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
가톨릭 교리: 기계와의 사랑 |
|---|
|
[가톨릭 교리] 기계와의 사랑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Pygmalion)은 사랑에 회의를 품고 결코 결혼하지 않겠노라 선언한 조각가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완벽한 여인의 상을 조각하게 됩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사랑에 빠진 그는 조각상에 옷을 입히고 말을 걸며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결국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기도합니다. “제 조각상을 닮은 여인을 제 짝으로 내려주십시오.” 그러자 조각상이 사람이 되고 결국 그들은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신화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인공지능(AI)과 감정을 교류하고 애착을 형성하거나 알고리즘이 구성한 맞춤형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특별히 AI와 유대 관계가 지속되다 보면, AI가 인간과 유사한 지능이나 감정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심리 현상, 일라이자 효과(ELIZA effect)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사례가 생기는 경우는 AI 특유의 ‘아첨’과 ‘동조’ 현상 때문입니다. 되도록 좋은 말만 해주는 AI는 나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로 여겨지고 이제 사용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굳이 복잡한 얘기를 꺼낼 필요가 없어집니다. 나의 내밀한 모습을 알면서도 비난하지 않는, 언제나 긍정하는 존재가 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하지만 AI는 정량적 데이터와 전산 논리를 기반으로 작업을 수행할 뿐입니다. 인간의 추론 능력을 모방하고 놀라운 속도와 효율성으로 특정 작업을 수행할 수 있지만, 그 연산 능력은 인간 정신의 광범위한 능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은 도덕적 분별력을 수행할 수 없으며 진정한 관계도 구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습니까? 인간의 지적 이해 능력은 단순한 지식 정보를 넘어 인간 활동의 모든 측면을 형성하고 관통합니다. 인간은 어떤 실용적인 목적보다 진리, 선,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개방성으로 살아가는 실로 놀라운 존재입니다. 이에 〈옛것과 새것〉은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질병, 화해의 포옹, 심지어 단순한 일몰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 데이터로만 작동하는 어떤 장치도 우리 삶에 존재하는 이러한 경험과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경험들을 따라올 수 없다.”(33항) 인간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때로는 피곤함으로, 상처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우리의 영혼을 충만히 채워주는 것은 그래도 결국 또 그 관계 안에서 싹트는 사랑입니다. 안락함과 풍요가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 같지만 인간의 삶은 넘어졌다 일어나고 타인을 사랑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할 때 완전해집니다. 인간은 계산되는 존재가 아니라, 부름에 응답하는 존재입니다. 양심의 가책, 사랑을 실천한 후의 따뜻한 마음, 이웃으로부터 사랑받을 때 환희를 느끼는 것.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2026년 3월 8일(가해) 사순 제3주일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0 34 0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