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30일 (수)
(백)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현대 사회가 교회에 기대하는 것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9-27 ㅣ No.1027

[허영엽 신부의 ‘나눔’] 현대 사회가 교회에 기대하는 것

 

 

사순시기를 앞둔 어느 날 로마에 계신 유흥식 추기경님께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질문한 적이 있다. 며칠 후 묵상을 하신 추기경님은 다음과 같이 답을 보내주셨다.

 

“마티아 신부님, 은총으로 충만한 은혜로운 2026년 사순시기를 함께 꾸밉시다. 신부님의 질문을 받고 저 자신과 젊은이들과의 만남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젊은이가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젊은이를 떠난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우리 교회가 가장 힘써야 할 주제 3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젊은이들은 설교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증거를 원합니다. 

 

둘째, 젊은이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어른들이 먼저 다가가는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은 마음을 통하게 합니다.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청년 신자들이 어른들에게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셋째, 젊은이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는 매우 중요합니다. 경청은 우호적인 관계를 가져옵니다. 어른들이 자기 생각만을 강조한다면 시대와 상황이 다른 세대와는 절대로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지혜로운 어른일수록 청년들이 더 많은 말을 마음껏 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나 단체에 젊은이가 새로 오면 환대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새로운 젊은이를 단체에서 어떻게 사용할까만을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을 쉬운 사목의 도구로 생각하거나 온갖 궂은일을 도맡을 봉사라는 이름으로 내몰아서는 안 됩니다. 이 부분은 사목자와 교회 어른들이 깊이 숙고할 대목입니다. 청년 신자가 교회 또는 단체에서 환대받고 있다고 느끼면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자문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야 합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저의 작은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저의 사랑과 기도와 신뢰와 축복을 드립니다!”

 

나도 본당 고해소에서 청년 목소리가 들리면 “성사 끝나고 잠깐 밖에서 기다려요.” 했던 적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상대의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주일학교 교사를 해라, 성가대를 하라, 단체에 가입해라.’ 강요를 먼저 했으니 말이다.

 

 

교회는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교회 밖으로 나가야

 

몇 해 전 독일의 영적 스승인 안젤름 그륀 신부님과 인터뷰했을 때가 생각난다. 

 

“위기의 시대에 교회는 더 창의적이고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신자 개개인의 삶과 생각이 이전과는 전혀 달라 새로운 계획과 시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교회는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교회 안에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 가난하고 소외당한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대부분 전문가들이 지적한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은 실제로 모든 부분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교회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새로운 연대를 지닐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합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개개인도 아주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신자들, 특히 젊은이들의 교회이탈을 증폭시켰다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20년 가까이 가톨릭 청년 활동 중 그래도 가장 활발했던 청년 성서모임에 1년에 두 번씩 지도 신부로 활동했다. 2015년 이후 아주 미세하지만 전과는 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코로나 팬데믹은 불나는 곳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이 고민과 현상은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가까운 목사님이 개신교에서도 신자 이탈, 특히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난다고 걱정하는 것을 들었다. 개신교 언론에서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주된 이유는 교리적 불신, 과도한 헌신 요구, 그리고 교회 지도자의 신뢰 하락 때문이라고 하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이들은 신앙 자체보다 교회 공동체의 문화와 운영 방식에 실망해 발길을 돌리고 있고 교회 문화와 대인 관계 문제와 과도한 헌신 요구, 봉사, 예배 참석, 선교 활동 등의 강요,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문화를 꼬집었다. 비민주적 운영과 끼리끼리 어울리는 배타적인 분위기도 교회를 외면하는 데 큰 몫을 한다. 교회의 재정과 인사 운영의 불투명함에 회의가 들었다는 대목도 있다. 어찌 이것이 개신교만의 문제이겠는가. 모든 종교가 깊이 반성해 볼 주제이다.

 

 

교회는 영적 체험, 투명성,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 요구돼

 

한 후배 사제가 처음으로 주임 발령을 받아 본당에 취임했는데 첫 주를 지내고 잠을 설쳤다고 한다. 젊은이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성당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모든 성당이 다 똑같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사제들은 공감한다. 청년과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간단치 않겠지만 대부분 교회에 대한 실망이라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신자들의 이탈을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진정한 신앙은 의심과 물음에서 시작하고 공동체가 함께 해답을 찾아가면서 성장한다.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과 대화해보면 교회는 안 가지만 여전히 신앙은 있다고 한다. 이 말의 의미를 교회가 흘려들어서는 안 될 것 같다.

 

현대 사회가 교회에 기대하는 것은 교회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영적 체험, 유리와 같은 투명성, 교회의 소명인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더 많은 섬김과 나눔의 실천이 아닐까. 투명성에 관해 시간이 갈수록 재정, 인사와 교회 운영 등 더 많은 분야에서 질문받고 요구될 것이다. 교회뿐만 아니라 국가, 사회, 단체 등도 투명성이 없으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교회를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한다. 그런데 교회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돈과 권력 등 세속적 가치를 좇아갈 때 짠맛과 밝음이 이내 사라진다. 종교가 가진 특별한 소명과 거룩함을 상실했을 때 교회가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그저 속 빈 강정 같은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9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