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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신앙 안에서의 환대: 겸손과 애덕, 하느님을 받아들이듯 이웃을 받아들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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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안에서의 환대] 겸손과 애덕, 하느님을 받아들이듯 이웃을 받아들이기 3-1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영성생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지닌 덕목입니다. 겸손의 중요성은 성경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겸손을 통한 신비가 완전히 드러났음을 우리는 복음 말씀을 통해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곧 겸손한 이들을 복되다고 선포하시고,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라고 말씀하시며, 겸손의 완전한 모범으로 당신 자신을 제시하셨습니다. 또한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 역시 겸손의 탁월한 모범으로,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돌보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8)라고 고백하며 구원의 신비 앞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겸손은 단순히 자신이 부족하다고 외치며 자신을 스스로 비하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겸손의 시작은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그분의 인간을 향한 사랑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기도와 체험을 통해 자신의 한계와 부족함을 자각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이시며, 그분과 비교할 때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더 나아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이는 큰 죄를 지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덕을 추구하는 우리에게도 요구됩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며, 이는 겸손한 자기 인식으로 이어집니다.
자기 인식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의존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바오로 사도에게서 잘 드러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2코린 12,9) 그러므로 참된 겸손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참된 겸손은 믿음의 빛 안에서 하느님 앞에 선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는 데서 자라납니다. 동시에 꾸준한 기도와 묵상을 통해 예수님의 강생과 공생활, 수난과 죽음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낮아지심을 바라보고 본받아야 합니다. 성인들은 기도를 통해 겸손을 성장시켰으며,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겸손의 궁극적 동기가 사랑임을 체험했습니다.
참된 겸손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태도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미워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또 다른 태도는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자유입니다. 참된 겸손은 칭찬을 추구하지 않으며,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는 것이 겸손의 모습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겸손은 영성 생활의 기초입니다. 겸손은 교만을 무너뜨리고, 인간을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하느님 중심으로 이끌어 줍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에 열린 존재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을 통해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환대의 삶을 살 수 있으며, 이는 우리를 자연스럽게 이웃을 향한 환대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2026년 3월 8일(가해) 사순 제3주일 인천주보 2면, 김범종 안토니오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신앙 안에서의 환대] 겸손과 애덕, 하느님을 받아들이듯 이웃을 받아들이기 3-2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존재로 이해합니다. 인간의 지성은 하느님을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선의 원천으로 인식하게 하며, 이러한 인식은 단순한 경외심을 넘어 영혼과 마음을 하느님께 향하도록 이끕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알고 계시기에 친히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 생명 안으로 들어올리셨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며 영성 생활의 기초가 됩니다.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아버지와 친구를 사랑하듯 친밀하게 사랑하도록 초대받습니다. 이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신 하느님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하느님의 전능은 사랑을 위해 존재하며, 그 사랑은 십자가와 부활로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단순하게 혹은 일시적으로 사랑하는 데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사랑 안에서 성장해야 합니다.
사랑은 단순히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의지의 결단을 포함합니다. 감정이 흔들릴 때라도 의지가 하느님께 머물 때 사랑은 더욱 깊어집니다. 성령의 은총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하며, 매 순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려는 노력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이끕니다. 실패와 한계 속에서도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는 사랑이 성장할 수 있게 합니다.
더 나아가 사랑은 애덕의 실천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애정의 감정을 품는 차원을 넘어서, 그분의 뜻을 선택하고 자신의 의지를 그분께 일치시키는 결단을 동반합니다. 그러므로 애덕의 실천은 사랑을 굳건하게 하는 영적 행위이며, 사랑과 분리된 선행은 그 의미를 잃게 됩니다.
따라서 사랑은 하느님과의 관계에만 머물지 않고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확장됩니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3)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의 진정성을 드러내는 기준입니다. 요한의 첫째 서간은 이를 더욱 분명히 강조합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참된 애덕의 실천은 세상의 기준에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행위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은 보편성을 지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존재를 사랑하시듯, 그리스도인은 어떤 조건도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애덕의 실천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어(요한 13,1 참조) 당신의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시고 당신의 목숨까지 바치셨음을 기억해 봅시다.
때로는 사랑의 실천에서 어려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 사랑에 뿌리내린 이웃 사랑은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정화하고 완성한다는 사실을 믿으며,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애덕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온 존재로 받아들일 때, 우리 역시 이웃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2026년 3월 15일(가해) 사순 제4주일 인천주보 2면, 김범종 안토니오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0 28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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