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ㅣ성모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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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와 마음읽기: 열린 문을 스스로 잠그는 자물쇠(사회 규범과 시장 규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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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와 마음읽기] 열린 문을 스스로 잠그는 자물쇠(사회 규범과 시장 규범)
세계 역사상 가장 강했던 로마제국이 멸망하게 된 데에는 외부 침략도 있었지만 내부의 정치적 혼란 및 경제적 불균형과 맞물린 군사력 약화가 있었다. 로마제국은 다양한 원인의 인구 감소와 병역 기피 등으로, 비대해진 국경선을 방어할 병력이 부족해지자, 자국민 대신 게르만 용병을 고용해 해결하였다. 즉 국경을 넘어온 게르만 부족들에게 땅을 주고 그들과 군복무 계약을 맺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동화(同化) 정책이 실효성을 잃고 금전적 거래만 남게 되자, 용병들은 로마가 아닌 자기들에게 돈을 주는 지휘관에게만 충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초기 로마군을 지탱하던 애국심과 공동체 의식은 급격히 약화되었고, 제국에 대한 충성심 또한 소멸하였다. 결국 로마 군대의 역사는 돈이라는 시장 규범이 공동체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 규범을 어떻게 침식하고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가 되었다.
사회 규범(Social Norms)과 시장 규범(Market Norms)에 대한 정의는 미국 듀크대학의 유명한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 교수의 저서 ‘상식 밖의 경제학’에서 제시되었다. 그는 세상에는 ‘사회 규범’과 ‘시장 규범’ 두 개가 있다고 하였다. 전자는 인간관계와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으로, 따뜻하고 친밀하며 장기적인 관계를 지향한다. 하여 노력이나 시간의 가치를 금전으로 따지지 않으며, 상호 신뢰, 유대감, 호의에 의해 움직이는 규범이다. 반면 후자인 시장 규범은 임금, 가격, 비용, 이익 등 수치화된 보상에 따라 움직이는 규범으로 다소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단기적인 관계를 지향한다. 또한 모든 것이 금전적 가치로 환산되며 보상의 충분함 여부에 따라 행동 방식이 결정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상반되는 이 두 규범이 충돌할 때이다. 그는 이를 1998년 이스라엘에 있는 어린이집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실험군의 어린이집은 부모가 아이를 늦게 데리러 오면 그 시간만큼 교사들이 제때 퇴근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연구진은 지각한 만큼 벌금을 내게 한다. 이후 지각자는 줄었을까? 아니다. 오히려 지각하는 부모의 수가 2배로 늘었고 더 당당하게 지각했다. 이에 연구진은 3개월 만에 벌금제를 폐지했다. 그러자 지각하는 부모들이 줄었을까? 놀랍게도 부모들은 벌금을 내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당당하게 지각했다. 이 실험 결과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 규범에 시장 규범이 개입되는 순간, 사회 규범이 파괴된다
이는 벌금을 내기 전에는 지각이 선생님의 호의를 저버리는 행동(사회 규범)으로 여겨져 미안해하였지만, 벌금을 내기 시작하면서(시장 규범) 벌금이 지각해도 되는 권리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실험을 증거로 댄 애리얼리 교수는 “사회 규범의 세계에 시장 규범이 개입되는 순간, 사회 규범이 파괴된다”라고 하였다. 나아가 한 번 시장 규범으로 바뀐 관계를 다시 사회 규범으로 되돌리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도 하였다.
이 외에도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사례가 있다. 그중 변호사들에게 무료로 어려운 이를 도울 것을 요청했을 때(사회 규범)보다, 적은 금액(약 30달러)을 제안했을 때(시장 규범) 더 많이 거절한 예도 있다. 누군가를 돕는 순수한 사회적 행위에 돈이라는 시장 규범을 도입하는 순간, 그 행위는 거래나 노동으로 가치가 변질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친구의 이사를 도와주었을 때 그 고마움을 “밥 한번 같이 먹자”라고 말하는 것과 “시간당 만 원 줄게”라고 말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지 않은가!
유아세례로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해온 B자매는 단원 생활 또한 오래 한 베테랑 단원이다. 교직 은퇴 후 공부방 봉사를 시작하여 즐겁게 봉사하였다. 하지만 10여 년 동안의 봉사를 이번에 그만두었다. 건강 악화와 본당 봉사로 인한 시간 부족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예전과 다르게 보람보다는 좌절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과 어른에 대한 무례는 고사하고 반항적인 태도와 거친 말투, 부족한 친구에 대한 노골적 놀림과 편 가르기 등은 지속적인 가르침에도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제가 교육 현장을 떠난 지 오래되어 요즘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방면으로 해결책을 찾던 중 아이들이 간식을 주면 선생님 말씀을 잘 듣겠다고 하여 놀란데다, 공부방 관리자가 ‘(물질적) 혜택을 받는 만큼 (어른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을 보고 실망이 컸습니다. 시쳇말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아이들이긴 하나 감사함 없이 혜택에만 집중하는 모습도 안타까웠지만, 나눔이 상대에 대한 권력이 되는 것은 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현상을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레지오의 물질적 원조 금지는 사회 규범을 보존하는 지혜로운 장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자녀 중 아픈 자녀에게 더 많은 관심과 보살핌을 쏟아야 한다는 맥락으로,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의지적인 결단이다. 예수님의 행적 또한 가난한 이를 향해 있었고,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도 하셨다. 이에 가난한 이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봉사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직접적인 물질적 원조나 시설 중심의 봉사나 자활과 교육지원이 있는가 하면 사회정의를 위한 봉사도 있다.
그렇다면 레지오는 어떤가? ‘레지오 조직은 사람들에게 (물질적 도움이 아닌) 영신적 선물을 가져다준다는 원리를 바탕으로 설립’(교본 437쪽)되었다. 그리하여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은 금지한다. 이를 교본에서는 ‘물질적 도움은 다른 단체들에게는 닫힌 문을 여는 열쇠가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레지오의 경우에 그것은 오히려 열린 문을 스스로 잠그는 자물쇠가 될 뿐이다’(437쪽)라며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는 프랭크 더프가 레지오 창설 시, 빈첸시오회와 서로 보완적이기를 바랐던 원의를 바탕으로, 레지오는 ‘모든 이’의 ‘영혼’에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녹아있다.
결국 레지오의 물질적 원조 금지는 신앙 공동체에 시장 규범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여 사회 규범을 보존함으로써 관계의 변질을 방지하는 지혜로운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의 신앙을 확고히 하고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물질적 힘이 아니라 영신적인 힘이다.”-뉴만 추기경- (교본 104쪽)
[성모님의 군단, 2026년 2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0 18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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