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3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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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교본 다시 읽기: 성모 마리아의 호칭들에 관한 신학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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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5-06 ㅣ No.1013

[교본 다시 읽기] “성모 마리아의 호칭들에 관한 신학적 성찰”

 

 

교황청 신앙교리부가 2025년 11월 4일 발표한 문헌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는 <구원 사업에서 마리아의 협력과 관련된 마리아의 일부 호칭에 관한 교리 공지>란 부제가 말하듯이 가톨릭교회의 성모 신심과 마리아 신학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다. 사실상 성모 신심에서 그 호칭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성경의 세계에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한 호칭 행위 이상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분의 존재에 대한 긍정과 더불어 그분에 대한 신앙을 내포하는 행위이다. 이름에는 실재 자체를 제시하면서도 그 실재의 가장 깊은 의미를 드러내는 강력한 힘이 내재한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대상의 실재 자체를 드러내면서, 밝혀진 그 실재의 의미를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는 현재의 성모 신심 운동들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쇄신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과장된 의미를 지닌 과거의 성모 호칭들에 대한 명확한 지침과 규정을 제시한다. 

 

먼저 구속 사업에 있어 “마리아의 협력을 규정하기 위해 ‘공동 구속자’(Co-Redemptrix)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부적절하다”라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이 호칭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를 흐리게 할 위험이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 진리의 조화에 있어 혼란과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기”(22항) 때문이다. 이는 레지오 마리애 교본(제7장, 72쪽)에 나오는 호칭이기에, 레지오 단원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레지오 교본(제5장, 38쪽) 및 기도문에 나오는 ‘모든 은총의 중재자’ 호칭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이루는 인격적 관계와는 별개로 마리아를 영적 선이나 힘을 분배하는 존재로 제시할 위험”(68항)이 있기에, 이 호칭은 “마리아의 고유한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67항)를 지닌다. 즉, 성모 마리아는 은총의 출납관이나 분배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인간도, 사도들이나 복되신 동정녀조차도 은총의 보편적 분배자가 될 수 없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은총을 주실 수 있으며, 바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하여 은총을 주신다.”(53항)

 

따라서 이 호칭의 사용은 매우 제한적이어야 하며 깊은 주의가 필요하다. “은총의 질서 안에서 마리아의 모성이 하느님의 성화 은총을 받도록 우리를 준비시키는 도움으로 이해되는”(46항) 한에서만 그 표현을 조심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삶 안에서 마리아의 모성적 현존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활동에 마음을 열도록 북돋워 주시는 마리아의 여러 활동들을 가로막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리아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오직 주님께서만 우리 안에 부어 주실 수 있는 은총의 삶을 우리가 받아들일 준비를 하도록 도와주신다.”(46항)

 

이러한 맥락에서, 마리아를 ‘은총의 전구자’이며 ‘은총의 세계에서 우리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언제나 가능하다. 우리가 하느님 은총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마리아께서 하느님께 청하시기 때문이고(54항), 동시에 우리 마음이 하느님의 사랑에 열려 있도록 마리아께서 준비시켜 주시기 때문이다.(69~70항)

 

사실상 여러 성모 신심 전통에서 과거에 사용하던 호칭들은 절대 불변이 아니라 수정 가능한 것들이다. 가톨릭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르면, 교회 역사 안의 ‘개별 전승들’(traditions)은 ‘사도적 전승’(Apostolic Tradition)에 비추어 ‘강화’나 ‘수정’ 아니면 ‘폐기’가 가능하다. 

 

개별 전승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그것이 오늘날 교회의 살아 있는 신앙에 잘 어울려 상응하게끔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사도적 전승’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개별 전승들’은 언제나 비판에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교회가 자신의 유일한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 하여 항구한 자기 쇄신을 거듭할 수 있게 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의 전통 안에서 쇄신된 신학적 반성에 입각한 성찰과 숙고가 레지오 교본에서 충실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에 나타난 성령과 성모 마리아의 관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성령론이 제대로 발전하지 않고 그 대신에 성모 마리아 신심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던 시대의 시각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많은 사목자와 수도자들, 그리고 새로이 레지오에 입단하고자 하는 신자들에게 거부감을 주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선서문의 새로운 수정 번역을 진행하여 최근에 주교회의 승인을 받았다.

 

지혜롭고 관대한 교회가 신자들의 대중 신심을 오랜 기간 인내와 관용 속에 관찰하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단호한 교리적 결정을 내리고 이를 사목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보편교회의 전통적 관례인데,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 역시 그러하다. 대중적인 성모 신심 운동이 교회 교도권이 제시한 가르침에 따라 수정, 쇄신되지 않는다면 오류와 미신에 빠지게 되고 마침내 이단으로 판단되고 마는 것은 교회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지금 레지오의 쇄신을 거부하고 과거의 전승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은 결국 레지오의 소멸을 방관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시노달리따스의 아름다운 과정을 거쳐오며”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영적 지도자 직무를 지난 3년간 수행한 필자의 직접적인 경험으로 본다면, 현재 레지오 선서문의 수정 번역에 대해서 일부 극소수를 제외하고 일선 현장의 분위기는 환영과 신뢰와 존경의 마음이 압도적이다. 바로 이것이 올바른 신학적 바탕 위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대다수 한국 레지오 단원들의 건강한 신심 수준이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많은 사목자들과 신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신중하게 진행해 왔던 선서문 수정 번역 작업이야말로 시노달리따스의 과정이었다. 특히 최근 3년간 한국의 3개(서울, 광주, 대구) 세나뚜스 간부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며 많은 회의를 거쳐 이 수정 작업을 해 온 것 자체가 시노달리따스의 아름다운 과정을 보여준다.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가 강조하듯이, 이제는 성모 마리아께 대한 무조건적인 과도한 공경이 아니라, 성모 마리아와 함께 “멈추어 신비를 묵상하며 침묵 가운데 그 신비를 누리는 고요한 사랑”(77항 제목)이 정녕 필요한 때이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4월호,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전 서울 Se. 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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