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5일 (목)
(홍)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1) 온유함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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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2-04 ㅣ No.2239

[영성의 샘] 성모님과 함께 걷는 마음의 순례 (1) 온유함의 힘

 

 

누군가와 함께 순례를 떠난다면 어디로 향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함께 하는 이의 마음과 성향도 중요합니다. 성모님과 함께 영적인 순례의 길에 오르면서, 자연스레 묻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성모님은 어떠한 마음으로 이 여정을 함께해주실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경 속 장면은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와 마주한 순간입니다. 성모님께서는 구세주를 잉태하리라는 놀라운 선포 앞에서 두려움과 당혹스러움을 느끼셨음에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하십니다. 이 당시 성모님은 어떠한 마음이셨을까요? 진정 이 대답은 그저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앞에서 자신의 내면을 열어 보이는 온유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온유함이란 무엇일까요? 온유함은 일반적으로 성격이나 마음씨가 사납거나 급하지 않고, 겸손하며 부드럽고 따뜻함을 뜻합니다. 저에게 떠오르는 온유함의 첫 번째 기억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아주 작은 사건에서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는 늘 엄격하고 철저한 분처럼 느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의 저는 사소한 실수도 크게 혼날까 늘 조심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과 장난을 치며 방에서 놀다가 연필 깎기 통을 떨어뜨려 산산조각을 내고 말았습니다. 바닥 장판에는 검은 얼룩이 깊게 배어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곧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실 시간이었고 형과 함께 필사적으로 바닥을 닦았지만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들어오셨습니다. 형과 저는 혼날 일만 걱정하며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잠시 바닥을 바라보시더니 아무 말 없이 화장실에서 무언가를 들고 와서는 조용히 바닥의 얼룩을 말끔히 지워주셨습니다. 그날의 순간은 길지 않았지만 제 마음에는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야단을 맞을까 초조해하던 것과는 달리, 아버지가 보여주셨던 모습에서 참으로 온유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온유함으로 인도하시는 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8-29) 여기서 ‘온유함’이라는 표현은 희랍어 πραΰς(práus)로, 단순히 “성격이 부드럽다”라는 뜻을 넘어서는 훨씬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본래 이 단어는 야생마가 길들여져 가는 과정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야생의 말은 본래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명마라도 야생의 힘이 길들여지지 않으면,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온유함이란 힘을 잃은 것이 아니라, 목적에 맞게 조절되고 길들여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말이 길들여져 야생의 본성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대로이지만 주인을 신뢰하는 마음 안에서 절제하고 조화로운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서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 5,5)라고 말씀하실 때의 온유함도 바로 이 의미입니다. 강한 힘을 가졌지만 하느님의 뜻을 위해 절제하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이들의 행복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성모님의 온유함 역시 이러한 의미를 지닙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앞에서 자신의 뜻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온유함을 지니셨습니다. 이 온유함이 있었기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는 하느님의 위대한 일이 세상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온유함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마리아의 모성은 우리를 하느님의 부성적인 친밀함(the paternal tenderness of God)으로 이끄는 가장 가깝고, 가장 직접적이며, 가장 쉬운 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머니만큼 자녀들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존재는 없습니다. 어머니는 자녀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의 기척을 읽고, 아버지의 자비 안으로 자녀를 일깨우십니다. 그리고 그 자비는 성자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로부터 인간의 연약함을 느끼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동정녀 마리에게서 육체의 연약함을 받으셨기에, 예수님께서는 고통받는 이들을 바라보며 연민과 동정심으로 다가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온유함은 성모님의 마음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레지오 단원은 온유함을 실천하는 작은 마리아 돼야

 

어느 날 아버지께 들은 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당시 가족과 매우 각별하게 지내는 신부님 한 분이 계셨는데, 아버지 말씀으로는 처음에는 그분이 무척 엄하셔서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모동산 주변이 무척 어질러져 있음을 보시고, 아버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며칠 동안 그곳을 정리하고, 낡은 전등을 갈고, 필요한 작업을 꾸준히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임 신부님께서는 깊이 감동하셨고, 이후로 아버지를 더욱 신뢰하고 자주 의지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성모님께서 아버지를 이끌어 교회 안으로 더 깊이 다가오게 하셨고, 어린 시절 제가 느꼈던 아버지의 온유함이 하느님의 일을 향한 조용한 헌신을 통해 드러나게 하셨던 것이구나 하고 말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인간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향한 연민과 따뜻한 시선을 성모님에게서 배우셨다고 언급하셨습니다. **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유년 시절부터 자신의 삶을 통해 온유함의 본을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그분의 온유함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하느님의 때를 신뢰하며, 당신의 강인함을 하느님께 맡기며,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간직하는 태도였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 또한 언제나 성모님과 함께 걷는 길고 긴 순례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서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는 온유한 순례자이셨고, 그 온유함 안에서 하느님의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사도직은 따뜻함과 친밀함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머물고자 하는 내적 강인함이 필요합니다. 바로 성모님께서 보여주신 그 마음 말입니다. 성모님과 함께 하느님을 향한 순례길에 나서는 레지오 단원들이, 이 온유함의 정신을 실천하는 작은 마리아가 되어 세상 속에서 복음을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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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 프란치스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강론 (2024.1.1)

** 교황 프란치스코,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 42항.

 

[성모님의 군단, 2026년 1월호, 전인걸 요한 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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