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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판단 멈추고 규율대로 운영해야(반동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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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6-12 ㅣ No.815

[레지오와 마음읽기] 판단 멈추고 규율대로 운영해야(반동형성)

 

 

명망 높은 의사인 지킬박사는 선(善)을 지향하는 삶이 힘들어 내면의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는 약품을 연구한다. 제조는 성공하였으나 그는 의도치 않게 악의 인격만으로 만들어진 존재, 즉 ‘하이드’로 변하게 된다. 낮에는 점잖고 학식 있는 지킬 박사로 살다가 밤이 되면 약물을 마시고 하이드로 변해 온갖 악행으로 억압된 스트레스를 분출한다.

 

하지만 하이드로 변신하는 횟수가 잦을수록 악의 힘이 커져 약을 먹지 않아도 지킬박사는 하이드로 변하게 되고, 마침내 지킬박사로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하이드의 악행으로 경찰에 쫒기는 신세가 된 지킬박사는 결국 하이드의 몸으로 경찰에 체포되려는 순간 자살한다.

 

위 작품 로버트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이중인격을 말할 때 거론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인간의 근원적 부조리를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는 지킬박사의 유서에 쓰인 다음과 같은 말로 잘 드러난다.

 

“인간은 다면적이고 부조리하며 서로 독립적인 인자들이 모여 이루어진 조직에 불과하다는 가설을 감히 내놓고 싶네. -중략- 조화될 수 없는 이 인자들이 한 덩어리로 묶여 있는 게… 이 양극의 쌍둥이가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게 인류의 비극인거야.”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며 살기 어렵다. 따라서 삶에서의 욕구 좌절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런데 이때 생기는 욕구와 금기 사이의 갈등은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며 불안을 야기한다. 이런 불안과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부분적으로라도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마음이 쓰는 방법들이 있는데 이를 ‘방어기제’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방어기제란 ‘자아가 내외적(內外的) 자극과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환경을 왜곡하거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게 되는 마음의 작용’이다.

 

진실 되지 못하다는 면에서 방어기제가 부정적으로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오히려 방어기제 덕분에 마음은 갈등에서 쉽게 벗어나 평화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방어기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우리는 매일 다양한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다만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격적 특성이 결정되고 그 중 일부는 신경증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그러니 방어기제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가 마음속 욕구와 반대인 방어기제 ‘반동형성’

 

‘반동형성(反動形成, Reaction Formation)’이라는 방어기제가 있다. 이는 단어 뜻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는 태도나 언행이 마음속의 욕구와는 반대인 경우이다. 즉 무의식의 밑바닥에 흐르는 생각, 소원, 충동이 너무 부도덕하거나 받아들이기 두려운 것일 때, 이와 정반대의 행동을 함으로써 의식으로 떠오르는 것을 막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부모를 극진히 모시는 자식의 경우, 그 무의식에는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기 위해 부모가 빨리 죽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을 수 있고, 어린 아이가 동생을 사랑으로 돌보는 경우 또한 동생에 대한 시기심으로 공격적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반동형성은 자신이 용납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충동들을 반대되는 행동으로 막아내는 것이다.

 

반동형성으로 인한 행동과 도덕적 추구의 행동은 구별이 어렵긴 하지만 대체로 반동형성은 그 행동이 지나치다는데 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에 어울리지 않고 경직되어 있다. 그러니 배려나 친절, 헌신 등도 그것이 지나칠 때는 마음 속 잔인함을 숨기거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이렇게 반동형성으로 숨겨진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충동적 형태로 유지되어 강박적 행동을 하게 만들고 권력을 잡거나 힘이 생기면 드러나게 된다.

 

S자매는 생각지도 않은 임신으로 결혼하여 학생부부가 되면서 시댁 종교를 따라 천주교에 입교했다. 그녀는 신혼 때부터 가정 경제를 책임지며 고생하였지만, 남편은 아내의 고생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즐거움만 쫓아다녔다. 남편은 졸업 후 직장을 가지고도 계속 가정을 돌보지 않았지만, 그녀는 남편에게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자연히 그녀의 가정 사정을 아는 자매들은 놀라워하며 그녀보고 천사라고 하였고 그것이 그녀에게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열심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결혼 후 20년이 지나도록 남편은 변함이 없었고, 본인 또한 본당의 이 단체 저 단체를 전전하게 되면서 대인관계로 몹시 힘들게 되자 신앙의 위기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독서모임에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보게 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말한다. “저는 남편이 십자가 같았지만 오히려 남편 때문에 제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게 되었다고 여겨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에 대한 제 진짜 감정은 미움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무책임하고 배려 없고 이기적인 사람을 고마워했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는데 그만큼 제 감정을 제대로 보지 못한 거지요. 저는 남편을 미워하는 것은 죄라 생각했고 거기다 제가 천사처럼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그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제 감정을 솔직하게 보고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있고, 진심으로 남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행동을 하든 그 단원에 대한 솔직한 나의 감정 살펴야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결석이 잦은 단원, 주회시간에 옆 사람과 이야기하며 분위기를 흩트리는 단원, 성당청소나 활동에는 자주 빠지면서 식사나 모임 자리에는 꼭 참석하는 단원, 활동 배당을 하면 여러 가지 이유가 많고 결국 기도만 보고하는 단원, 단원이 적은 현실을 이용이라도 하듯 조금이라도 불만이 생기면 탈단하겠다는 단원 등, 이런 단원들을 보면 나는 어떤 감정이 들고 또 그런 단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혹시 그들을 단죄하고 싶은 마음에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는가? 아니면 사랑으로 보듬으면 변할 것이라 생각하며 하염없이 감싸주고 잘한다고 칭찬만 하고 있는가? 어떤 행동을 하든 그 단원에 대한 솔직한 나의 감정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 감정과 행동은 단원에 대한 나의 판단을 기초로 한 반동형성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누가 어떤 죄를 지을 경우라도 하느님의 종은 이 죄를 보고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흥분하거나 분개하면 그 죄를 (판단할 하느님의 권한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단원들에 대한 판단은 멈추고 규율대로 운영하면 된다. 사실 레지오는 규율대로만 운영된다면 단원들의 부족함이 개선될 수 있는 조직이지 않는가! 또한 여기에 우리들의 의무인 기도는 큰 힘이 될 수 있다. 교본에 ‘기도는 모든 본능과 행위를 초자연적으로 승화시키는 믿음을 얻게’(교본 225쪽)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판단하거나 비평하는 것은 레지오 단원의 역할이 아니다.’(교본 449쪽)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6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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