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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건축칼럼: 성당은 빛의 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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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8-14 ㅣ No.874

[건축칼럼] 성당은 ‘빛의 성작’

 

 

로마의 산타 코스탄자 성당(340~345년)

 

 

성합(聖盒)과 성작(聖爵)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담는 거룩한 그릇입니다. 성혈을 받아 모시는 그릇인 성작은 컵, 마디, 받침대 등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컵은 포도주를 담습니다. 받침대는 성작의 중심을 잡고 서 있으며 마디는 컵과 받침대를 연결합니다. 이때 아래의 오목한 부분은 땅이고, 그 안에 빛을 가득 채우는 빈 부분은 하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작을 빛을 받는 돌로 만들었다고 해봅시다. 그리고 이를 점점 크게 확대하여 집이 되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러면 돌로 만든 이 거대한 그릇은 성혈을 모시는 성작을 담고, 그것이 놓인 제대도 담으며, 그 앞에 무릎 꿇고 예배하는 하느님 백성도 담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이 그릇은 위에서 내려오는 빛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렇다면 돌로 만든 이 성작은 빛을 향해 하늘로 들어 올리는 거대한 그릇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성당입니다. 성당은 그야말로 거룩하게 빛나는 또 다른 ‘빛의 성작’입니다.

 

성당을 ‘빛의 성작(chalice of light)’이라고 말한 사람은 독일을 대표하는 교회 건축가 루돌프 슈바르츠(Rudolf Schwarz, 1897~1961)였습니다. 제대를 둘러싸고 서 있는 백성은 영원을 향해 제사를 올립니다. 그러면 땅은 제대를 통해서 빛을 향해 올라가고, 열린 하늘은 말씀이 되어 제대 위로 내려와 사람들 한가운데 머무십니다. 그는 이렇게 하여 빛을 받는 성작처럼 성당의 모든 구조물도 빛을 받고 있고, 성작의 형태는 그것을 담고 있는 성당 건물 전체에 스며 들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그는 성당을 ‘빛의 성작’이라 불렀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성당 건축가였습니다.

 

성당은 성작처럼 금이나 은과 같은 귀한 재료가 아니라, 벽돌, 돌, 콘크리트, 나무, 회반죽과 같은 어두운 재료로 지어집니다. 그렇지만 성당은 바닥과 벽과 지붕으로 둘러싸인 단순한 집이 결코 아닙니다. 성당은 그리스도의 성혈을 안고 있는 거대한 성작, 거룩한 빛으로 가득 차는 거대한 ‘빛의 성작’입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셔서 성당에 들어간 우리는 결국 거대한 ‘빛의 성작’ 안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의 산타 코스탄자(Santa Costanza) 성당은 초기 그리스도교의 가장 뛰어난 건축물의 하나입니다. 원형 구조물이 높이 올라가고 그 위로는 둥근 드럼이, 또 그 위에는 돔이 올라가 있습니다. 드럼에는 12개의 창이 뚫려 있는데 이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옵니다. 이 빛은 그 밑에 있는 제대와 그것을 둘러싸며 모인 하느님 백성을 포괄하며 공간 전체를 조용히 감싸줍니다. 꽃처럼 피어있는 저 아름다운 원형의 성당 공간은 그야말로 성혈을 담고 있는 성작을 닮은 거대한 ‘빛의 성작’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빛의 성작’인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계시는가요? ‘빛의 성작’ 안에 담겨 있다는 것만으로 이 땅의 모든 하느님 백성은 참 행복한 존재들입니다.

 

[2022년 8월 14일(다해) 연중 제20주일 서울주보 6면,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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