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23일 (목)
(백)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성극ㅣ영화ㅣ예술

K톨릭-영화: 우리와 그들 사이, 너희가 사라질 때 - 영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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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4-22 ㅣ No.179

[K톨릭: 영화] 우리와 그들 사이, ‘너희’가 사라질 때


- 영화 <우리들> : 2016, 윤가은 감독 -

 

 

“너 금 밟았어.”

 

바닥에 그어진 가느다란 선 하나가 아이를 바깥으로 밀어냅니다. “나 안 밟았어!” 주인공 선이는 억울한 표정으로 항변하지만, 아이들의 공세에 밀려 ‘우리’라는 선 밖으로 쫓겨납니다. 피구라는 놀이가 문득 잔인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이 밀려남은 운동장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교실에서도, 쉬는 시간에도 선이는 늘 금 밖, 그 어딘가 위태로운 경계에 서 있습니다.

 

여름방학, 선이에게 전학생 지아가 다가옵니다. 함께 밥을 먹고 비밀을 나누며 선이의 세계에도 처음으로 ‘우리’라는 울타리가 생깁니다. 하지만 그 ‘우리’는 오래 가지 않습니다. 개학 후 지아는 선이를 외면하고 다른 아이들의 무리 속으로 들어갑니다. 선이는 다시 선 밖에 외톨이로 남습니다. ‘우리들’, 참 따뜻한 말인데 어딘가 서늘합니다. ‘우리’가 견고해질수록 그 바깥에 남겨진 누군가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니까요.

 

오늘날 이 ‘금’은 운동장 바닥에만 있지 않습니다. 타임라인 위 스크롤 선에, 댓글 창의 적대적 언어 속에, 정치와 계층의 벽 사이에 촘촘히 그어져 있습니다. 알고리즘은 나를 긍정해 주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안락한 울타리를 선물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설계된 ‘우리들’ 안에 갇혀 살아갑니다. 그 안에서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인격적 존재인 ‘너희’는 사라지고, 타자화된 집단인 ‘그들’만 남게 됩니다.

 

“자꾸 때리고 또 때리면…. 그럼 언제 놀아?” 괴롭힘을 당하고도 다시 친구에게 다가가는 이유를 묻는 누나에게, 어린 동생이 건넨 말입니다. 그 안에 묵직한 화두가 있습니다. 복수와 응징이 끝없이 되풀이된다면, 우리는 언제 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영화의 마지막, 다시 피구 장면이 나옵니다. 이번에는 지아가 선 밖으로 몰립니다. 아이들이 “너 금 밟았어!”라며 지아를 몰아세울 때, 선이가 나서서 말합니다. “지아, 금 안 밟았어.” 자신을 밀어냈던 친구를 향해 선이는 선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되갚음이 아니라, 건넘으로.

 

예수님은 늘 선을 넘는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이 그어 놓은 경계 바깥으로 기꺼이 걸어가, 이름 없이 밀려난 이들과 마주하셨습니다. 그분에게는 배척해야 할 ‘그들’이 아닌, 언제나 사랑해야 할 ‘너희’였으니까요. 그리고 금을 넘어간 그 자리는 언제나 ‘우리’가 됩니다.

 

나는 오늘, 누군가의 ‘너희’를 ‘그들’로 지워버리고 있지 않은지요.

 

[2026년 4월 19일(가해) 부활 제3주일 서울주보 7면,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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