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4일 (목)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성모님을 깊이 사랑했던 유경촌 주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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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5-06 ㅣ No.1011

[허영엽 신부의 ‘나눔’] 성모님을 깊이 사랑했던 유경촌 주교님

 

 

지난해 성모 승천 대축일에 하느님 나라로 가신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과의 대화를 생각하면 성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독일 유학 시절 어느 따듯한 봄날 마인강 변을 같이 걷다가 뷔르츠부르크 성이 보이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젊은 부부가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는데 우리 두 사람은 누구랄 것도 없이 유모차 안 아기의 모습에 시선이 멈추었습니다. 한 살도 안 돼 보이는 아기는 쌕쌕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잠시 내려와 인간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아기천사가 있다면 저런 모습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 둘은 나란히 앉아 고요히 흘러가는 마인강물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주변의 소음을 다 모아서 흐르는 작은 강물 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따듯한 햇살로 마음도 따듯해지면서 잠시나마 이 세상에 마치 혼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한참 이어진 정적을 깬 건 유경촌 신학생의 질문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어떻게 신학교에 들어오셨어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았습니다. 평소에 우리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는데 그날의 질문은 진지하다 못해 건조할 정도였습니다.

 

“글쎄,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형 친구들이 우리 집에 자주 왔는데 모두 신학생이었어. 지방의 신학생들은 방학 전후에는 아예 우리 집에서 며칠 지내다가 신학교나 시골집으로 가곤 했어. 특히나 당시 인천 도서 지역에 사는 신학생들은 집으로 가는 뱃시간이 많지 않아 그랬던 것 같아.”

 

“집이 신학생들의 베이스캠프였네요? 마치 하숙집처럼.”

 

“그래, 어머니가 신학생들 밥을 많이 해줬어. 그리고 주말에는 자연스레 신학교 면회도 많이 갔어. 그런데 고등학교 때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을 읽게 됐어. 형님이 나에게 신학교 입학을 권하기 위해 선물한 책이었던 같아. 그런데 고등학교 예비고사 후 가톨릭신학대학을 간다고 하니 담임 선생님이 반대하셨지.”

 

“그래서요. 가톨릭신학대학에 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눈치를 보고 있다가 저녁 식사 후에 조용하게 가톨릭신학대학을 가고 싶다고 했지. 사제가 되고 싶다고. 그런데 아버지는 화를 내시며 내 말을 잘랐어, ‘절대 안 돼’라고 하셨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그는 어린 소년이 새로운 세계를 접했을 때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마른침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장난기가 발동해 “나머지는 나중에 이야기해.”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재미있는 영화가 중요장면에서 뚝 끊겨 너무 궁금하다는 듯 어린아이처럼 내 팔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나는 내 동생과 동창인 그가 가끔 행동에서 막내(?)티를 낼 때가 있어 항상 그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습니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목이 말라 부엌에 가서 물을 마시는데. 어머니가 조용히 따라 들어 오셨어. 작은 목소리이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어. ‘영엽아, 네 인생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하렴.’ 그 순간 바로 내 인생의 향로를 결정한 거지.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가 부엌으로 오지 않으셨어야 해. 그러면 내 인생은 달라지고 지금 우리가 여기 이렇게 함께 앉아있을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야.”

 

내 농담에 우리들은 활짝 웃었습니다. 그때 마인강 위로 작은 보트가 깃털처럼 가볍게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명동성당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며 개인적으로 특별한 체험을 했어요, 아마 그때부터 사제의 길을 꿈꿨어요.”

나는 이상하게도 그 특별한 체험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부터 이틀 동안 계속 그치지 않고 비가 내렸습니다. 나는 주변이 모두 잿빛으로 변하는 밤, 소중한 이들을 기억하며 편지를 여러 명에게 썼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언제 그랬나 싶게 아침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창문을 여니 며칠 사이에 초록이 만발하고 군데군데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했습니다. 그날 아침 일찍 유경촌 신학생이 차를 가져와 가까운 도시로 드라이브를 가자고 해 뷔르츠부르크의 인접한 도시를 방문했습니다.

 

 

아름다운 독일에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들

 

차 안에서부터 도시에 도착하고 같이 길을 걸으며 그는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이야기는 거의 고해성사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시 뷔르츠부르크로 돌아오는 길, 차 핸들을 잡고 콧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이 아침때와는 달리 더 편안해 보였습니다. 나무로 가득한 숲속을 달리며 차 안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내음에 숨을 깊이 쉬며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 느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주교직을 잘 수행하던 디모테오 주교님은 하늘나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장례 후 성직자 묘지에서 돌아와 일주일이 지난 후 나는 오래된 편지함을 뒤졌습니다. 나는 의외로 유 주교님과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정갈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활은 잘 지내셨는지요? 부제품을 앞두고 독일에서의 제 유학 생활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텅 빈 이 추운 겨울의 독일 신학교 방 안에서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여전히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미사를 드리던 생각도 많이 떠오릅니다. 신부님을 문득문득 생각하면 건강하실까 늘 걱정이 됩니다. 독일에서 함께 지낼 때 돌보아주심에, 아니 늘 제 편에 서 계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중략) 제가 가장 깊고 어두운 터널과 같은 시간, 신부님이 안 계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두려움까지 생각합니다. (중략) 기도를 하는 중에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 시간 성모님께서 신부님을 보호자로 보내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생했고 어려웠던 시간에 성모님께서 보잘것없는 저를 거듭 일어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부족하지만 저의 부제품 시간에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경촌 드림” 

 

지금도 눈을 감고 생각하면 아물아물 떠오릅니다. 아름다운 독일에서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들, 그 대화는 막 봉우리를 터뜨리는 아름다운 꽃처럼 막 피어나는 순결하고 겸손하면서도 신비로운 기억 속에서 떠오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길을 산책하며 바쳤던 묵주기도는 신비로운 메아리가 되어 지금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6년 4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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