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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일본 나가사키 대교구 교회 문화유산 순례 (1) 고난의 역사, 영광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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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2-11-27 ㅣ No.1072

[현장 취재] 고난의 역사, 영광의 유산

일본 나가사키 대교구 교회 문화유산 순례 (1)



- 노쿠비 성당.

 

 

일본 가톨릭교회 역사는 선교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1506-1552년)가 1549년 8월 15일 규슈 남쪽 가고시마에 상륙하면서 시작된다(경향잡지 2011년 1월호 106쪽 이하 참조). 올해로 선교 464년, 일본에서 ‘기도의 섬’이라 부르는 고토(五島) 열도에는 아름다운 성당들이 점점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는 이 성당들을 소개하고자 일본 나가사키 순례센터가 마련한 4박 5일(9월 18-22일) 여정에 함께했다.


신앙의 해를 시작하며 평소 궁금하던 이웃 나라 일본교회의 신앙 역사와 유산을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지 1시간 10분,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 밤 11시 30분 하카타 항구에서 노모상선이 운영하는 여객선 타이코마루 호를 탔다.

밤배로 6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고토 열도 북쪽 신가미고토의 아오카타 항구, 전통 여관에 들러 아침을 먹고 이리구치 히토시 씨(나가사키 순례센터 사무국장)의 안내로 순례를 시작했다.

일본은 인구 1억 2,705만 6,000명 가운데 가톨릭 신자가 44만 8,000명으로 신자비율이 0.35%인데, 나가사키 대교구는 4.35%로 일본 16개 교구 가운데 가장 높다. 신자 수는 6만 3,000명으로 도쿄 대교구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일본 가톨릭중앙협의회 2010년 통계).

 

- 에부쿠로 성당.

 

 

특히 14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고토 열도에는 번창, 탄압, 잠복, 부흥으로 이어져 온 일본교회의 역사를 증언하듯 나가사키현 내 138개 성당 가운데 40% 가량인 53개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고토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563년 선교사가 건너와 영주와 그의 가족을 치료해 주면서부터다. 영주가 ‘키리시탄 (그리스도 신자)’이 되었고, 1601년에는 2,000여 명의 신자가 있었지만 16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 바쿠후(막부)가 전국에 금교령을 내리자 신자들은 숨어들었다(이들을 잠복 그리스도인, ‘카쿠레 키리시탄’이라 부른다.).

이후 1797년 고토의 섬들을 개간하려고 이주자를 모집하자 바다 건너 소토메 지역에 있던 카쿠레 키리시탄 3,000여 명이 불교나 신도 교인으로 가장하여 들어온다.

1864년 나가사키에 외국인을 위한 오우라 천주당이 건립되자 이듬해 카쿠레 키리시탄들이 신부를 찾아와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발견’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아직 금교령이 철폐되지 않은 때라 또 한 차례 박해가 일어나 전 열도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1873년, 국제적인 여론에 몰려 메이지 정부는 마침내 금교령 팻말을 철거하게 된다. 무려 250여 년을 숨죽여 살아온 신자들의 기쁨이 어떠했을까.


- 에부쿠로 성당 종탑

 

 

섬의 산중턱 굽이굽이 점점이 박힌 성당

해변에 사는 토박이들을 피해 척박한 산 속에서 개간을 하며 살아가던 신자들은 산기슭 곳곳에 정성을 다해 기도의 집을 지었다. 그래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섬의 산중턱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길마다 작은 성당 (일본에서는 ‘교회당, 천주당’으로 표기한다. 이하 ‘성당’으로 표기.)이 서 있다. 그 길목에서 노나카 마리아 씨(62세)가 오병이어 기적의 소년처럼 후쿠레 만두 다섯 개를 들고 서 있다가 건네준다. 성모승천대축일에 성찬례를 하듯 나누어 먹던 빵이라니 감격스럽다.

한참을 달려 오지카의 한 해변에서 배를 타고 이른 곳은 노자키 섬. 지금은 무인도가 되어 사슴들이 사는 이곳에 일본 교회건축의 제1인자라는 테츠가와 요스케가 1882년에 설계 시공한 노쿠비 성당이 우뚝 솟아있다.

고토의 성당들이 그러하듯 1873년 금교령이 철폐된 기쁨에 신자들이 하루 한 끼를 굶고 항아리에 돈을 모아 지은 성당이다. 섬의 주민들을 다 합쳐도 몇 백 명이 안 되던 때라니 놀랍다.

 

섬에서 나와, 에부쿠로 성당을 찾았다. 지금도 사용하는 성당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이다. 바다를 향한 종탑(오른쪽 자료사진)이 인상적인 이 목조 성당은 6년 전 불이나 타다 남은 재료를 살려 원형을 복원했는데 작지만 무척 아름답다.

미사 30분 전과 시작 때 ‘호라가이’라고 하는 소라고동으로 만든 악기를 불어 알린다고 한다. 다시 차를 달려 이른 곳은 1910년에 세운 아오사가우라 성당, 벽돌 구조 성당의 기점이 된 성당이다.

아리카와에 이르러 일본 3대 우동의 하나라는 고토 우동으로 점심을 먹고, 카시라가 섬으로 향했다. 조류가 빨라 접근하기 어려워 무인도이던 이곳에 신자들이 피신해 살면서 천주교가 융성했던 곳이다.

몇 백 년이 가도 무너지지 않을 기도의집을 만들겠다는 염원으로 신자들이 맞은편 섬에서 돌을 잘라 와 만든 카시라가시마 성당이 보인다. 각진 나무 위에다 무릎을 꿇게 하고 무거운 돌로 짓누르는 고문도구가 박해시대를 짐작하게 한다.





섬과 섬들은 이제는 다리로 이어져 있다. 차를 타고 와카마츠 섬으로 가서 해상택시를 타고 키리시탄 동굴에 내렸다. 고토 박해를 피해 세 가족이 숨어 지내다 잡혀 순교한 이 해안 동굴 입구에 커다란 그리스도상과 십자가가 서있다.

다시 해상택시로 달려 다다른 해안가에 별장 같은 하얀 목조 건물이 보인다. 1918년에 세운 에가미 성당이다. 손으로 나뭇결을 그린 기둥과 하얀 꽃을 그린 유리창이 소박하다. 주민 전체가 신자였는데 지금은 3가구만 남았다.

다시 이동한 해안가, 마치 일본 전통가옥 같은 고색창연한 구 고린 성당이 보인다. 1881년 건립한 하마와키 성당을 해체하여 이곳에 옮겨와 지었다고 한다. 50세대가 살던 이곳도 이젠 형제 두 가족만 남아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고풍스러운 제대가 남아있고 초기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100년 이상 된 성당들이 많아 놀랍다.

 

차로, 배로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고, (설명을)듣고, (풍광을)보고,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첫날 일정은 해가 저물어서야 끝났다. 후쿠에 항에 도착하여 성당이 보이는 호텔에 짐을 풀었다. 다다미 여섯 장을 깐 육첩방,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에 나오는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시구가 떠오른다.

정종 몇 잔에 몸이 풀려 단잠에 빠졌다가 모닝콜 소리에 일어나 새벽미사에 갔다. 노인들과 인근 가톨릭 병원의 수녀들이 많은데, 미사 순서는 같으나 ‘카미(神)’라는 말밖에 들리지 않으니 답답하다.


“산타 마리아 고조 와 도코?”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친 다음 배를 타고9시 30분 나가사키에 도착했다. 항구 근처 외국인 거류지역에 1864년 프치잔 신부가 세운 오우라 성당이 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입장료를 받는다. 한국에서 병인박해가 일어나기 1년 전인 1865년, 250여 년을 숨어 살던 신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신부에게 “산타 마리아 고조 와 도코?(성모 마리아상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묻던 ‘신자발견’ 사건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1563년 세례를 받고 일본 최초의 키리시탄 영주가 된 오무라 스미타다가 1580년 나가사키를 예수회에 기증, ‘작은 로마’라고 불리며 번성했던 이곳에 서보니, 1587년 선교사 추방, 1597년 26성인 순교, 1614년 전국 금교령, 1644년 최후의 신부 순교 후 불교 신자 행세를 하며 250여 년을 잠복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이어온 카쿠레 키리시탄들, 일본교회의 고난의 역사가 한순간 스쳐간다.

세계문화유산추진실 요시로 오자키 실장이 준비한 자료를 나눠주며 설명한다. 신자발견 후 세워진 성당들은 건축사적으로가 아니라 이것을 지켜온 신자들의 신앙에 초점을 맞추어 인류의 자산으로 영구 보존하려 하는데 민간단체들의 활약이 크단다.

문화관광물산국장 켄이치 사카토시 씨는 “한국과 일본의 가톨릭교회가 힘을 합쳐 세계유산을 함께 추진하기를 바란다. 한일 간 성지순례, 특히 가톨릭 학교 자매결연 등 청소년 교류가 활발해졌으면 좋겠다.”며 눈을 빛낸다.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을 대접받고 사세보로 이동했다. 사세보는 해군기지가 있는 군항도시다. 신자들이 철도와 광산 노동자로 일을 하면서 철로 근처에 성당을 세웠다는데, 빌딩 사이로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대교를 건너 이른 곳은 히라도 섬, 신자들이 조개껍질을 모아 구워 가루로 만든 석회로 벽돌을 쌓은 타비라 성당이 있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이와무라 도모히코 신부가 나와 “한국교회의 활발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인사를 한다.

이름만큼 아름다운 이키츠키(生月) 섬으로 건너가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히라도의 영주 마츠우라가 무역을 하고 싶어 본인은 세례를 안 받고 중신들을 영세하게 했는데, 세례 받은 중신 코테다가 지배하던 곳이다. 현재 주민 6,000명 가운데 300명이 가톨릭 신자이고, 그 밖에 가톨릭교회로 돌아오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조장 집에 모여 기도하고 행사를 하는 카쿠레 키리시탄이 500명 있다고 한다.

중신 코테다의 후임으로 가스팔 사마(님)라고 불리던 신자가 처형된 쿠로세의 쯔지 순교지에는 밑둥만 남은 고목 곁에, 1992년에 세운 대형 십자가 기념비가 등대처럼 우뚝 서있다. 가스팔 사마의 아들 토마스 니시가 도미니코회 신부가 되어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하여 시성되었으니, 신앙의 부전자전을 실감한다.

일본은 26성인(1862년 시성)외에 16명의 성인(1987년 시성)이 더 있어 성인이 모두 42명, 복자는 205명(1867년 시복, 조선인 15명 포함)과 188명(2008년 시복)을 합쳐 393명이 있다.

시성기념비가 있는 야마다 성당에 들렀다가 한국의 올레길 같은 규슈 자연도로를 따라가 이키츠키 해안 등대에 올라 해가 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내려와 가까운 전통 여관에 들었다.

일본 전통 옷인 유카타[浴衣]차림으로 이 지역 특산물이라는 고래고기를 곁들인 저녁을 먹고, 쿠로시마와 소토메, 운젠 등지를 둘러볼 남은 일정을 생각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경향잡지, 2012년 11월호, 글 · 사진 배봉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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