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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54: 한국 사목지침서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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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7-01 ㅣ No.2033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54) 한국 사목지침서 공포


성사생활에서 사회 참여까지… 성숙한 지역교회 위한 기준 제시

 

 

- 1995년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는 200주년 사목회의의 성과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1984년 12월 1일 서울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강당(마리아홀)에서 봉헌된 200주년 기념 전국 사목회의 폐막미사 장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주교회의는 3월 20~23일 3일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1995년 봄 정기총회를 갖고 … 한국 지역 교회법전으로 성청이 인준한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를 부활대축일인 4월 16일자로 공포키로 하고, 6월 4일 성령강림대축일부터 시행키로 했다.”(가톨릭신문 1995년 4월 2일자 1면)

 

 

교회 사목과 행정 부문의 쇄신

 

1995년은 한국교회의 사목행정 부문에서 혁신을 이룬 해입니다. 주교회의가 그해 확정한 교회 사목과 행정 부문 쇄신은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공포, 「한국 사제양성지침서」 제정, 교회 종합전산망 착수, 2천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구성, 미사통상문 개정안 확정, 농민주일 제정 등입니다.

 

그중에서도 교황청이 인준하고 한국 주교회의가 총회에서 확정한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는 당시 전 세계 전교지역에서 지역교회가 자국어로 만든 유일한 지역 교회법전이었습니다. 이로써 한국교회는 전교지역에서 자국어로 번역된 보편 교회법전과 자국어로 작성된 지역 교회법전을 모두 갖춘 유일한 교회로 기록됐습니다.

 

주교회의는 동시에 「한국 사제양성지침서」를 승인해 사도좌에 인준을 신청했습니다. 이 지침은 한국 내 모든 대신학교 학칙과 내규에 적용될, 한국교회가 현대 세계와 교회에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사제를 양성하기 위한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1988년부터 8년 동안 작업해 온 「미사통상문」 개정안도 확정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이처럼 2000년대 복음화를 대비해 미래 사목의 발판이 될 지역교회법과 사제양성 지침, 전례서 개정 문제 등을 확정, 시행함으로써 성숙한 지역교회로서의 자치권을 더욱 공고히 확립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전교지역 최초의 자국어 교회법전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의 제정은 20년이 넘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의 결실이었습니다. 그 시발점은 1974년 주교회의가 기존 ‘한국 천주교 공동 지도서’(1932년 반포)의 개정 작업에 착수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 공동 지도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 이전의 트리엔트 공의회적 신학과 제도를 담고 있어,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공의회 이후 쇄신된 교회의 모습을 반영하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였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 사목 환경에 부합하고, 1983년 공포된 새로운 보편 교회법전의 정신을 지역교회 안에서 구체화할 수 있는 새로운 개별 교회법의 제정이 요구됐던 것입니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해 주교회의는 산하 교회법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뤄진 길고 고된 작업 끝에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1988년과 1989년에는 입법예고 형식의 공개 시안이 배포되었고, 1992년 최종 시안과 영문 번역본이 로마에 제출됐으며, 마침내 1995년 1월 23일 사도좌 인준을 거쳐 4월 16일 공포, 6월 4일 시행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제정은 사실 원래 계획보다 다소간 늦게 이뤄졌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습니다. 우선 교황청의 심사 과정이 길고 복잡했으며, 수정과 보완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좀 더 핵심적인 이유는 1984년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사목회의의 결실을 담아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200주년 사목회의를 통해 수많은 평신도와 사제들이 고백한 공동체적 식별의 성과물들을 법적인 조문 구조 안으로 담아내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대의 평가에서는 200주년 사목회의의 성과는 불과 일부만이 사목지침서에 수용됐다고 비판받기도 합니다. 즉, 성직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토착화, 교회 운영의 민주화, 분단 현실 인식 같은 특징적 의제가 부분적으로만 반영됐다는 지적입니다.

 

- 가톨릭신문 1995년 4월 2일자 1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내용과 역사적 의의

 

사목지침서는 보편 교회법의 복잡한 규정들을 압축하고, 한국의 사목 현장에서 신부들이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5분 안에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실무 참고서’ 역할을 하도록 고안됐습니다. 총 1752조에 달하는 방대한 보편 교회법전의 체계를 긴밀하게 구조화하여 단 256개 조항으로 집약했으며, 이 중 성사생활에 관한 규정이 전체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할 만큼 실천적이고 사목적인 유연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총 6편 256개조의 본문과 부록으로 구성된 사목지침서는 제1편 하느님 백성(1~32조), 제2편 전례와 성사(33~136조), 제3편 사목(137~197조), 제4편 선교와 신자 단체(198~214조), 제5편 사회(215~256조)의 순서로 돼 있습니다. 제5편 사회에서는 한국 천주교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을 대폭 수용했으며 제6편에서는 교회법이 준용하는 국내법 중 참고될 만한 법규를 발췌 수록했습니다.

 

사목지침서의 역사적 의미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라틴어에 기반을 둔 선교지 지도서 체제에서 벗어나 한글로 편찬한 지역 교회법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교회의 자치성과 법적 자기 정체성이 크게 강화됐습니다. 둘째, 전례·성사·혼인·본당 운영·교구 구조·신자 단체·사회 참여 등 사목 전반을 표준화해 전국 교회의 공통 기준을 제공했습니다. 셋째, 200주년 사목회의의 선구적 문제의식 특히 성직주의 비판, 교회 운영의 민주화, 토착화, 분단 현실에 대한 더 넓은 응답이 모두 동등한 강도로 법전 안으로 수렴된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문서는 ‘수렴’과 ‘선별’이 동시에 일어난 결과물이었습니다.

 

 

미완의 쇄신

 

사목지침서의 본질은 ‘한국교회의 자기 조직화’에 있습니다. 이 문서는 1930년대의 라틴어 지도서를 대체해 한글로 편찬한 지역 교회법으로서, 보편 교회법전·공의회 문헌·사목회의 의안·한국 사회 현실을 하나의 규범 체계로 묶은 것입니다. 전교지역에서 자국어로 작성된 지역 교회법전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며, 이 평가의 핵심은 한국교회가 자신의 사목 환경 속에서 자기 언어와 사목적 감각으로 사목의 기준을 세웠다는 데 있습니다.

 

동시에 이 문서는 ‘완결된 쇄신’이 아니라 ‘절충된 쇄신’의 산물이었습니다. 1984년 사목회의가 던진 토착화, 평신도 참여, 권위주의 비판, 사회·민족 현실에 대한 더 깊은 응답은 사목지침서 안에서 부분적으로만 제도화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문서를 과대평가하면 쇄신의 미완이라는 점을 간과하게 되고, 과소평가하면 전국 사목 표준화와 자치성 강화라는 실질적 성과를 놓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1995년 사목지침서의 최대 성과는 법적·사목적 공통 언어를 전국 교회에 부여한 데 있었고, 최대 한계는 그 법적 통합이 곧바로 시노드적 참여, 세대교체, 세속화 대응, 성직주의 극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1995년에 하나의 법전을 가졌지만 그 법전을 복음적 가치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도록 고쳐나가야 하는 사명을 여전히 부여받고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6년 6월 28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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