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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성 나 베드로 모방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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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0 ㅣ No.81

성 나 베드로 모방(Maubant) 신부(1804-1839)

 

 

한국명은 나백다록(羅伯多祿). 서양인으로서 최초로 조선에 입국하여 순교한 신부. 그는 1836년 1월 입국하여 1839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까지 3년 9개월 간 헌신적인 포교활동을 폈으며 특히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된 김대건과 최양업, 최방제 등 세 소년을 뽑아 마카오에 유학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프랑스 베시에서 태어난 나(모방) 신부는 1831년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가 되어 그 이듬해 동양에 진출, 중국을 거쳐 1836년 1월 의주의 변문을 통해 조선 입국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에서 정하상의 집에 머물며 경기 충청 등 지방까지 순회, 전교하였다. 또한 그는 이 땅에 들어오자 곧 전교회의 방침에 따라 한국인 성직자 양성에 마음을 두고 1836년 2월에 최양업을, 3월에는 최방제를, 7월에는 김대건을 서울로 불러 이들 세 소년에게 직접 라틴어를 가르치고 장차 성직자가 되는 데 필요한 덕행을 쌓게 하던 중 때마침 귀국하는 중국인 신부 유방제와 함께 이들을 비밀리에 마카오로 유학시켰다.

 

그후 나 신부는 이들 세 소년을 전송한 교우들과 만나 1837년 1월 무사히 서울에 들어온 정(샤스탕) 신부와 함께 손을 나눠 각 도의 흩어진 교우촌을 찾아 밤낮으로 모든 고난을 이겨가며 전교에 힘쓴 결과 입국 당시 불과 4천 명이었던 신자수는 제 2대 교구장 범 주교가 입국한 1837년 말에는 갑절이 넘는 9천 명에 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1839년 기해대박해가 일어나고 서양인 성직자가 3명이나 입국한 사실이 점차 소문으로 퍼져 당국에 알려지게 되자 마침내 순교의 날이 닥쳐온다. 범 주교는 박해가 일어나 신변이 위험하게 되자 처음에는 자신만이 자수하고 두 신부(나 신부, 정 신부)에게는 중국으로 피신할 것을 권고했으나 형편이 그렇게 못되었고 결국은 범 주교에 이어 두 신부도 자진하여 포졸에게 몸을 맡겨 관가에 자수하였다. 그는 1839년 9월, 홍주에서 정 신부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으며 모진 형벌을 받은 끝에 범 주교, 정 신부와 함께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는 35세, 한국에 입국한 지 3년 9개월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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