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ㅣ성모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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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본 다시 읽기: 미사와 성체 조배 함께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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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본 다시 읽기] 미사와 성체 조배 함께 하기
우리는 레지오 활동에 있어 교본 제37장(“레지오 활동의 예와 방법”)의 13번(“매일 미사 참례와 성체 조배의 권장”) 내용을 잘 기억해야 한다.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시며 그 은총에 합당한 감사 기도를 드리는 일은 신자들에게 마땅히 권장되는 바이다. 가능한 많은 신자가 날마다 미사성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순결하고 거룩한 성체의 양식을 받아 누려야 한다. 이에 관하여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는 신자들이 매일 거룩한 잔치에 나아오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자들이 이 성사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고, 그 힘을 얻어 탐욕을 절제하며, 날마다 저지르는 가벼운 잘못을 씻고, 인간의 나약함으로 인해 빠지기 쉬운 더 큰 죄를 예방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 미사 참례와 성체 조배는 별개의 활동으로 따로 떼어 두기보다, 모든 레지오 활동 안에서 자연스럽게 마음에 두고 꾸준히 실천해야 할 일이다.”(교본 379-380쪽 새 번역)
필자가 레지오 단원들을 위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평상시의 묵주기도 외에도 위 내용처럼 미사와 성체 조배를 연결해서, 즉 미사 전이나 후로 시간을 더 내어서, 기도와 묵상을 하게 되면 영적인 양식인 성체를 통해 더욱 많은 은총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영혼을 해롭게 하는 것은 교만과 탐욕인데, 미사와 성체 조배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정화되어 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필자는 일본 천주교회의 일부를 순례할 기회가 있었다. 그 순례 여행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나가사키 시(市)의 현장을 방문한 일이었다.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장소는 나가사키대교구의 주교좌인 우라카미 대성당 바로 옆이었다. 원폭 투하 장소에는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공원 안에는 폭탄으로 인해 파괴된 옛 성당의 붉은 벽돌들의 잔해가 보전되어 있었다. 원폭 투하로 인해서 일순간에 7만여 명 가까운 사람이 죽고, 또 7만여 명 가까운 사람이 부상을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인한 사상자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참으로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고통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평화공원에 전시된 여러 시설물과 조형물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원자폭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여 만들어진 ‘평화의 샘’ 분수대였다. 그것은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의 날개 모양으로 만들어진 분수대이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적혀 있었다.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폭발하자, 제일 먼저 무시무시한 열 폭풍이 발생했다. 그 열 폭풍의 끔찍한 효과로 인해 근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온몸이 불타거나 혹은 거기에서 분출되는 엄청난 고열로 인해 몸에서 일순간에 모든 수분이 빨려져 증발해 사망했다. 또 조금 떨어져 있던 곳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온몸에 극심한 화상을 입고 물을 달라며 애원하다가 죽어갔다. 그래서 나중에 시체들을 발굴하였을 때, 많은 사람이 고통스럽게 두 손으로 목을 감싸고 있는 자세로 사망한 것이 발견되었다.”
일순간의 초고열 현상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체 수분의 급격한 증발로 희생자들은 글자 그대로 타는 목마름 속에 죽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극심한 갈증 속에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 고통의 목마름을 시원한 물로 축인다는 의미에서 평화의 분수대를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 설명을 읽고 그 분수대를 바라보면서 깊은 상념에 잠겼다.
첫 번째로 든 생각은, 앞으로 무슨 이유로든 더 이상 인류에게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인간의 역사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전쟁의 악순환이 이제는 더 이상 생기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인간의 탐욕과 교만에 관한 성찰이다. 인체의 마지막 한 방울 수분까지도 빨아들여 송두리째 증발시키는 불꽃의 열기처럼, 최후의 하나까지도 모두 자기에게 종속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불꽃과도 같은 집착이야말로 교만과 탐욕의 가장 큰 특징이다. 수분을 분산시키지 않고 자기에게로 모아들여 증발하게 하는 불꽃의 강한 흡입력처럼, 이웃의 어려움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 탐욕과 교만의 무서움이 아닌가?
그래서 그 공통적인 결과는 인간 생명을 말라 죽게끔 억압하는 것이다. 폭탄은 외부로부터의 열기로 사람을 죽게 하지만, 탐욕은 사람 내부로부터 나와서 모두를 죽게 만든다. 사람의 마음에서 교만과 탐욕이 나오고, 그것이 마치 폭탄처럼 작용해서 자신과 타인을 포함한 모든 이를 파멸로 이끈다. 자신은 내적이고 영적인 죽음에 빠져들게 되고, 이웃은 존엄한 생명 가치가 억압되며 물리적 죽음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당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서 단죄하신 무서운 죄악의 실체이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느님만을 선택하라는 결연한 양자택일을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mamonas)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그리스어 신약 성경에 나오는 단어 ‘마모나스’(mamonas)는 예수님께서 직접 사용하시던 아람어에서 나온 말이다. 공관 복음서에서 이 단어는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발견된다. 사실, 재물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여기에서 문맥상으로, 이 단어는 일차적 의미인 ‘재물 자체’가 아니라, 이차적 의미로 ‘재물의 마력’을 가리킨다. 황금만능주의, 배금사상, 물신주의 등을 일컫는 말이다. 라틴어와 영어에는 ‘재물의 신’을 의미하는 ‘맘몬’(Mammon)이란 단어가 존재한다.
이러한 인간 교만과 탐욕 앞에서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은 바로 ‘마리아의 노래’이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1-53) 이는 교만과 탐욕을 배격하고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을 섬기라는, 그래서 무엇보다도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 하는 예수님의 말씀과 동일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따라서 ‘마리아의 노래’는 자신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분에 대한 개인적 찬미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간절한 기대와 소망, 그리고 하느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를 향한 겸손한 이들의 역동적인 전망을 힘차게 드러낸다. 레지오 단원들은 미사와 성체 조배를 함께 하며, 이러한 ‘마리아의 노래’를 더욱 깊이 묵상할 수 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9월호,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의교정 교수, 전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영적 지도자)] 0 7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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