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내게 이루어질 하느님의 뜻(?) 세상의 삶은 여러 가지의 처지와 차원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여길 것은 사람의 노력과 협조라고 말하기가 쉽지만, 사람의 힘을 넘는 것을 생각한다면서 하느님의 도움과 사랑 그리고 역할을 말하는 일은 얼마나 있겠습니까?개인의 생각을 묻는다면, 어떤 행동을 하든지 사람은 자기의 삶에 드러나는 이익을 크게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하기를 권하는 것이 있다면, 개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행동의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떠한 모양으로 남겠느냐고 묻고 대답하는 일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만, 자기의 삶에 이익을 남기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다른 사람에게도 실현될 이익을 생각할까요? 어쩌면 오로지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의 모습은 이상하게 바뀌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알겠습니까?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을 세상에 알리신 방법으로 선택하신 예수님의 부활은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일이었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순서에 따라 일어난 일이었으니, 그 일을 만나는 세상의 사람들이 그 의미를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을 일이기도 했을 겁니다. 사람의 삶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죽음에서 생명으로 돌아오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부활을 거부하는 것이 당연했을 일입니다. 세상의 삶에서 그렇게 놀라운 일을 만난다면 나는 세상을 향하여 내 모습을 어떻게 드러내는 사람이겠습니까?세상에 예수님의 부활을 이루신 하느님께서는 그 세상이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드러내기를 바라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이 그러하다고 우리가 이해한다고 해도 우리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그 놀라운 일을 드러낼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바람을 잘 기억한다는 것은 우리가 놀라운 행동을 하기 위한 조건이 될 것입니다.하느님의 바람은 세상에 당신의 사랑이 드러나기를 원하시는 것이었고,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에 함께 하신다는 보장을 주시려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바람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사람이 온전하게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의 힘이 약한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삶에서 만큼은 인간이 드러내는 의지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세상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말하라면 그 첫째는 사랑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중요하고도 귀중한 것만큼 사람들마다 해석하는 모양이 다르고 실천하는 모양이 다릅니다. 그러니 사랑이라고 똑같은 글자를 쓰면서도 그 글자에 담는 의미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많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듣는 사랑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인류에게 보이시려고 했던 사랑과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다고 믿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일까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으니 우리가 그 사랑을 따르고 실천해야 하는 일이겠습니까? 아니면 나의 삶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찾아온다고 느낄 때이라야만 내가 온전하게 하느님께 돌아서겠습니까?아직은 성령강림의 축제일을 맞이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적절한 준비를 할 때라야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찾아올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