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르실료
가톨릭운동 단체: 꾸르실료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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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가톨릭운동 단체를 전망한다] (2) 크리스찬 생활의 꾸르실료 운동 세상 복음화 이끄는 ’회심의 여정’
1. 꾸르실료 한국 도입 30돌을 맞아 1997년 열린 전국 울뜨레야에 참가한 꾸르실리스따들. 2. 1967년 서울 성수동성당에서 첫 꾸르실료를 가진 한국교회 첫 꾸르실리스따들.
3년전 3박4일간 이뤄지는 꾸르실료 교육에 참가했던 최 아무개(스테파노, 46)씨. 교육을 마치고 나오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한 그는 자신의 삶을 성화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참된 꾸르실리스따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최씨는 "꾸르실료가 아련한 추억처럼 여겨진다"고 고백한다. "꾸르실료 교육을 받고 나올 때만 해도 복음의 사도가 된 것처럼 열정에 들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손으로 퍼올린 물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꾸르실료 정신과 열정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 나가더라구요."
1967년 한국에 처음으로 꾸르실료가 도입된 이래 지난 36년간 한국 교회는 13만여명에 달하는 꾸르실리스따를 배출했지만 이 중에는 최씨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
이에 대해 꾸르실료 운동 관계자들은 "꾸르실료가 3박4일간의 단기적 교육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꾸르실리스따들이 꾸르실료 정신을 생활속에서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후속 프로그램이 부족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다.
한국 꾸르실료는 지난 수십년간 각 본당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지도자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해왔다. 그간 배출된 꾸르실리스따들은 각 본당과 단체에서 다양한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 본당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복음화하는 데 헌신적으로 참여했다. 실제로 지난 수십년간 한국 꾸르실료는 한국교회 성장과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고 수많은 꾸르실리스따들은 그 주역들이었다.
하지만 꾸르실료 본연의 목적에 비춰볼 때, 꾸르실료 운동이 이제 ’운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상을 복음화하는 역동적인 크리스찬 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꾸르실료 운동의 본래 목적은 "회심을 통하여 하느님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인의 기본을 살며 핵심적 그룹을 형성하여 주변 환경을 복음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꾸르실료 이전, 즉 꾸르실료 교육 참가자 선발과정에서부터 3박4일간의 꾸르실료 교육, 꾸리실료 이후 꾸르실리스따들의 그룹재회(팀회합) 활성화 등 3박자가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꾸르실료 운동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 중에서도 그룹재회(팀회합) 활성화는 꾸르실료 운동의 본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손바닥에 담은 꾸르실료 영성의 물이 새지 않기 위해서’는 각 본당과 직장 등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꾸르실리스따들이 소그룹별로 매주 한번씩 모여 내적 성화를 재다짐하고 복음화 사도로 거듭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대교구 꾸르실료가 지난해부터 그룹재회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각 지역과 본당별로 그룹재회 활성화를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와 함께 꾸르실료 교육 대상자 선발에서부터 획기적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본당에서 꾸르실료 교육 대상자를 선발할 때는 교육 후 본당의 봉사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본당의 제반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신자들이 우선적 교육 대상이 됐다.
그렇다 보니 꾸르실료 교육 이후 꾸르실리스따들이 서로 모여 자신의 생활을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꾸르실료 정신으로 재무장하도록 하는 그룹재회가 어려울수 밖에 없었다. 이들 대부분이 본당에서 사목위원 또는 반구역장 등을 맡은 이들로 적어도 1~2개 이상 다른 신심사도직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탓에 꾸르실료 이후 재회합 자체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꾸르실료 교육 대상자의 폭을 넓혀 단지 본당에서만 아니라 직장 등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복음의 사도로서 투신할 수 있는 신자들에게도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중장년층(남자 35~60세, 여자 35~55세)에 한정되어 온 꾸르실료 운동을 계층별, 연령별로 확대 운영하는 작업도 그 한 가지 방안이다. 한국 문화적 특성상, 같은 연령대나 사회적 배경과 상황이 같지 않으면 내적 문제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점을 고려해 중장년층뿐 아니라 청소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별 계층별로 꾸르실료 교육에 참가하고 정신을 배워 활용할 수 있도록 운동의 방향을 선회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20여년전부터 청년 꾸르실료를 실시한 대구대교구에 이어 서울대교구 꾸르실료가 2000년부터 청년 꾸르실료를 독자적으로 신설, 매년 남녀 각 한차례씩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꾸르실리스따 부모를 둔 한 대학생의 말이 화두처럼 남는다.
"꾸르실료 교육 후 변화된 삶을 사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꾸르실료 교육을 받고 싶지만 그럴 기회가 없어 아쉽습니다. 좋은 정신과 목적을 살려 어느 계층, 어느 연령층이라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보편화되고 확산되면 좋겠습니다."
스페인에서 첫 꾸르실료가 청년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점을 잊지 말고, 꾸르실료 운동을 활성화하고 확산하기 위해 청년, 청소년층은 물론 노인들까지 포괄하는 운동으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꾸르실료란?
꾸르실료(Cursillo)란 ’작은 여정’을 뜻하는 스페인어로 한국교회는 이 말을 달리 번역하지 않은 채 사용한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교의 참된 정신과 생활을 사회 속에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회심의 여정인 셈이다.
이 운동의 시발은 1931년 스페인에서다. 전쟁으로 혼란과 무신론이 팽배한 당시 스페인 사회를 복음화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활동 단체부터 활성화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몇몇 평신도들이 모여 10일간의 성지순례를 마련하고 이를 ’꾸르실료’라고 부른 것이 처음이다. 그 뒤 꾸르실료는 성지순례를 겸한 단기교육으로 진행되다가 1949년 스페인의 후한 에르바스 주교가 이를 교회 신심운동으로 발전시켜 꾸르실료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는 1963년 이를 교회의 공식 신심운동으로 인정했다.
한국에 꾸르실료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67년. 주한 미 평화봉사단장으로 한국에 머물던 케빈 오도넬씨와 필리핀 꾸르실료 운동에 깊이 참여하고 있던 에드문도 카이모씨가 우연히 만나 한국에 꾸리실료 운동을 도입할 필요성을 공감하고, 서울 성수동성당에서 21명(신부 4명, 평신도 17명)이 모여 첫 꾸르실료를 개최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한국교회 전역에 꾸르실료 운동이 널리 확산, 현재 꾸르실료 교육을 받은 꾸르실리스따는 13만여명에 이르고, 전국 각 교구에서 매년 5000~6000여명의 새로운 꾸르실리스따들이 배출되고 있다.
한국협의회 홍화순 회장 인터뷰
"매년 전국 각 교구에서 600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새로운 꾸르실리스따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과 생활을 진정으로 복음화한다면 세상은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가득할 것입니다."
꾸르실료 한국협의회 홍화순(마태오, 62, 서울 세검정본당) 회장은 "한국교회에 꾸르실료가 도입된 지 36년이 지나면서 그간 13만여명에 이르는 꾸르실리스따들을 배출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그 많은 이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성할 때가 됐다"면서 꾸르실료 운동의 쇄신과 발전을 위해 13만 꾸르실리스따들이 꾸르실료 본래 정신과 목적을 되살려 복음화의 일꾼으로 거듭나 주기를 당부했다.
홍 회장은 이를 위해서는 "꾸르실료 교육 이후 꾸르실리스따들의 팀화합을 활성화해 그 안에서 식어버린 꾸르실료 정신을 되찾아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바꾸고 나아가 이웃과 주변환경까지 복음화시키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핵심그룹이 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회장은 "아무리 거룩한 열정과 신심이라도 잘 가꾸고 다듬지 않으면 한낱몽상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3박 4일간 꾸르실료 교육을 마치는 마지막날 하느님께 다짐하고 맹세했던 성화의 열정을 깊이 새기고 매일 되살려 교육 마지막 4일을 영원한 4일로 만들어가자"고 거듭 당부했다.
아울러 홍 회장은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꾸르실료 정신과 목적을 실행하기 힘들더라도 교황 바오로 6세가 꾸르실료 제1차 세계대회에서 꾸르실리스따들에게 ’그리스도는 그대들만을 믿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항상 명심하고 ’저는 주님의 은총만을 믿습니다’고 응답하는 자세로 꾸르실리스따의 사명에 충실하자"고 말했다.
[평화신문, 2003년 6월 8일, 박주병 기자] 4 23,876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