박찬국, 「에리히 프롬의 인간관: 실존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 『시대와 철학』 7-2, 1996. 129~162쪽; 박찬국, 「인간주의적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에 대한 보수주의적 입장에서의 일고찰-에리히 프롬의 인간주의적 사회주의 사상을 중심으로」, 『시대와 철학』 11-1, 2000, 110~133쪽; 박찬국,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읽기』, 세창미디어, 2014, 11~17쪽; 이영경, 「고독의 철학」, 『철학연구』 134, 2015, 115~132쪽 참조.

 

28) “일차적인 성향(primäre Potentialität)은 적당한 삶의 조건만 주어진다면 스스로 발달한다. 이는 마치 씨앗이 적절한 습도와 온도 등만 갖추어지면 싹을 틔우는 것과 같다.”; Erich Fromm, Die Seele des Menschen. Ihre Fähigkeit zum Guten und zum Bösen (1964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2, Analytische Charaktertheorie,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p.189.

 

29) 라이너 풍크, 김희상 역, 『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 것들』, 갤리온, 2008, 104쪽.

30) Erich Fromm, Psychoanalyse und Ethik. Bausteine zu einer humanistischen Charakterologie(1947a), op.cit., p.42.

 

31) “성격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거의 자동적이고도 일관되기 일을 처리한다. 성격이 형성되면서 축척된 힘이 신속하고도 단호한 행동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Erich Fromm, Über meinen psychoanalytischen Ansatz (1990d[1969]),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12,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99, p.17; 라이너 풍크, 앞의 책, 107쪽에서 재인용.

 

32) 같은 책, 139~144쪽; Erich Fromm, Psychoanalyse und Ethik. Bausteine zu einer humanistischen Charakterologie (1947a), op.cit., p.59, 64~71 참조.

 

33) 『동성 100년사』, 88쪽.

34) 같은 책, 79쪽.

35) 같은 책, 80쪽.

36) 같은 책, 79쪽.

37) 같은 책.

38) 같은 책, 89쪽.

 

39) “본래 천주교에서 남대문상업학교를 운영하면서도 개신교의 여러 교파와 같이 신자만을 배양하는 일이 없었으며, 또 개신교계와 같이 교과 과목에 교리(敎理)를 넣지 않았다. 다만 교우 학생들을 위하여 종교부를 통해 교리의 연구와 강론, 그리고 미사 참여 등을 행하고, 학교 행사에서 약간의 천주교 예식을 행할 뿐이었다.”; 『동성 100년사』, 95쪽.

 

40) 같은 책, 95쪽.

 

41) 1931년 학교명을 동성(東星)상업학교로 변경했다는 1931년 3월 15일자 《경향잡지》 기사를 보면 학교 교육 지침이 다시 확인된다. “동성은 동편에 있는 별이다. 주 예수 탄생하실 때에 샛별이 동편에 나타나 삼왕(三王)을 주 예수께로 인도하여 숭배케 한 별이로다. 이 동성상업학교(東星商業學校)에 입하여 공부하는 모든 학생도 이 별을 따라 천상 진리와 세간 정리를 다 통달함으로써 구세주를 숭배 공경하기에 이르리로다.”; 『동성 100년사』, 121쪽에서 재인용.

 

42) “박준호 교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우리 한국 사람도 경제적인 기반을 가져야 된다. 그러자면 우리 사회에 나가서 생활해 나갈 떳떳한 직장을 가져야 되니까 학생들은 누구나 착실한 학창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교장 선생의 교육적 집념이 담긴 좌우명이자 곧 동성상업학교의 교훈이 아닐 수 없었다.“; 『동성 100년사』, 125쪽.

 

43) 예를 들어, “1학년 모집 정원은 70명이었는데, 1929년에는 전국에서 무려 1,200명이 지원하였고, 1931년에도 500명이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학교측에서는 지원자가 너무 많아 곤란하니 5년 간의 학비 조달이 가능하고, 공부에 충실할 사람들만 지원해 주기를 교회 정기 간행물을 통해 당부할 정도였다.”고 한다; 『동성 100년사』, 96쪽.

 

44) 같은 책, 98쪽.

 

45) “전국적으로 3개교 밖에 되지 않는 사립 실업 학교 중에서도 남대문상업학교는 단연 생활 교육의 첨단이었다. 일본인 학생이란 한 사람도 없는 민족 교육기관에 실학 정신으로 정예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란 오직 본교 하나뿐이었다. 총 생도수가 1백 69명이고 보면 한학년 당 34명꼴 밖에 안되지만, 당시로서는 전국 최대 규모의 한국인 실업 교육 기관이었고, 모범 교육 기관의 최고임이 스스로 명백하였다.”; 『동성 100년사』, 98쪽.

 

46) 1929년 9월 22일 혜화동 신축 교사 준공 축성식에 관한 『경향잡지』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 학교 대청 강당에 상을 모시고 각 교실과 각방에 성수를 뿌리며 향을 피워 축복함으로써 천주께 봉헌하였으니 바라건대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신 천주도 이 집에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들의 명오 기합을 비추사 거룩한 영신(靈身) 학문과 정리 원칙에 합하는 세속 학문을 아울러 다 잘 가르치고 배우게 하소서.”; 『동성 100년사』, 116쪽에서 재인용.

 

47) “늘 자력에 의한 실력 배양을 교육의 목표로 설정하여 사회의 역군으로서 나라를 건지는 데 실질적인 주인공이 될 것을 강조한 방 교장의 교시(敎示)에 따라 실업계에 진출하여 나중에 실업가로 대성한 동문들이 많음을 본다. 학생들은 교장 선생의 말씀을 재미있게 듣고 가슴 깊이 새겨 둔 끝에 그 때의 감화에 따라 직장 생활에 충실하다가 기반을 잡으면서 손수 업체를 경영하는 사례가 많았다.”; 『동성 100년사』, 99쪽.

 

48) 박준호 선생이 방규환 교장의 후임으로 교장직을 맡았을 때, 일부 학생들이 천주교 재단의 일방적인 인사 조치라고 비난하면서 교회와 친밀한 박 교장의 댁을 찾아가 결정을 번복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박 교장이 해명을 하고 학생들과의 오해를 풀게 되었는데, 그때 학생들이 박 교장 댁을 찾아와 용서를 청한 사건이다; 『동성 100년사』, 103~104쪽 참조.

 

49) 남대문상업학교 새 학제 1회 동문인 김재만의 회고록에 나오는 에피소드이다. “제2외국어인 불어 담임 선생 블란서인 경(慶) 신부님이 지각한 학생에게 화가 나서 하신 말씀 “이놈아! 왜 인제 오십니까?”라고 하여 한동안 화제거리가 되었으니 이는 신부로서 선생님으로 화가 나서 “이놈아!”라고 하였지만 “이놈아!”는 천한 말이므로 사제지간에는 좋은 말을 쓰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므로 금방 “왜 이제 오십니까?”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즘과 같이 언어를 주의하지 않고 쓰는 때에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동성 100년사』, 108쪽.

 

50) 동성인들에게 박준호 교장과 장면 교장은 동성의 자랑이자 교훈인 ‘참되자·부지런하자·책임을 다하자’는 교훈의 모범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장면 교장의 경어체 사용은 인상적이다. 또한 장면 교장은 동성을 거쳐 간 졸업생들에게도 항상 친필로 일일이 편지를 내어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그는 덕행을 실천하는 본보기였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학교를 가정 같은 분위기였다고 회상하고 있다; 『동성 100년사』, 141~142, 151, 153~154쪽.

 

51) 같은 책, 163~164쪽.

52) 같은 책, 161쪽.

 

53) 동성상업학교 당시 학교생활은 공부와 운동을 하는 여가 선용으로 짜여 있었다. 안영록 회고담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 당시 키가 작은 나에게 농구를 하라고 권하신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키가 큰다는 바람에 귀가 솔깃하여 키 작은 동기생들과 열심히 농구를 시작하였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가리지 않고 방과후부터 해가 질 때까지 거의 매일같이 뛰어다니다시피 했다. … 너무 심한 과잉 운동(?) 탓인지 자라라는 키는 자라지 않고 불균형하게 하체만 발달되었으며, 농구 시합에 몇 번 출전했었으나 이겨 본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 당시에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은 아직도 모두들 건강하고 모든 파란 곡절을 넘기면서도 거뜬히 사회의 풍파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동성 100년사』, 126~127쪽.

 

54) 교사들은 면학풍토를 확립하되 자율적 생활 지도를 원칙으로 했다. 특활반도 계속 활성화시켰다; 같은 책, 292~293쪽.

 

55) Erich Fromm, Über meinen psychoanalytischen Ansatz (1990d[1969]), op.cit., p.17; 라이너 풍크, 앞의 책, 108쪽에서 재인용.

 

56) Erich Fromm, Die Furcht vor der Freiheit (1941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1. Analytische Sozialpsychologie,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p.228.

 

57) Ibid., p.379.

 

58) 부르크하르트 비어호프, 「사회적 성격과 교육」, 라이너 풍크, 헬무트 요하흐, 게르트 마이어 엮음, 박규호 역, 『에리히 프롬과 현대성』, 영림카디널, 2003, 123쪽.

 

59) 프롬은 일반적 의미의 사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움직이고 있는 특정의 사회구조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 사회구조는 특정 시대 속에서 고정되어 있으며, 사회는 특별한 구조 안에서만 존재한다. 사회 구성원의 행동은 사회의 양식에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를 따라 의식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결정하는 것이며 만족감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다; Erich Fromm, Wege aus einer kranken Gesellschaft (1955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 4. Gesellschaftstheorie,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pp.59~60.

 

60) Erich Fromm, Die Furcht vor der Freiheit (1941a), op.cit., pp.391~392.

61) Ibid., p.226.

62) Ibid.

 

63) Erich Fromm, Haben und Sein. Die seelischen Grundlagen einer neuen Gesellschaft(1976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2, Analytische Charaktertheorie,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p.364.

 

64) 김태형, 『싸우는 심리학』, 서해문집, 2014, 151쪽.

65) Erich Fromm, Die Furcht vor der Freiheit (1941a), op.cit., p.384.

66) Ibid.

 

67) Erich Fromm, Die Kunst des Liebens (1956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 9. Sozialistischer Humanismus und Humanistische Ethik,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1, p.513.

 

68) “어떤 특정 사회에서 대다수 사람들의 성격이, 즉 사회적 성격이 그 사회에서 개인이 수행해야 하는 객관적인 일에 적응되어 있으면, 사람들의 에너지는 그 사회가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생산력(produktive Kräfte)으로 바뀐다.”; Erich Fromm, Die Furcht vor der Freiheit (1941a), op.cit., p.383. 

 

69) Ibid. p.386.

70) Erich Fromm, Wege aus einer kranken Gesellschaft (1955a), op.cit., p.55.

71) 『동성 100년사』, 82쪽

 

72) 당시 남대문상업학교 학생들은 가두 시위에 함께 합류하려고 했으나 교문이 봉쇄되는 바람에 결국 교실과 교정에서 만세를 연창할 수밖에 없었다; 『동성 100년사』, 118~119쪽 참조.

 

73) 같은 책, 233쪽.

74) 인용한 글은 본교 국어 교사이자 시인이었던 황금찬 선생의 시 「성난 사자(獅子)들」이다; 같은 책, 241쪽.

75) 35회 안건혁 동문의 「4·19의 증언」에는 동성인의 공동체성 회복의 경험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같은 책, 233~240쪽. 

76) 같은 책, 242쪽.

 

77) 전창기 교장은 교직원들을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학교 운영에 참여하도록 보장하였다. 교직원들의 후생(厚生)과 경조(慶弔) 문제에 상호 친목을 도모하고자 상조회가 조직되었다. 학생들에게도 학생회를 구성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의 자치를 독려했다. 동성고등학교 주최로 열린 ‘4월 학생 의거 기념 문학의 밤’은 동성인의 사회적 성격의 확산과 공동체성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책, 245~246쪽 참조.

 

78) 강정석, 「도덕주의와 생존주의의 늪: 〈오징어 게임〉에 대한 윤리적 비판〉」, 『문화과학』 108, 2021, 243쪽.

79) 같은 글, 256쪽.

 

80) 라이너 풍크, 앞의 책, 182쪽; 네크로필리에 개념에 대하여 Erich Fromm, Anatomie der menschlichen Destruktivität (1973a), Hrsg. von Rainer Funk, Gesamtausgabe Bd.7. Agressionstheorie, Stuttgart: Deutsche Verlags-Anstalt, 1980, pp.295~334 참조.

 

81) 에리히 프롬, 홍순권 역, 《휴머니즘의 재발견》, 한벗, 1983, 91쪽.

82) 같은 책, 92쪽.

 

83) 김태형, 「오징어게임의 심리학」, 『다른백년』 2021년 10월 14일자, http://thetomorrow.kr/archives/14641(검색일: 2022.11.10.).

 

84) 같은 글.

85) 에리히 프롬, 홍순권 역, 앞의 책, 92쪽.

86) 프란치스코 교황, 박준양, 조재선 역, 『삶을 살리는 교육』,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5, 13~14쪽.

87) 같은 책, 14쪽.

88) 같은 책.

89) 같은 책, 14~15쪽.

90) Erich Fromm, Die Furcht vor der Freiheit (1941a), op.cit., p.324.

91) 라이너 풍크, 앞의 책, 159쪽에서 재인용.

92) 같은 책, 158~159쪽.

93) Erich Fromm, Die Seele des Menschen. Ihre Fähigkeit zum Guten und zum Bösen (1964a), op.cit., p.186.

94) Erich Fromm, Haben und Sein. Die seelischen Grundlagen einer neuen Gesellschaft (1976a), op.cit., p.333.

 

95) 헬무트 베어, 「학교발전을 위한 생명애호적 대안」, 라이너 풍크, 헬무트 요하흐, 게르트 마이어 엮음, 박규호 역, 앞의 책, 150쪽.

 

96) 사회적 학습은 사회적 성격과 관련이 있다. 사회적 학습은 “인간이 주어진 사회적 조건들 속에서 방향을 잡아나가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삶의 의미를 찾고, 사랑하고 노동하며,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태도와 행동방식을 제공해 준다.”; 부르크하르트 비어호프, 앞의 글, 122쪽.

 

97) 헬무트 베어, 앞의 글, 161쪽.

98) 같은 글, 64쪽.

 

99) 2000년 4월 동성중학교 김제선 선생이 간 이식 수술로 수혈이 시급하다는 소식이 학교에 전해지자 동성의 교사들과 학생들이 헌혈에 나섰고, 모두 283매의 헌혈증서를 모아 전달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김제선 선생은 교단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김수한 추기경은 학생들에게 극장 관람권 2,000매를 보내왔고, KBS 2TV는 <병원24>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이야기를 방영했다. 이후 2004년 7월 14일에 동성고등학교 54회 졸업생인 선배가 혈액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으며, 수술을 할 경우 많은 양의 O형 혈액을 공급해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학생들이 여의도 성모 병원으로 달려가 헌혈했다; 『동성 100년사』, 362~363, 394쪽 참조.

 

100) 같은 책, 363쪽.

 

101) 1977년부터 박순재 교장 신부와 김운회, 류병일 두 지도 신부의 노력으로 종교 교도부 활동의 기본적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1980년대 당시 학원 복음화 관련 행사로는 성지순례, 성모의 밤, 종교 음악회, 봉사 활동, 피정, 부활절 휴가 등이 있었다. 종교 교도부 특활반에는 레지오 마리애, 셀(Cell), 미리내, 성경연구반 등이 있었다. 이후 영성 교육 및 인성교육으로 점차 확대해 나갔다; 같은 책, 298~303쪽 참조.

 

102) 예를 들어 2014년도 ‘성모의 밤’ 행사에서 1부 말씀의 전례에 이어 2부 성모님께 드리는 봉헌의 시간에 ’세월호 희생자들과 동성학교 가족들을 위해’라는 큰 지향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부모님과 선생님을 위한 학생의 편지글, 학생 레지오의 액션송, 모든 학생들을 위한 선생님의 기도, 동성학교 공동체를 위한 어머님의 기도, 어머니 기도모임의 특송, 교사 성가대의 성가 봉헌, 가톨릭 성가대의 특송, 계성여고 KYCS 학생들의 액션송 등으로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이로써 동성고등학교의 ‘성모의 밤’은 종교적 활동을 통해 동성의 모든 구성원들(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이 함께 공동체를 체험하고 구성원들에게 당대의 사회적 성격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동성고등학교 홈페이지 https://www.dongsung.hs.kr/xe2/activity/activity.php(검색일: 2022.11.09.) 참조.

 

103) 프란치스코 교황, 앞의 책, 40쪽.

104) 같은 책, 40~43쪽.

105) 같은 책, 112쪽.

106) 같은 책, 112~113쪽.

107) 같은 책, 113쪽.

108) 같은 책, 104쪽.

109) 같은 책.

110) 같은 책, 103쪽.

111) 같은 책, 104쪽.

112) 같은 책, 135쪽.

113) 같은 책, 137쪽.

114) 같은 책, 166쪽.

115) 같은 책, 166쪽.

116) E. H. 카, 앞의 책, 210~211쪽.

117) 프란치스코 교황, 앞의 책, 14쪽.

118) 같은 책, 86쪽.

119) 같은 책, 95쪽.

 

[교회사 연구 제61집, 2022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김남희(가톨릭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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