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3일 (월)
(자)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민주주의를 지켜낸 MZ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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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3-03 ㅣ No.1005

[허영엽 신부의 ‘나눔’] 민주주의를 지켜낸 MZ 군인들

 

 

새해에는 누구나 새로운 계획을 하고 새로움을 향해 나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지난 2024년 12월 3일 계엄의 밤에 발목 잡혀있는 형국입니다. 여전히 관련 재판이 이어지고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상을 매일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은 그저 평화롭고 안전한 하루를 원합니다. 

 

학창 시절 도심을 내달리는 탱크 무리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축을 울리며 광화문 사거리에 도착한 탱크는 포신을 시내 쪽으로 뻗고 도열하고 있었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이었습니다. 수업이 일찍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분위기는 전날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길가를 따라 도열한 군인들은 부동자세로 총을 든 채 사방을 경계했고, 경찰들은 남녀불문 젊은이들을 검문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정부는 계엄을 몇 번 더 발표했습니다. 대학 시절에 갑자기 맞이한 비상계엄은 대통령 피격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이처럼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되자 1980년 봄 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시위했습니다. 거리는 매일 메케한 최루탄 냄새에 숨이 막힐 정도였습니다. 

 

신군부는 시국 수습의 명목 아래 1980년 5월 17일 24시부터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 폐쇄, 정당 및 정치 활동 전면 금지와 더불어 영장도 없이 학생과 정치인들을 구금했습니다. 5월 18일 광주에서는 시내로 진입한 군인들이 시위를 초기부터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당시 광주지역은 완전히 봉쇄되었고 마치 바다의 섬처럼 완전히 외부와 단절 고립되었습니다. 광주의 어르신들은 당시의 시위 진압에 대해 “한국전쟁 때 보다 더 심했을 정도”라고 자조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많은 이들의 희생 덕분으로 드디어 1987년 헌법이 개정되어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정부가 등장했습니다. 당시 선택의 여지 없이 계엄군으로 동원되었던 나의 선배는 자책감에 스스로 사제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45년이나 되었지만 계엄이란 단어는 공포와 두려움의 상징이었고 입 밖에 내놓기 어려운 금기어였습니다.

 

 

세계의 평화를 원하시는 성모님께 간절하게 전구해야

 

2024년 12월 3일 밤, 45년 만의 비상계엄 발표를 보고 거짓 뉴스라고 생각했던 이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지금 같은 상황에 무슨 비상계엄이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직간접으로 계엄의 폐해를 경험한 세대는 TV로 중계되는 국회 군인들과 시민들의 몸싸움을 보며 공포와 두려움에 빠졌을 것입니다. 계엄 시기에는 많은 일들이 불법적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행해지고 인권이 무참하게 유린당합니다. 다행히 국회의 계엄 해제 통과로 비상계엄은 철회되었고 며칠 후 대통령이 탄핵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외국 친구들은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늦게 받아들였지만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밤사이 국회에서 계엄을 해제하고,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는 인파를 보고 놀랐다.” “너희는 빨리빨리의 민족성처럼 민주주의도 빨리 배운 것 같다.”

 

탄핵 선고문에 등장하는 쉽고 깔끔한 문장 중에서도 “계엄의 실패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 대응”이라고 한 부분이 유독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MZ 세대 군인들은 과거처럼 무조건 상명하복하는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국회에 투입된 최정예 군인들의 무서운 전투력을 볼 때, 그들이 명령대로 행동을 실천했으면 유혈사태가 벌어지고 국회는 몇십 분도 안 되어 점령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젊은 군인들은 최대한 소극적으로 행동했고 일선 지휘관들이 지혜로운 대처를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복잡한 정치, 종교, 사회적 요인들이 이미 얽혀 있었지만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의 한 민족주의자 청년의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향한 총성이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낸 1차 세계대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역사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나라도 계엄의 그날 밤, 총소리 한방만 울렸으면 역사는 뒤바뀌었을 것입니다. 재판정에서 한 젊은 장교가 “우리 군은 특정 권력의 사병이 아니고, 우리의 군복은 국민을 위해 입는 수의(壽衣)”라고 한 대목은 마음을 울리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줍니다. 

 

나는 정치에 문외한이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진보·보수·중도 성향은 자유로운 시민 개인의 선택이며 서로 적이 아니라 함께 공존해야 하는 공동체의 일원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경우에도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군인들을 위한 기도를 자주 바치고 세계의 평화를 원하시는 성모님께 간절하게 전구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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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을 위한 기도>

 

○ 평화의 주님, 오늘도 조국을 지키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군인들을 굽어보시어 어려움을 이겨내는 굳건한 힘과 용기를 주소서.

● 주님의 자녀들은 복음에 따라 더욱 충실히 살아가게 하시고 아직 주님을 모르는 군인들에게는 주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주소서.

○ 또한 군종 사제들은 굳건한 믿음과 열정으로 군인들을 보살피게 하시고 저희는 열심히 기도하고 후원하여 군의 복음화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성모님의 군단, 2026년 2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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