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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진정 위로를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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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1-05-10 ㅣ No.1039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72) 진정 위로를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주일 미사 집전을 몇 시간 앞두고 사제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50대 초반의 미카엘과 아녜스 부부(가칭)를 만났다. 세 아이를 두었지만 첫째 딸이 이유를 알 수 없이 사고로 하느님 품으로 먼저 떠난 가정이었다. 벌써 10여 년이 지났지만 가족들은 모두 그때의 깊은 슬픔과 절망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큰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더 사랑해주지 못한 아쉬움,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애절한 그리움으로 부부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견디어갔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했던가? 큰딸이 세상을 떠나고 몇 년 후 또 다른 불행이 찾아왔다. 아녜스가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자식을 먼저 자신의 품속에 묻는 부모의 고통은 아마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 것이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그처럼 빨리 암이 생성되고 전이되었는지 의사도 놀랄 지경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고통을 허락하신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어 신앙을 저버릴 수도 있고, 심지어 자신의 삶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카엘과 아녜스는 이 모든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하루하루를 버텨오고 있었다. 신앙과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삶의 끈을 이어갔던 아녜스였지만 최근 항암치료가 더 이상 효과가 없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죽음을 수용해야 할 시간이 점차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부부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이 순간을 어떻게 견디어 나가야 하는지 사제의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아녜스는 하느님께서 왜 이런 시련을 자신에게 주시는지 계속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시련의 이유를 알 수 없었고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조차 알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시련의 이유를 알 수 있다 하더라도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녜스는 무의식적으로 시련과 고통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었다. 비록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의미의 발견은 고통을 더 잘 이겨낼 수 있는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처음 몇 년간 큰딸의 죽음은 자신과 같이 못난 엄마가 남은 두 자녀를 더 잘 양육하라는 메시지처럼 생각되었다. 세 자녀를 올바로 양육할 능력이 없는 자신이었기에 아마 하느님은 첫째 아이를 데려가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 남은 자녀들을 더 잘 길러야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에 대한 자책과 죄의식이 커졌다. 하느님에 대한 미움과 원망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영혼의 상태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해 보였다.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삶의 의지와 희망이 점차로 꺼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의 이해와 죽음의 수용은 삶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인생의 과제처럼 느껴진다. 아녜스 자매도 자신의 삶 안에서 이 과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마지막 삶의 여정에서 남편인 미카엘과 두 자녀는 너무도 헌신적으로 아내요 엄마인 아녜스를 돌보고 있었다. 이처럼 가족들의 사랑은 삶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던 소중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가족과의 사랑이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오기에 삶에 대한 미련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미카엘과 아녜스 부부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이야기를 몇 시간에 걸쳐 들려주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관심 있게 들어 줄 사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대화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사제의 강복을 받는 부부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현존의 신비는 더 이상 이 부부만의 체험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하느님께 더 큰 사랑을 받고 있음을 체험한 당사자는 바로 사제인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5월 9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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