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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교회의 기도: 십자가 앞에서 배우는 참된 기도와 겸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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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기도] “십자가 앞에서 배우는 참된 기도와 겸손”
지난 시간에는 루카 복음에 등장하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비유를 묵상하며,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가 부서지기 쉬운 우리의 연약함을 어루만지는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아시시의 성자 프란치스코 성인의 기도를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유년 시절 큰 걱정 없이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온화하고 다정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따뜻하게 대했기에,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밝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받았고, 때로는 ‘파티의 왕’이라 불릴 만큼 활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1205년,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만난 일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예수님이 그의 마음에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그리고 성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그를 인격적으로 부르셨습니다. … 프란치스코 성인은 세속적 가치의 한계와 허무함을 이해하면서도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 근본적인 가난함, 그리고 부서지기 쉬운 취약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멈추게 됩니다”(『오늘의 기도』, 81.83).
이 체험을 통해 그는 자신의 내면을 직면하게 되었고, 하느님 앞에서의 근본적인 가난과 연약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기 자신을 중심에 두던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께로 방향을 전환하게 됩니다. 우리 역시 겉으로는 겸손한 모습을 보이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교만함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영적인 교만은 더욱 위험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아갈 때, 하느님은 삶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실제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처럼 착각하며 스스로 만족하게 됩니다. 이는 우리 안에 숨겨진 교만을 직면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단순한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겸손의 행위가 변하지 않는 내적 태도로 자리 잡을 때”(『오늘의 기도』, 89) 가능해집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느님은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데 반해, 인간은 자신의 자유로 하느님의 집을 파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두려운 사실이지만 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유다가 될 수도 있습니다”(『오늘의 기도』, 92).
이 깨달음은 인간 존재의 책임과 자유의 무게를 드러냅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을 요청받으며, 그 응답은 결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듣기 위해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의 마음은 교만이라는 소음으로 가득 차 있어 그 부르심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압도적인 권능이나 위대함이 아니라 오히려 ‘취약함’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그를 참된 가난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이때의 가난은 단순히 세상의 것을 거부하거나 경멸하는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참된 풍요로움과 삶의 보물을 발견하는 길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 보물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안에서 발견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은 하느님의 본질적인 겸손을 드러내며, 이 겸손이야말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적 삶의 시작이자 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은 우리에게 분명한 길을 제시합니다. 참된 기도는 우리의 강함이나 공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가난과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십자가 앞에 선다는 것은 바로 그 겸손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안에서, 우리는 어떤 목소리에 응답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만의 소음을 내려놓고, 십자가에 드러난 하느님의 겸손한 사랑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자유와 참된 기도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2026년 4월 26일(가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가톨릭마산 4-5면, 이승언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 3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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